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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프로테스탄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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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2009 

- 조병호 목사 (한시미션 대표)
 

감리교, 구세군, 루터교, 성결교, 장로교, 오순절, 침례교 등을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른다. ‘프로테스트(Protest)’는 저항의 뜻이고,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저항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개신교는 저항자들의 모임이다.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용어를 개신교는 왜 사용한 것일까? 16세기 이후 서양 사상은 종교개혁이 좌지우지했다. 종교개혁은 연옥설과 성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한 면죄부 발행이 가장 큰 근저를 이루었다. 이는 당시 교황들의 가문이었던 보르자 가문과 메디치 가문이 합작해 만든 것이었다. 

또한 성경보다 우위 혹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교황의 권위와 교회의 전통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획기적 성과는 성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라틴어 성경이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되었고, 오늘날 우리는 한글로 된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은 기독교가 나름대로 안정기라고 생각되는 시점에 이루어진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기 기독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유대교와의 갈등, 이단의 출현, 로마제국의 박해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나아가 국교가 되어 교황청의 힘이 거대해졌던 중세의 평안한 시기에 내부로부터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당시 교회는 라틴어 성경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이유로 일반 평신도들은 성경을 가까이 할 수도, 읽을 수도 없었다. 성경은 오직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때문에 평신도들은 성직자들이 가르쳐주는 대로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성경에 정통한 사제였던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성도들은 깨어나기 시작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에 조명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성경은 많은 사람들을 진정한 자유자로 만들어주었다. 성경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평안할 때 더욱 긴장해야 한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그 많은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12지파 전체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 평안히 거하게 되었을 때 더욱 기도했다. 당시 옮겨 다니던 하나님의 법궤를 보며 자신만 왕궁에 평안히 거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법궤를 성전에 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여쭈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다. 그리고 다윗은 ‘내 종 다윗’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게 되었다. 

2009년이 한 달 남았다. 올 한 해를 되돌아보니 감사뿐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이 넘치고 또 넘친다. 또 지난 125년간 한국교회를 생각해보면 오늘의 평안은 실로 꿈같은 일이다. 

그런데 2009년 다시 한번 프로테스트를 생각해 본다. 과연 우리에게 저항할 것은 없는가. 우리는 얼마나 성경적인가. 그동안 교회의 전통을 만들어 성경보다 우위에 두지 않았는지,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설교가 값싼 은혜로 전락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만큼 너무 멀리 나가지 않았는지 반성하며 긴장해야 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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