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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우상을 섬기는 시댁의 가문이 변화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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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을 섬기는 시댁의 가문이 변화되고 있어요
   
김춘옥 권사(여, 56세, 청아교회, 강원도 철원군)


믿지 않는 가정으로 …

  강원도 철원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농부의 자녀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교회를 나갔다. 워낙 작은 마을의 시골 교회라 성도도 많지 않고 교사도 부족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후부터 교회학교 교사를 맡아 봉사했다. 그래서 나는 믿는 가정의 예수를 잘 섬기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던 부모님은 다른 믿지 않는 가정의 부모님과 서로 언약을 하시고 나를 그 가정으로 시집 보내려고 하셨다. 나는 너무나 싫었지만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한 후에도 계속 교회를 다녀도 좋다는 합의 하에 시집을 갔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시아버님께서는 시집을 왔으면 시집의 법을 따라야 마땅한 도리라고 하시며 낮에는 교회에 가지 말고 밤에 다니라고 하셨다.
  어른의 말씀에 거역하지 못하고 저녁으로만 1년 정도를 다녔을 즈음 다니던 교회가 재건축을 위해 건물을 헐게 되었다. 교회에 나가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던 나는 마음만 있었지 어느 것 하나 도울 수 없었고 건물이 없어서 교회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전신 소아마비가 된 딸 아이

  그렇게 교회를 못 나간지 약 3년쯤 지났을 때, 아주 건강하던 4살짜리 큰딸 아이가 갑자기 다리를 절룩거리고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전신 소아마비라는 판정을 받았다. 우리 부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픈 아이를 업고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갔으나 역시 전신 소아마비라서 고칠 수 없다고 했다. 불치병이라 입원도 시켜주지 않아 우리 부부는 다리를 저는 아이를 데리고 힘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세브란스병원의 진찰권에 인쇄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는 말씀이 내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동안 어떤 이유든 교회를 나가지 않은 것과 하나님을 거의 잊고 지낸 것을 회개했다.
  나는 남편에게 “우리는 교회를 나가야만 해요. 내가 시집의 눈치를 보며 시집의 법을 따른다고 하나님을 등졌었는데 하나님은 나와 우리 가족들을 사랑하셔서 우리 딸아이의 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가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잘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딸의 병을 낫게 해주실 거예요.”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남편도 딸의 병을 고칠 수 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했다.

  나는 몇 년만에 벅차 오르는 감격을 안고 새로 지어진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은 아직 관리할 목회자가 없어서 가까운 군부대의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시는 교회였다.

  나는 그동안 핍박이 괴롭고 싫어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끌려 살아왔던 약한 믿음을 회개했다. 그리고 내가 주님을 떠났어도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는 이사야 49장 15~16절의 말씀처럼 나를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놓으셔서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 딸의 병을 고쳐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하루가 다르게 병이 악화되어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밤낮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로 매달렸다. 그렇게 기도한지 6개월 만에 일어나지도 못하던 딸아이가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할렐루야!
  그러나 하나님께서 걷지 못하던 딸을 걷게 해 주시고 그 능력으로 역사 하심을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댁 식구들과 남편은 나을 때가 되니까 나았다고 말하며 또 다시 시댁의 법을 따르라고 핍박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시어머님의 결신과 핍박

  그 무렵 새로 이사오신 집사님이 잘 아는 목사님께 부탁하여 부흥회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인이 4명밖에 없는 상황이라 사례비도 드릴 수 없는데, 부흥회 기간 동안 묵으실 장소와 식사도 문제였다. 그래서 고민하며 부흥회를 위해 일주일 금식을 하였다.
  내가 밥을 먹지 않으니까 자연스레 남편이 알게 되었고, 어떻게 밥을 먹지 않고 일주일을 견딜 수 있느냐며 내가 몰래 먹는 것은 아닌가 슬쩍슬쩍 감시를 했다.
  그렇게 기도로 준비한 부흥회가 시작되었을 때 작은시어머님께서 교회에 나오셔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다. 그리고 남편도 교회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작은시어머님께서 교회를 다니시면서 온 가족들의 핍박이 시작되었고 작은 시아버님은 술을 드시고 구타도 하셨다. 견디다 못한 작은시어머님께서는 가출을 하셨고 그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어렵게 생긴 약한 믿음이지만 다시 믿어보려던 남편에게 ‘네 마누라는 가족에게 분란을 일으키고 형제를 이간하는 여자다. 집안에서 내보내야 된다’라고 하였다. 남편은 이혼하지 않으려면 교회를 다닐 수 없다며 그만두었다. 가출하셨던 작은시어머님은 돌아오셨으나 핍박은 여전하였다.
  매를 맞고 쫓겨 날 때는 아주 집을 나가 버리고 싶은 마음에 울면서 교회로 갔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신 주님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곧 주님의 위로하심과 새 힘을 받아 돌아가고는 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주님은 언제나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무너진 제사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내가 방언을 받았는데 방언 받은 때를 같이 하여 대대로 내려오던 수많은 제사가 무너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제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귀신의 역사가 어찌나 심했던지 나에게 그만 귀신이 들어왔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식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작은시어머님께서 사람 먼저 살리고 봐야 하지 않느냐고 하시며 제사 대신 추도 예배로 하나님께 드리면 귀신이 떠날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였던 시집 식구들은 모두 추도 예배를 드렸다. 추도 예배가 끝난 후에 나에게 들어왔던 귀신은 떠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제사에 쏟던 정성들이 깨어졌다. 할렐루야!

간경화를 치료받고 변화된 남편

  남편은 나를 따라 교회를 나가고 싶으나 형제 친척 때문에 못 나가고 나름대로 괴로운 심정을 술로 달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몸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병원에 가서 검사 받은 결과 장로님이셨던 병원 원장님은 간경화가 심하게 악화되어 예수님이라면 고칠 수 있겠지만 의술로는 가망이 없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해서 2000년도 2월 중순경에 강남금식기도원에서 3일을 금식했더니 남편의 배에 만져지던 딱딱한 것이 사라졌다.

  그러나 몸이 좀 나아지자 남편은 또 술을 입에 대었고 간이 다시 나빠져 식도를 통해 피를 쏟기에 이르렀다. 남편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고 나는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직 믿음을 고백 할 수 없는 남편을 지금 데려가시면 안돼요.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계속해서 기도했다.
  남편의 꺼져가던 생명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고 그 후로는 새벽예배도 잘나가고 나름대로 잘 믿어보려 애쓰는 흔적이 역력했다. 뒤늦게라도 돌아와서 변화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예수라면 치를 떨며 핍박하던 큰집엔 예수 믿는 며느리가 들어왔고, 작은시아버님도 이제는 예수님을 잘 믿으신다. 나는 시댁의 온 일가 친척들이 구원받기를 바라면서 남편과 함께 뜻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얼마 못 가서 우상을 섬기던 시댁의 가문이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가문으로 완전히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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