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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이 담긴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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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담긴 언어 

- 장경철 교수 (서울여대)
 

서울여대에 몸담은 지도 꽤 지났다. 처음엔 내 설교나 강의를 학생들이 귀담아 듣지 않는 듯했다. 휴식시간 학생들에게 다가가 “어떤 이야기를 듣기 원하는가” 물어보았다. 학생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없고, 그저 일찍 끝내 달라는 것이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있는데, 그것은 예수를 믿어라, 또는 성경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과 같은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면 자신들은 아예 귀를 막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나의 소명 아닌가? 그때 결심했다. 

“그런 이야기를 먼저 하면 안 되겠구나. 다른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그 이야기로 끝내야 하겠구나.” 

그때 생긴 고민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로 시작을 해야 하는가?” 

지난 주간 유치원생에게 설교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10여년 전 유치원에 갔던 경험을 떠올렸다. 당시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아이의 생일에 부모가 참석해 자녀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하는 순서가 있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앞으로 화해(和解)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저 눈을 말똥말똥 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화해라는 단어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갑자기 난감해졌다. ‘이거 청중 파악을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때 아이가 자주 보던 만화영화 ‘아기천사 두두’가 생각이 났다. 두두는 훈이 집에 살면서, 훈이가 친구들과 다툴 때 중간에서 화해시켜주는 일을 자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혹시 ‘아기천사 두두’를 아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안다고 했다. 그래서 내 말은 우리 아이가 나중에 두두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더니, 아이들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중에게 맞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무의미한 삶을 살아서 괴로운 것 같구나. 네가 나를 따른다면 내가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돕고 싶구나.” 

예수님의 언어 속에는 듣는 자를 향한 관심과 배려가 녹아 있었다. 나의 단어들도 예수님의 언어처럼 듣는 자를 향한 사랑이 담긴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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