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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예배드림이 기쁨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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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림이 기쁨 됩니다
   
- 주예분 집사 (여, 70세, 양천구 신월동 신월교회) -

 
우상숭배의 앞잡이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친가는 우상을 섬기는 것을 생활의 전부로 여기며 살았다. 그리고 큰아버지는 아예 중이 되어 절을 짓고 많은 영혼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데 앞장서는 사탄의 종이 되었다.
  우리 집은 많은 제사와 고사로 인하여 향냄새에 찌들었고, 집안 곳곳에 붙어있는 부적들은 집안을 어두침침하게 만들어 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우리 형제들은 자연히 우상숭배의 대를 이어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우상숭배 하는 배우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다니며 굿판을 벌이는 일을 삶의 위안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나의 이런 삶이 모두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졌고 무당을 찾아다니는 일도 회의가 들었다.
  ‘내가 이때까지 몇 십 년을 점을 보고 굿을 해보고 부적을 붙여놓고 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더 잘 된 것도 없었고 내 마음에는 만족도, 안식도 없었다. 오히려 늘 불안하고 쫓기는 것 같아 또다시 점을 치고, 이런 생활의 연속일 뿐이었다. 맞아,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점쟁이나 무당들이 점을 쳐보거나 굿을 할 때 항상 ‘천지신명이시여, 하늘의 신이시여.’라고 부르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래, 그들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하늘에 있는 신, 바로 하나님이 가장 높은 분인가 보다! 나도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믿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곧바로 집 근처에 있는 교회로 찾아가 목사님을 만났다. 그리고 목사님께, “목사님, 제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데 저 같은 죄인도 받아 주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있었다. 목사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다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교회에 갈 생각으로 토요일에 밤잠을 설치고 주일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깨웠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우상숭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특히 당시 여덟 살이었던 큰아이는, 혼자서 수요예배나 부흥회에 빠짐없이 참석할 정도로 믿음이 기특한 아이였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도 책임감이 강하고 생각하는 것과 마음 씀씀이가 착했다. 그래서 그런 면을 역 이용당하는 아픔도 많이 겪었지만 여러 가지 많은 연단과 훈련 속에서 주의 종으로 만들어져 지금은 목회자로 쓰임 받고 있다.
  나는 아이들을 깨워놓고 교회로 갔다. 교회에 가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맨 앞자리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이 죄인이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가졌던 옛 마음과 옛 생각과 옛 습관을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 왔습니다. 이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하며 통회자복 하였다.
  그러자,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고사떡을 놓고 함께 빌었던 일, 동네에 점쟁이가 들어오면 동네 사람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도 난 끝까지 남아 있다가 맨 나중에 돌아갈 정도로 좋아했던 일 등 내가 우상숭배 했던 것들이 마치 필름이 돌아가듯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예배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났는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가슴을 치며 회개를 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 한 음성이 들렸다. “내가 다 용서했느니라.”
  나는 그 시간 이후 어깨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깜깜한 어둠 속을 뚫고 나온 듯 밝아졌다. 마치 날개 같은 것에 포근히 감싸져 안겨있는 것 같았다.
 
예배드림이 기쁨이 되어
 
  그 날 저녁, 나는 또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생겨서 곧장 교회로 달려갔다. 교회에 가니 한 청년이 찬송을 인도하고 있었다. 나는 찬송을 한 곡도 몰랐지만 곡조와 가사가 어찌나 은혜롭고 좋은지 이제는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감사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예배가 끝났어도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을 정도로 큰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한 주일을 어떻게 기다리나.’ 하는 마음에 다음 주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 정도로 예배가 사모되었던 것이다.
  나는 새벽예배는 매일 드릴 수 있다는 말에 위안을 삼고 돌아왔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은 차츰 나를 변화시키셨고, 내 안에는 천국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차오르게 되었다.
  또한 하루의 바쁜 일과 속에서도 나는 그렇게 기도가 하고 싶어 일을 마치자마자 교회로 달려가 철야기도를 하며 하나님과 대화를 했다. 그것으로 인해 하루하루 고단하기만 했던 나의 삶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뀌었고 항상 위로와 평안으로 보호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살게 되었다.
 
위장병과 골다공증을 치유 받음
 
  내가 우상숭배를 하고 있을 때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밥을 먹은 후에 소다를 먹곤 했다. 그 시대에는 소화가 안 될 때면 소화제 대용으로 소다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처음에는 아기 수저로 한 스푼만 먹어도 소화가 잘 되는 듯 했는데 나중에는 어른 수저로 한 스푼 반이나 먹어야 소화도 되고 아팠던 속도 가라앉았다.
  그것이 지속되면서 나는 밥을 먹고 난 후엔 반드시 그 소다를 먹어야만 견딜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지하게 살았던 시절인 것 같다. 아무튼 나중에는 그것마저 효과가 없게 되었고 음식은 커녕 물조차 넘길 수 없을 정도로 위장병이 악화가 되었다.
  그제야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의사가 하는 말이 지금까지 어떻게 견뎌왔느냐며 위장이 다 녹고 헐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퇴원 후에 한약을 지어먹고 죽을 고비는 넘겼지만 여전히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바로 그 시기에 나는 삶의 회의가 들어 교회를 나갔고 하나님을 만났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질병이었던 위장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베풀어주신 은혜였다. 할렐루야!
  이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많은 위험 속에서 나를 지켜 주시고 조그만 병이라도 기도하면 치료해 주시는 역사를 보여주셨다.
  어느 날은 버스가 후진을 하다 나를 치는 바람에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나을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어서 깁스한 팔을 붙들고 며칠을 기도하였다. 그렇게 작정기도가 끝나고 난 후 부러졌던 팔이 기적적으로 붙어버린 일도 있다.
  또 의학으로도 완쾌되기 힘든 골다공증에 걸렸을 때, 그 통증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러자 주님께서 “늘 내가 너를 기억하고 사랑한다.”고 하시며 골다공증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다. 할렐루야!
  남편과 나이 차가 많이 나던 나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된 어려움 가운데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와 교회와 세계의 모든 것들을 위해 엎드려 겸손히 기도로 섬기는 자가 되게 해주셨다.
  오늘도 나는 각 심령 심령이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주님나라가 확장되며, 우리 모두 천국에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함께 찬양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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