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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유언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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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과 비전 

- 조병호 목사 (성경통독원 대표)
 

자신의 죽음이 누군가의 시작과 연결될 수 있겠는가? 불교에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을 말한다.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알파와 오메가’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시작과 끝을 확고히 하는 사람들이다. 올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유한한 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의 유언이 후손들에게 비전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성경에는 유언이 비전이 된 경우가 많다. 모세의 유언이 여호수아의 비전이 되었고, 다윗의 유언이 솔로몬의 비전이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이 바울의 비전이 되었다.

120세가 된 모세는 아직 끝내고 싶지 않았다.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가나안 입성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시작의 길을 열게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모세 삶을 존귀하다 인정하셨다. 그리고 이제 여호수아에게 존귀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열라는 것이다. 이에 모세가 순종한다. 우리 생을 마감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존귀하다 말씀하시며 이제 누군가에게 존귀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열라고 부탁하신다면 우리는 기꺼이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70세에 삶을 마감한 다윗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로 성전 건축이었다. 다윗은 성전을 지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가장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당대에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들 대에 하라는 것이다. 다윗은 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생을 마감하며 아들 솔로몬에게 말한다. 여호와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로 인하여 자신의 삶이 아름다웠으니 너의 삶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모든 기반을 다져 놓는다. 아버지의 유언이 아들의 비전이 된 것이다.

60세를 바라보는 삶의 끝자락에 선 바울에게도 간절한 열망이 남아있었다. 바로 서바나를 가고 싶었다. 그가 로마서를 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십자가 사랑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당부를 자신의 당대에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끝이 제자들 삶의 온전한 시작이 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더 이상 서바나에 갈 수 없게 되었다. 로마제국에 의한 처형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때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유언한다. 나의 끝이 너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끝내신 이유가 성도들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시고자 함임을 발견한 것이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끝은 바울 삶의 진정한 목표가 되었다.

모세에게 가나안 입성의 꿈, 다윗에게 성전 건축의 꿈, 그리고 바울에게 땅 끝 서바나를 향한 꿈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남은 꿈은 유언이 되어 여호수아, 솔로몬, 디모데의 놀라운 비전이 되었다. 우리의 유종(有終)에 남길 유언이 예수 안에서 누군가의 비전이 되는 놀라운 꿈을 꾸어본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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