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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셀프 리더’ 아닌, 남 위한 ‘수퍼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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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리더’ 아닌, 남 위한 ‘수퍼 리더’

한센병 선교사 웰즐리 베일리(Wellesley Bailey) [2009-11-18 05:50]

 - 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한센병 환자를 위한 선교회를 이 땅에 가장 먼저 설립한 웰즐리 베일리는 1846년 더블린 남서부 애비레이시에서 태어났다. 베일리는 그곳 스트래스벨리 주택개발 직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신실한 신앙을 전수받아 다른 세 형제와 아일랜드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젊은 시절 사업가의 꿈을 품고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큰 돈을 벌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사업에 실패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주신 귀중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크리스천으로서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해 보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권고를 들었다. 그래서 당시 형이 군인 장교로 복무하고 있던 인도행 배를 무작정 타고 떠났다. 인도에 도착한 그는 힌두어를 열심히 배워 훌륭한 경찰이 되려는 마음을 먹었다.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민중의 지팡이로써 의미있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여러 어려운 사정이 생기자 임관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그는 우연한 기회에 독일 CMS 선교사이자 빈민촌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로이터 목사의 집에 잠깐 체류하게 된다. 그와 함께 주변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면서 마음 속에 어려운 이웃에 대한 측은지심을 품었다. 가난과 육체적 아픔에 시달리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예수 복음을 전해 새로운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보다, 예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미국 장로교 소속 선교회에 지원해 암발라에 있는 선교회 소속 학교의 교사가 된다. 그곳에서 그는 선교회 지도자인 모리슨 목사를 만난다. 이 만남은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는 한센병 환자들에게 늘 관심이 있는 모리슨 목사와 환자촌을 수시로 방문했다. 그리고 환자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그들을 평생 돌보기로 결정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팔다리가 되는 것이야말로 아버지가 말씀하신 가장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베일리는 홀로 한센병 환자촌을 방문하면서 그들에게 예수 복음을 열심히 전했다. 그러다 한센병 환자들에게 복음과 더불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적절한 시설과 좋은 음식, 간편한 의복과 의학적 도움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1871년부터 약혼녀 앨리스 그레이엄과 복음을 증거하면서 환자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 현장에서 만난 친구인 미국인 의사 뉴턴 박사와 팀을 이뤄 심라힐에 있는 사부타에 구빈원을 세웠다. 구빈원에서는 무료로 환자들의 의료, 음식, 의복 등을 지원하도록 했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자들이 그곳에서 영혼은 물론, 육신의 고통까지 지원받고 치료받게 됐다.

신실한 베일리 선교사를 통해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이 지속 성장하면서 무보수로 봉사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을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그는 ‘인도 한센병 환자 선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선교협회의 도움으로 제1대 행정 총무가 됐다. 그동안 한곳에 치중했던 현장 사역을 잠깐 멈추고 다양한 지역을 방문하며 미래 한센병 환자 선교를 위한 사역지를 넓혀갔던 것이다.

1889년 4월, 한센병 환자촌이 있는 몰로카이 섬에서 일하던 다미앵 신부의 사망 소식이 매스컴을 타게 된다. 갑작스런 신부의 사망 소식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베일리 선교사와 한센병 환자들에게 돌리는 계기가 됐다. 먼저 웨슬리 감리교 선교회의 관심과 지원으로 미얀마(당시는 버마)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거주지를 세웠다. 인도 이외의 나라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수용소가 최초로 세워진 것이다. 중국의 항저우, 일본, 남아공, 남아메리카, 수마트라 및 한국에서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사역 지원요청이 쇄도했고, 미국과 캐나다, 호주에서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기관이 세워졌다. 인도에서는 정부와 민간 단체들의 관심이 크게 일어나 그의 한센병 선교가 드디어 빛을 발했다.

1917년 베일리는 선교사 직을 사임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짐을 절대로 지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늘 가볍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짐을 지기에 합당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후 한센병 환자들을 다른 선교사들에게 맡기고, 1937년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다.

한 사람의 헌신으로 그동안 병 때문에 소외당했던 환자들이 예수 복음을 듣게 됐다. 연약한 선교사 한 사람이 몸과 마음을 헌신하자, 이 땅에 위대한 복음과 선교의 역사가 다시 쓰였던 것이다. 그간 선교 불모지로 남아있던 한센병 환자들의 마음 속에 구원의 서광이 비춰, 쓴 물이 단물로 바뀌는 역사가 나타났다.

이웃을 위해 한 사람이 자신을 던지자, 국가와 민족과 세계가 행복해졌다. 혹자들은 이런 사람을 수퍼 리더라 부른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셀프 리더에 대항한 개념이다. 더 많은 수퍼 리더의 탄생을 염원한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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