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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고통 중에 깨달은주의 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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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중에 깨달은주의 율례
   
- 정연금 전도사(46세, 여의도순복음교회, 서울 장위3동) -


잠자던 영이 살아나다

  철이 들면서, 나는 똑같은 사람이라도 뭔가 꿈이 있는 사람이 인생을 확실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나도 뭔가를 꼭 이루고 말겠다는 꿈이 용솟음치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타고난 강한 체질 덕분에 온갖 어려운 고난이 인생에 닥쳐왔어도 한 번도 힘들다고 주저앉지 않고 다 뚫고 나왔던 것 같다.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처녀시절 함께 일하던 한 여직원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사람과 별로 다를 바 없이 똑같았으나, 나에게는 천사처럼 보였다. 그래서 하루는 다방으로 그 여직원을 불러 “네가 믿는 예수님을 나한테 좀 소개해봐”라고 했더니, 그 아가씨는 싱긋이 웃으면서 “언니, 성경에 ‘와 보라’고 했으니 와 보기만 해” 할 뿐 다른 말이 없었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교회를 나갔고,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울 때까지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그러나 7년 동안이나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녔어도 마음이 열리지 않고 말씀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세살된 딸아이가 이유도 없이 밤낮 울어대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면 낫는다’는 말이 떠올라 아이를 업고는 기도원을 찾아갔다. 목사님께 상담을 했더니 ‘딸을 절대 미워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말씀을 하셔서 3일 금식기도를 하고 내려왔는데, 집에 돌아오니 거짓말처럼 딸아이의 울음이 그치는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아, 인생의 모든 문제는 기도만 하면 되는구나“ 하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 일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옮기게 하셨다. 교회를 옮기게 되면서 나는 ‘지금까지는 내 속사람이 거듭나지 않은 채 겉으로만 믿는 믿음이었으니 이제는 나도 성령을 받아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내 속에 와 박혔고, 죽었던 내 영이 일시에 살아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믿음과 성령과 말씀을 한꺼번에 다 받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강퍅해진 남편의 핍박

  그런데 내가 성령을 받고 믿음의 확신을 갖고 오니까 그렇게 순하던 남편이 강퍅해져서 교회를 가지 못하게 막기 시작했다. 나는 성령의 불이 붙어서 교회를 너무나 가고 싶은데, 남편이 가지 못하게 막으니 정말 기가 막혔다.
  한번은 주일이 되어 교회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방에 걸려있는 커다란 거울 앞으로 나를 밀어붙이면서 주먹으로 내리치려 하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남편을 뿌리치면서 “나는 하나님의 딸이에요. 나는 당신과 결혼하기 전부터 예수를 믿었던 사람이잖아요?” 하고 강하게 말했다.
  남편의 핍박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한 번은 호텔 요리사인 남편이 3개월이나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여보, 다른 사람들은 뙤약볕에 가서 땀을 흘리며 막노동을 하는데, 당신 직업은 얼마나 좋아요? 생활비도 하나도 없는데 3개월 동안이나 놀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라고 했다.
  그 날 밤 남편은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서는 구둣발로 문을 걷어차면서 창문이란 창문은 다 깨어 부수었다. 남편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창문 깨지는 소리에 놀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부엌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려고 하는 남편을 주인집 할머니가 막아주셨다. 그러자 남편은 머리로 벽을 세 번이나 박더니 갑자기 옷을 다 벗어버리고는 팬티바람으로 울면서 대로로 뛰쳐나갔다.

네 삶의 모든 고난도 너를 위함이라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남편만 믿고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식당을 하나 차리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나 식당이 잘 되던지 정말 신바람이 났다. 우리 가게 앞은 사람도 잘 안 다니는 골목이었는데 희한하게 잘 되는 것이었다. 내 집 식구한테 하듯 정성을 다 하였더니 20개 공장이 정기적으로 밥을 대어먹을 정도로 손님이 많아졌고, 300만 원으로 시작한 것이 1억 원도 더 벌어서 나올 정도로 물질의 축복을 부어주셨다.
  식당을 하면서 물질은 많이 들어왔지만, 핍박과 환란과 영적인 연단은 계속되었다. 믿음과 인내로 다 이겨내곤 하였는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퇴근을 하여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남편이 옆에 섰던 젊은 청년과 잠시 시비가 붙었는데, 그 청년의 발길질 한 방에 가슴을 맞고 나가떨어진 것이 그만 두개골이 깨지고 말았다.
  남편이 입원한 병원에 가 보니 백지장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수술하고 열흘이 지나 깨어나기는 했지만, 영락없이 산송장의 모습이었다. 나는 다 죽어가는 남편을 뉘여 놓고 사람들이 미쳤다 할 정도로 전도를 했고, 남편을 친 청년의 어머니에게도 전도를 하면서 매우 어렵게 합의를 받아냈다.
  중환자실에서 60일을 넘게 보냈는데도 남편은 전혀 회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24시간 잠도 안자고 미친 사람처럼 날뛰니 의사들도 두 손을 다 들었다. 그 때 주님께서 내 마음속에 ‘의사가 손을 완전히 들어야 내가 고치지.’ 하는 말씀을 주셨다. 나는 즉시 남편을 주님께 모두 맡겨 드렸다.
  며칠 후에 병원에서 남편이 죽게 되었다고 급히 연락이 왔다. 가서보니, 남편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산천초목이 떤다’는 말처럼 떨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가슴에다 손을 얹고 “하나님, 이 남편이 예수님을 몰라 그렇게 저를 핍박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성경에 보니 바울도 그랬고, 얼마나 많은 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변화시켜 주님의 사람으로 쓰시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이 남편의 병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기도를 했다.
  그 때 “예수님도 사흘 만에 부활하시지 않았느냐?”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님의 응답대로 정확하게 3일 만에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옮겨갔고, 급속히 치료해 주셔서 한 달 만에 퇴원을 하였다.
  그 후에 기도원에 올라 깊은 기도를 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내가 너를 들어 쓸려고 너의 가장 가까운 남편을 들어 십자가의 도구로 사용하였느니라, 네 남편도, 네 자녀도, 네 삶의 모든 고난도, 다 너를 위함이니라”는 말씀을 주셨다. 내 심령은 완전히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고, ‘어차피 내 길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구나’ 하는 깊은 믿음이 와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신학을 하게 되었다. 고통 중에 주의 율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금식기도로 모든 병을 깨끗이 치유받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응답주시는 데로 하리라 작정하고 금식에 들어갔다.
  금식 4일째까지도 나의 육신이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것 같았다.
  그런데 5일째 되는 날은 속이 울렁거리면서 요동을 쳤다. 육신과 영혼의 모든 더러운 것이 다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금식이 이래서 중요한 것이군요.’ 하는 기도를 드렸다. 금식 5일째부터 11일까지는 잠깐 꿈을 꾸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 숨도 못 자지 못했다.
  금식 6일째 되는 날은 내가 너무 힘들어해서인지 하나님께서 꿈으로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보여 주셨고, 그 뒤에도 두 번이나 꿈을 통해 응답을 주셨다. 응답을 주실 때마다 몸에서 힘이 솟아났다.
  11일째 되는 날은 보호식에 들어갔다. 보호식에 들어가면서 내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느꼈고, 잠을 잘 자게 되었다. 그동안 식당을 하면서 얻은 모든 병도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다.
  앞으로 대비해야 할 사역을 앞두고, 내게 영육간의 강건함을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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