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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예집사의 십일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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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집사의 십일조 이야기 


6.25사변 때에 북한에 있던 우리 기독교인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리하여 아군이 진격하여 신의주까지 갔다가 1.4후퇴 할 당시 기독교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남으로 월남하는 때였다.

이때 평양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예 집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피란오는 중에 일행을 놓치고 남편마저 잃어버려 혼자가 되었다. 어려움을 겪으며 서울까지 피란온 집사님은 수중에 동전 한 푼 없는데다 아는 친척도 없었기 때문에 한강 인도교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하룻밤을 지냈다.
아침이 되어 배가 몹시 고팠지만 거지처럼 집을 돌아다녀 밥을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난리 중이라서 서울 인심이 어찌나 각박한지 집집마다 문을 꼭꼭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 실정이었다.
‘온갖 고초 끝에 서울까지 왔는데 이제는 꼼짝없이 굶어 죽는구나’하는 생각에 살아갈 일이 막막하여 눈을 감고 있는데 누군가가 “아니, 집사님이 웬일이세요?”라고 하였다. 순간 눈을 떠보니 평양에 있을 때 같은 교회에 다니던 여자 성도였다.
예 집사도 너무 반가워 손을 잡고 서로의 안부와 피란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아홉 식구 모두 무사히 피란왔지만 당장 먹을 것, 갈 곳이 없더군요. 할 수 없이 이 인도교 밑으로 내려와서 움집을 만들어 빈대잠이나마 잘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성냥을 팔아서 아홉 식구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정도랍니다. 어떻게 식사라도 하셨나요? 쯧, 집에 모셔서 풀죽이나마 대접하고 재워드렸으면 좋겠는데 저희 형편도 말이 아니라서…. 참 이거라도 팔아서 식사하세요.”그 성도가 건네 주는 성냥 열 갑을 받은 예 집사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십일조를 바치기 위해 근처 교회로 갔다. 교회문이 닫혀 있어서 목사님의 사택으로 보이는 집으로 찾아갔다.
“십일조를 바치려고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하니 그 집 가정부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니만 목사님께로 안내해 주었다.
어느 방으로 인도되어 가보니, 아주 점잖고 경건한 인상의 목사님이 앉아 있었다. 예 집사는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난 다음 십일조로 준비한 성냥 한 갑을 내놓았다.
“성냥 한 갑도 십일조에 속하지요? 실은 오늘 평양에서 알던 사람을 만났는데 하루 식사비나 하라고 내게 성냥 열 갑을 주더군요. 그래서 십일조를 바치러 왔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물론 성냥 한 갑도 십일조죠.”하며 자매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다.
예 집사는 부끄럽지만 기도를 받고 나와서 성냥 아홉 갑을 팔기 위해 동분서주해 보았으나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생각다 못한 그는 남대문 전차정류장에서 팔 요량으로 길바닥에 손수건을 펴놓고 성냥을 나란히 펴놓았으나, 전차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물론 행인들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성냥을 주신 하나님께서 설마 굶겨 죽이기야 하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허기진 배를 참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성냥이 팔리기만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너무 지쳐 있어서 지루하고 권태스럽기만 하였다.
해가 벌써 서산에 졌고 땅거미가 천지를 서서히 덮어버리는 순간인데 어떤 신사가 전차에서 뛰어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길바닥에 놓인 성냥을 밟고 말았다. 깜짝 놀란 신사는 미안한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세어보지도 않고 던져 주듯 예 집사의 손에 쥐어주고는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졌다.
예 집사는 그 신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려 돈을 세어보니 삼백원이었다. 성냥 아홉 갑을 팔아봐야 단돈 구십원인데, 삼백원이 생기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예 집사는 그 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떼고 나서 성냥을 준 교인에게 성냥값을 갚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십원어치 음식을 사서 우선 허기를 면했다. 그 정도 돈이면 어디 가서 따뜻하게 하룻밤 잘 수야 있지만, 다음 날부터의 생계를 이어야 하므로 다시 한강 인도교를 향하여 걸어갔다. 인도교 밑은 이북에서 피란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예 집사는 오는 길에 그 목사님 댁에 들렀다. “목사님, 아침에 기도해준 덕분에 삼백원을 벌어 이렇게 십일조 삼십원을 떼어 가지고 왔습니다. 축복해 주십시오.”목사님은 그간에 사연을 들어보고 나서 기도하자고 하여, 집사님이 평양에서 이곳으로 내려와 겪은 일들을 다 이야기 해주었다. 다 듣고 난 그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축복기도도 해주고, 또 저녁식사까지 대접을 해주어 모처럼만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리 밑에서 생활하기보다는 목사님 집에서 가정부와 한 방을 쓰고 낮에는 장사를 하라고 특별히 신경을 써주셨다.
그후 예 집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하는 장사마다 잘되어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예 집사는 남대문 시장 불탄 자리에 조그마한 가게를 냈고, 하루는 일본에서 수입되는 비단짐을 받으러 서울역에 갔다가 피란길에서 헤어진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이 남편은 집사님에게 있어서는 큰 십자가였다. 평양에 있을 때, 교회에 나간다고 미워하고 걸핏하면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서는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도 했고, 또 여자 문제도 복잡한 그야말로 건달과 다를 바 없는 남편이었다. 이런 남편을 구원시켜 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를 많이 하였던 예 집사는 어쩌면 남편은 피란길에서 자기를 고의로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들어 찾을 생각을 않고 억척스럽게 장사만 했던 것이다.
남편은 부잣집 마나님같이 변한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저 누구시죠?”만 할 뿐이었다.
“여보. 이야기는 집에 가서 하고 우선 이 짐부터 싣고 갑시다.”지게에 비단짐을 지고 아내를 따라 남대문 시장으로 들어선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내가 경영한다는 포목점의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예 집사는 남편에게 짐을 내려놓으라고 한 뒤, 목욕비와 이발비를 주어 깨끗이 씻게 하고 기성복집으로 데리고 가 양복을 한 벌 사주었다.
“당신은 피란길에서 나를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복 주시어 오늘날 이 남대문시장 안에서는 두 번 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점포를 허락해 주셨어요. 그런데 당신은 자신의 힘으로 잘살 것처럼 하더니 서울역에서 지게꾼 노릇이나 하고 있다니, 인간의 육신을 믿을 수 있나요?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하세요. 이제부터 예수 믿고 술, 계집, 노름을 멀리하겠다고 말예요.”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잠잠히 듣고 있던 남편은 “이제 당신의 뜻을 따르겠소. 교회에도 나가고 계집, 술, 노름 등 세상 것 다 끊으며 당신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리다.”하며 진심으로 회개하였다.
그리하여 그 남편도 교회에 나가 세례 받고, 부부가 함께 교회에서 온갖 충성을 다했다. 이들 부부는 개척교회도 많이 세우고 후에는 장로와 권사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니,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의 길은 환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끝내 축복과 승리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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