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왕에 대한 예의

송나라의 태종은 바둑을 좋아해서 바둑 고수들을 곁에 두고 항상 대국을 벌이곤 했다. 그 가운데 가현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바둑 실력뿐만 아니라 인품이 뛰어나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태종과 바둑을 둘 때는 항상 석 점을 잡혀 주고 두었는데 승부는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태종의 승리로 끝났다.

자신을 위해 가현이 일부러 저 주는 것을 알고 있던 태종은 어느 날 그에게 엄하게 말했다.

“그대가 나를 위해 그 동안 일부러 저 주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오늘은 그대의 진짜 실력을 보여라. 나도 최선을 다하리라. 만일 그대가 지면 연못에 집어던질 것이고, 내가 지면 비단옷으로 상을 내리겠다.”

태종이 지엄한 명이 떨어지자 가현은 조용히 웃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여 흑백의 치열한 싸움이 바둑판 위에서 벌어졌다. 흑을 든 태종 역시 고수였으므로 석 점 접바둑의 이로움을 이용해 공격을 거듭하여 유리하게 바둑을 이끌어 갔다.

하지만 백을 든 가현은 태종의 포위망을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벗어나면서 사방에 작은 집들을 지어갔다.

마침내 바둑이 끝났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제나 가현이 서로 지지도 이기지도 않은 것이다. 왕의 명령을 슬기롭게 처리한 가현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태종은 고개를 들더니 소리쳤다.

“이 승부는 석 점 접바둑을 이기지 못했으니 그대가 진 것이 분명하다. 여봐라. 가현을 연못에 넣어라.”

그러자 가현이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폐하, 아니옵니다. 소신은 지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면서 펴든 그의 손바닥에는 까만 바둑알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그는 한 집을 남겼지만 황제가 패하지 않도록 그 돌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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