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간증 병마와 싸우며 하나님 은혜 깨달아

첨부 1


병마와 싸우며 하나님 은혜 깨달아

“베트남에서 왔습니까”
1985년,약을 사러간 독일 유학생인 나에게 약국 주인이 물어본 첫 마디였다.그만큼 내 몰골이 흉했던 모양이다.당시 20대 중반의 나는 하루가 다르게 몸무게가 빠지고 얼굴이 까맣게 죽어갔다.안그래도 큰 눈은 살이 빠지면서 얼굴 전체가 눈처럼 보일 정도로 커져 버렸다.
전날 오페라 아리아를 연습하던 중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기증이 심하게 왔다.음악코치는 내 건강을 걱정하며 휴식을 권유했지만 시험이 코 앞에 닥친 나에게 휴식은 사치였다.의사가 내려준 병명은 갑상선 과다증.몸무게가 13㎏이나 빠진 나를 보고 약국 주인이 베트남 사람이냐고 묻는 것은 당연했다.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담이 결리고 눈이 튀어 나오는 바세도씨병으로 근시는 더욱 심해졌다.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건강은 악화됐다.
숨이 차고 힘들어서 교회에서 찬송조차 따라 부르지도 못했다.그 당시의 좌절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최고의 성악가가 될 것이란 내 욕망이 허물어져 내리는 순간이었다.특히 수술하지 않고는 도저히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절망은 더 심해졌다.주변에서 갑상선 수술을 받고 노래를 포기한 성악가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과연 나는 무엇 때문에 노래하는 것인가, 최고의 성악가가 되고자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처음 노래를 부르고자 마음 먹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던가.결국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앞만 보고 살았던 삶 때문에 하나님은 얼마나 서운해하셨을까.
이국 땅에서 하는 회개기도는 더욱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병들고 추한 이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부르짖었다.하나님의 은혜로 병고침을 얻는다면, 그리고 다시 음악을 할 수 있다면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살겠다고 서원했다.그러던 어느날 찾아간 의사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했다.수술하지 않고 약물만으로도 완치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숱한 병원 스케줄로 많은 시간을 빼앗겼지만 난 수술 없이 갑상선이 완전히 나을 수 있었다.
그 후 하나님의 복은 지극히 크고 놀라웠다.박사과정에 준하는 ‘마이스터’ 마지막 과정에 입학하게 됐고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에서 디플롬을 획득해 화제가 됐다.디플롬이란 전문가 과정으로 20년을 통틀어 3,4명 밖에 마친 사람이 없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다.나는 성악부문에서는 처음으로 그 과정을 마친 최초의 동양인이 되었다.
8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사랑의교회 제자훈련반이었다.훈련을 받던 중 불현듯 옛날 주님께 기도하며 결단했던 일들이 기억났다.모태신앙인으로 주님께 사랑만 받아왔을 뿐 사랑을 드릴 줄은 몰랐던 자신을 알게 됐고 다시 눈물로 회개하며 주님에 대한 진정한 찬양을 되찾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와 같은 긴 시간의 고통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찬란한 껍데기 속의 허망한 고무풍선같이 허공만 떠돌다가 그냥 터져버렸을 것이다.요즘 나는 학교 강의 외에 많은 찬양집회 초청을 받고 있으며, 크고 작은 장애인 집회에도 참석한다.그들과 함께 찬양하고 간증하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94년 신인음악상을 수상하며 21세기를 이끌어갈 한 사람이라는 성악가로서는 최고의 칭찬도 받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앞장서면 성악가로서도 정상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난 확신한다./인성희/성악가·사랑의 교회 집사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