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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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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 조현숙 선교사(여, 49세, 신광교회, Santa-cruz Bolivia) -


남편의 헌신

  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이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내 안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었기에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안이 무엇인지, 기도의 응답이 어떤 것인지 몰랐었다. 그때까지 잘 믿는다고 생각했던 내 신앙은 실상은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은 형식적인 신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셔서 믿음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하시고, 남편과 늘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참 신앙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셨다.
  남편은 목회자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그래서 목회자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담임 목사님께서 신학을 공부하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데도 대답을 회피하며 피해 다녔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부부는 평신도 선교사로 헌신을 하고 여러 가지 훈련을 함께 받았다. 그러나 선교지에 도착한 후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신학을 공부하게 하셨고, 결국 남편은 주의 종으로 헌신했다.

신장기증으로 전한 복음

  주의 종으로서 헌신하고 하나님께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한 남편은 1988년에 영국에 가서 2년 동안 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신장기증자들의 방송을 들으면서 자신도 신부전증으로 고통받는 목회자들을 위해서 신장기증을 해야겠다며 기도하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몸이 약한 것을 이유로 반대하며 동의서에 서명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남편은 밤마다 기침을 심하게 하였다. 나는 그때 갈비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늘 피곤했었다. 그러나 남편의 심한 기침 때문에 밤에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루는 너무 괴로워서 기침하는 남편을 발로 걷어차며 다른 방에 가서 자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남편은 “내가 기도한 것을 막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동의서에 서명해 주면 되잖아.”라고 했다. 나는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쇠뭉치로 얻어맞은 것같이 멍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지연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의 종을 잘 보필하고 내조하며 섬기는 자로서의 그릇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남편에게 더 연단을 가져다 주고 고통을 주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나는 그 밤에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철야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내 생각과 이기심으로 바꾸려고 했던 것을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남편의 신장은 원래는 목회자에게 주려고 했었지만 잘 맞지 않아 어느 50대 불신자 여자에게 오직 복음을 믿으라는 조건으로 이식되었다. 수술실에서 수술받기 전 그 여자분은 “평생을 약 없이는 한숨도 잘 수 없었어요. 그런데 어젯밤에 선교사님이 찾아오셔서 성경책을 펴주시며 약을 먹지 말고 성경책을 읽고 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대로 했더니 아프지도 않고 편안해서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잘 수 있었어요.”라고 간증을 하며 감사해 했다.
  남편은 신장기증 수술 직후 회복실로 왔는데 평소 체력이 튼튼한 편이 아니었던 터라 그런지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도 측은해서 나도 모르게 “당신은 왜 이렇게 어려운 일만 골라서 하는 거예요! 그러게 누가 하랬어요?”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남편은 눈을 번쩍 뜨고는 “당신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데 그런 말을 해.”라며 불쌍하고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또 눈앞에 현상만 보고 실언을 한 것을 회개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싫어해도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며 그 하나님 앞에 나의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볼리비아에서의 생활

  4년 전 우리 부부는 볼리비아로 파송을 받았다. 가서 보니 볼리비아의 현지 상황은 어려웠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나아가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셨던 기적을 보여주셨다.
  처음 우리가 살던 집은 비가 많이 새고 살기에 많이 어려웠다. 한 은혜 받은 교인이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큰 집을 내 준다고 했다. 나는 선교사가 너무 좋고 큰 집에 산다고 사람들이 수근대면 복음을 전하는데 무슨 유익이 있겠으며 가난한 처지에 큰 집 관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받지 말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나 남편은 “하나님이 주신 집이니 믿음으로 들어가면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 다 인도하시고 도와주실 거야.”라고 했다.
  과연 남편의 믿음대로 그 집은 많은 교민들이 찾아와서 그들을 현지 교민교회로 연결해 주고 하나 되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이 한곳에 모여서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큰 장소를 달라고 기도해 왔었는데 우리 집이 예배 장소가 되었다. 우리 자녀들도 바라던 가장 좋은 학교로 인도해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때 그때 채워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며 해결해 주셨다. 큰 어려움들이 있었던 것은, 염려가 많은 나를 온전히 주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도록 하며 하나님의 뜻하신 일들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훈련하고 빚으시는 단계였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였다.

강남금식기도원에서 변화받은 볼리비아 교민

  우리가 볼리비아에 들어간 지 2년 후 남편이 한국에 나올 일이 생겼는데 우리 교회의 믿음 좋은 여집사님의 남편이 함께 나오게 되었다. 그분은 주일이면 아내를 따라 교회를 나오기는 했지만 세상에서 살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모든 행실에 있어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외면할 정도로 자기 맘대로 사는 분이었다. 공항에서 그분의 아내가 한국에 가서 선교사님과 강남금식기도원에나 다녀오라고 했을 때, 그분은 비웃으며 자기가 거길 왜 가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분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한국에 와서는 그렇게 유명한 곳이면 구경이나 해보자고 선교사님을 따라 기도원으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예배가 거듭될수록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지금까지 교회는 따라 나갔지만 마음은 교만하여 주님을 믿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 온 지난 삶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닫고 회개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도 충만히 받고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분이 볼리비아로 돌아와서는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간증할 때 전성도가 은혜를 받았다. 변화되기 전의 그분의 성품과 언행을 잘 알던 성도들은 변화된 모습으로 앞장서서 교회 봉사도 하고 교회의 큰 일꾼이 되는 것을 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미국으로 가게 되셨다. 그분은 변화되기 전에 누리던 모든 명예와 부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5헥타르(약 15,000평)나 되는 땅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선교사님 이름으로 기증을 하고 떠나셨다. 그리고 자신은 6만 불만 가지고 가셨다.
  미국에 도착한 후, 선교사님이 그분에게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후에 하라고 권면하신 말씀을 받아들여 10개월 동안을 기도하며 응답을 기다린 끝에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가게를 열었다. 그리고 6만 불이 60만 불의 재산이 되게 해주시는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분의 믿음의 헌신을 받으시고 다른 나라에서도 축복을 해주신 것이다.

기도제목

  이번에 내가 한국에 나온 것은 강남금식기도원에 오기 위해서였다. 기도제목은 한글학교를 열어 전도하고 양육하며, 그 학교를 통해 선교사와 교민이 하나 되는 일을 위해서이다. 또 쉴 새 없이 소망 가운데 힘차게 나아가는 남편을 보며 나도 그 남편의 영적 발걸음에 발맞추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분이 주신 5헥타르의 땅에 장애인 복지시설을 만들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 중에 있다. 얼마 전에 고생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개설한 천국 은행이, 지금도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더 큰 호응이 있기를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천국 갈 때까지 능력 가운데 헌신할 수 있도록 많은 힘을 주시고 또 기도의 후원이 있도록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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