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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난한 자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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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를 생각하라    
 
- 리처드 포스터 (국제 레노바레 대표)
 

난 쇼핑하러 가는 일이 별로 없지만 매년 성탄절을 앞두고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런데 거리를 지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광란에 빠진 듯한 쇼핑객들이나 성탄 시즌의 상업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일들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발견한 것은 구세군 자선냄비와 그 곁의 종지기를 사람들이 한사코 피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마치 종을 치는 사람의 공간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듯 멀찍이서 재빨리 지나가곤 한다. 시선을 멀리 두거나 위쪽을 노려보며 눈을 맞추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출구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다. 자선냄비 곁에 멈추어 서서 기부금을 넣으면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따스한 인사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기부금을 넣기보다 회피하는 것이 일반적인 광경이다. 

대중을 비난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예전에 자선냄비 곁을 신속히 지나치면서 마음이 다소 불편했던 적이 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사는, 굶주리고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 전 마음이 바뀌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종치는 분들을 내 친구로 여기기로 결심하면서부터다. 내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친구 말이다. 그래서 이제 그들을 지나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찾아 나선다. 

가게에 들어갈 때나 나갈 때는 언제나 자선냄비 안에 다소간의 돈을 넣는다. 어느 가게 앞에서는 종치는 분이 늘 명랑한 소리로 “하나님이 복 주시길 빕니다!”라고 말한다. 아내는 그 가게 앞에 다시 가서 또 축복을 받자고 내게 졸라댄다. 

내가 이렇게 기부하는 금액은 모두 합해도 얼마 되지 않고 이런 습관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난 이 일을 통해 세상의 상처 입은 자들에 대한 나의 헌신을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길 수 있어서 좋다. 

사회정의 전통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힘써야 할 영성 생활의 여러 분야 가운데 하나다. 사회정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긍휼에서 출발한다. 그건 단순한 감상주의가 아니다. 거기에는 특별한 행동이 요구된다. 구체적인 계획도 필요하다. 특정 대상의 사람들도 선정해야 한다. 물론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이 긍휼을 베푸는 행위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지만 사회정의의 핵심에는 언제나 긍휼을 베푸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성탄 시즌의 자선냄비가 이를 상기시켜 줄 수 있다면 자선냄비는 우리에게 이미 귀중한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베풀기는 행복하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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