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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의 손을 닮은 유비쿼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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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을 닮은 유비쿼터스 

- 김은호 목사 (오륜교회)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것이 있다. 라틴어 유비크 (ubique)를 어원으로 하는 영어의 형용사로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편재하는’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정보통신망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보통신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유비쿼터스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마크 와이저(Mark Weiser)다. 그는 “머지않아 수 백대의 컴퓨터가 한 명의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유비쿼터스 시대 즉,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에 액세스할 수 있는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집 밖에서 손목시계로 인터넷에 접속해 날씨를 알아보고, 집안에 있는 난방기의 온도를 원격으로 조절하기도 한다. 공상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환경은 머지않아 인류의 사회 문화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원래 ‘유비쿼터스’는 ‘언제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하는’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신학적 용어다. 우리는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편재’라고 부른다. 그런데 컴퓨터 전공자들이 신학적인 용어를 빌려다 일반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가 아무리 유비쿼터스화된다고 할지라도 진정한 유비쿼터스는 이룰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은 인간 사회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인류사회에 진정한 구원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진정한 유비쿼터스는 하나님 외에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만이 편재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피조물과 조물주의 차이는 편재에 있다. 피조물은 편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사와 귀신들도 피조물이기 때문에 이곳에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곳에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하신다. 그리고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유비쿼터스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배당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으신다. 우리의 가정과 모든 삶의 현장 가운데 거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현장이 교회가 되게 해야 한다.

아니, 우리가 머물러 있는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또 하나의 교회가 되게 해야 한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 부르신 것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 위함이다.

신앙생활의 무대는 교회가 아니다. 바로 세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야 한다. 가서 어둠을 몰아내고 불신앙을 몰아내고 빛 되신 주님의 통치가 임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만이 아닌 세상에서 유비쿼터스의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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