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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천로역정의 전문인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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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의 전문인 신학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신학과 전문인 선교(6) 
 
- 김태연 박사(한국전문인선교원 원장, 한국로잔위원회 총무)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천로역정의 신학은 소위 장신대의 노영상 목사가 말하는 구름 위의 신학이 아니다. 그 동안의 한국신학은 박정희의 독재정권을 지나면서 민중신학을 필두로 극좌파와 불교신학, 유교신학, 샤머니즘신학이라는 극우파로 나뉘어서 아둘람 굴에 갇힌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주님이 한민족에게 한류를 허락하고 바라신 것은 이제 굴이 아닌 터널을 빠져 나와서 세속주의, 인본주의, 실용주의로 길을 잃은 세대에게 길을 제시하는 것일 것이다. 천로역장의 신학은 폴 히버트의 선교학의 양대 기둥인 성육신적인 자세로, 그리고 비판적 상황화의 자세로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성 길을 가는 리더가 주름잡는 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 때/환난의 거친 비바람 환난의 비바람/비바람이 불어도 인생의 순례자/천성을 향하네’

하프타임을 지나서 후반전으로 접어드는 이 때 성가대 시절 목매어 불렀던 ‘본향을 향하네’라는 곡에서 어느 누구인들 소회가 없겠는가. 시편 84편5절의 ‘주님께 힘을 얻고 순례길에 오른 사람 복되어라’(공동번역)는 말씀이 있다. 성서에서 ‘길’은 아주 중요한 메타포가 된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길’의 세월이라고 고백했다.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놓아 주신 예수께서도 자신을 ‘길’(The Way)이라고 하셨다. 그 길은 비아 돌로로사(‘고난의 길’이라는 뜻)의 길이다.

이신득의 교리의 핵심은 믿음에 있다.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 정광훈 주교가 어렵게 찾아와 채플에서 설교를 하고 급히 갔던 기억이 새롭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주장한 것이 이애득의(Justification by Love)라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한국과 중국의 신학자가 남산의 힐튼호텔에서 신학자 대회를 가졌는 데 그 때 사석에서 공산당 안기부원인 북경대 교수가 이애득의를 말하며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기에 이신득의(Justification by Faith)가 아닌 이애득의가 맞다는 논리였다.

필자는 황당한 말을 듣고 갑자기 대답을 할 수 없었으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믿음이고 우리의 행위는 예수님 안에서의 행위라는 것이다. 야고보가 말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 이행득의(Justification by Work)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행위로 상급을 받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이 천로역정을 가는 순례자의 신학에서 말하는 도의 의미가 아닐까. 기독인의 짐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는 데 교리논쟁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소명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예지 예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주님(롬8:29~30)을 위해 우리는 순례자의 길을 부지런히 가야 한다.(계속)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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