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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방탕의 세월을 청산하고거듭나게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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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의 세월을 청산하고거듭나게 하심

- 양남열집사(59세, 남, 퇴계원감리교회, 경기도 남양주) -


예수님에 대해 듣기는 했으나

  나는 일년에 10번씩 제사를 지내는 철저한 유교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르고 자랐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우리 학교는 5학년이 두 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2반을 담임하셨던 선생님이 항상 산에서 노래를 부르며 기도를 드리곤 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노래 소리가 얼마나 좋던지 그 노래를 늘 배우고 싶었다. 2반 친구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좋대”라고 선생님께 들은 것을 늘 자랑하였지만, 나는 반이 다르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아버지께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좋대요. 저도 교회에 나가게 해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예수 믿으면 제사 안 드린다는데, 너 제사 드리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라고 한 마디로 거절을 하셨다.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군대를 제대한 후 나는 형과 농사를 짓게 되었다. 어느 해 추수를 마치고 형과 나는 각각 정미소에 쌀을 맡기고 보관증을 받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 평소에 놀음을 좋아하던 형은 그 보관증을 가지고 놀음을 하러 갔던 것이다.
  평소에도 나는 형을 찾아다니며 놀음판을 뒤엎고 다니는 것이 일이었는데, 그 날도 역시 형을 찾아 온 마을을 뒤지고 다녔다.
  겨우겨우 형을 찾기는 했지만 형은 “오늘 방아 찧은 것 다 날리고 몇 가마 안 남았다. 조금만 있으면 다시 다 찾을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앞이 캄캄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나는 놀음판을 말리러 갔다가 내가 가지고 있던 17가마 보관증을 가지고 놀음판에 뛰어들고 말았다. 나는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나가지 못 하게 한 후, 그 날 저녁 형님이 잃은 쌀 40가마와 돈을 몽땅 따게 되었다. 어이없게도 놀음을 말리러 갔다가 놀음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동네에서는 “서울에서 놀음을 배워 왔다더라”는 소문까지 나기 시작했다.
  그 후 여러 동네에서 놀음꾼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해도 내가 거절을 하자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가 “그럼 가볍게 술내기나 하자”라고 하며 매일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의 말이었기 때문에 결국 술내기 놀음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할 때마다 내가 이겼고, 공짜로 술 마시고 몇 만원씩 돈도 따고 하는 재미에 2주 동안 술내기 놀음을 하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야! 너 잘하는데 진짜 놀음 한 번 해보자.”라고 하였다. 놀음의 맛을 조금 알게 된 나는 그 말에 솔깃하여 호기심에 시작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한 가마, 두 가마 잃기 시작한 것이 결국에는 아버지께 물려받은 재산까지 몽땅 잃고 말았다. 그것이 친구의 꼬임이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형님의 논을 팔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형님의 도움으로 서울로 올라와 결혼도 하고,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며 노력을 하였지만 손 대는 일마다 꼬이기만 하고 제대로 풀리질 않았다.

무당을 믿고 의지했지만

  나는 하도 답답하여 점집을 찾아갔다.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조상을 잘못 모셔서 그렇다”라고 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무당의 말을 듣고 몇 차례에 걸쳐서 제사도 지내고 굿을 하였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나는 무당을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무당은 계속해서 굿이 잘못 되었으니 다시 해야 된다며 돈을 요구했다. 나는 여전히 일은 풀리지 않는데 계속해서 돈만 요구하자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다며 옥신각신 싸우다가 상을 뒤엎고 불상을 넘어뜨리고 나와버렸다. 그 일 이후 나에게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성경책 한 권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자고 했다. 나는 “내 눈에 성경책이 보이기만 하면 불살라 버릴테니 당장 갖다 버려”라고 하며 난리를 떨었다. 그러나 아내는 계속 교회를 다니며 가끔씩 조심스럽게 교회에 나가자고 말했다. 계속되는 아내의 권유에 결국 나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예수님을 믿었다기보다 자리를 채워주는 정도였다.
  나는 조그만 식당을 하는 아내에게 도움이 되고자 퇴계원에 일자리를 얻게되어 아내와 떨어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교회는 다녔지만 믿음이 없던 나는 아내와 떨어져 생활을 하다보니 생활의 통제가 되지 않았고, 여기저기 모임에 좇아 다니며 술과 담배만 점점 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방탕한 생활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치료하시는 하나님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목이 붓고 아파서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후두염이라고 했다. 의사는 술과 담배를 줄이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술과 담배가 없이는 하루도 살수가 없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니 병은 더 심해져갔다.
  몸은 상할대로 상하고 후두염은 더욱 심해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교회에 가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2001년 10월에 스스로 교회를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교회를 나가면서도 술과 담배를 끊을 수가 없었다. 술과 담배로 찌든 나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내 곁에 아무도 앉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다. 다른 성도들을 보기가 민망하여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수없이 들었지만 그것만이 내가 살길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앉아 예배를 드렸다.
  그런 나의 사정을 아시고 나를 위해 기도하시던 담임 목사님께서는 강남금식기도원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권하셨다. 나는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난 4월 15일 기도원을 찾아가 7일 금식기도를 작정하고 복용 중인 약까지 끊었다.
  나는 후두염이 심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예배시간에 소리내어 찬양할 수도 없었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며 그저 눈물로 찬양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주님! 이제는 지금까지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새롭게 태어나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며 살기를 원합니다. 제게도 기회를 허락하옵소서.” 하며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금식이 끝나는 날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목은 아팠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금식을 마치면서 주일을 지키기 위해 교회에 가서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까지 드리고, 22일 월요일 날 새벽예배에 참석을 하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예배 전에 드리는 준비 찬송을 불렀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목에 붓기도 빠지고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술과 담배에 대한 생각도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 순간 하나님이 치료해주셨음을 확신하게 되었고, 벌레만도 못한 나에게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새벽예배가 끝나자마자 기도원으로 다시 올라가 기쁜 마음으로 보호식을 하며 예배를 드렸다.
  식당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아내가 언젠가 편안하게 새벽예배를 다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었다. 나는 아내의 말이 생각 날 때마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고는 했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에게 “앞으로는 함께 손잡고 새벽예배 드리러 다닙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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