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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나를 변화시킨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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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킨 하나님

이용식 집사 (남, 53세, 주문진제일교회, 강원도 양양군)


 
공허한 건달 ‘갈매기’

  아침에 눈을 뜨고 바라보는, 찬란하게 솟아오른 태양 빛에 반짝이며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며 가슴속의 꿈을 키워나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지금도 설렘으로 다가오는 멋진 고장 주문진에서 나는 태어났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는 국가유공자가 되어 국가의 지원으로 어려움 없이 대학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버지가 안 계신 빈자리가 늘 공허함과 불만으로 병들고 있었기에 미래에 대한 꿈도 잠시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을 뿐 행복할 수 없었다.
  바닷가 주변은 어디나 그렇듯이 휴양지라서 향락적인 분위기이다. 그곳에서 나는 하루 하루를 싸움과 술과 여자로 공허함을 달래며 스스로를 타락시켰고, 결국 ‘갈매기’라는 별명의 건달이 되었다. 내가 나타나면 갈매기가 떴다며 바닷가와 주변 골목은 바짝 긴장을 했고, 내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떨며 피했다.
  그런 생활 가운데서도 몇 번이나 정신을 차리고 뉘우치며 새 생활을 해보고자 직장까지 옮겨 다니며 노력해 보았지만,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현란한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면 번번이 내 마음속에도 유혹의 불빛이 켜지고, 발걸음은 습관처럼 술집으로 향했다. 나는 끝내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술과 여자, 방탕한 생활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보훈처에서는 더 이상 강릉에서 취업을 할 수 없다고 통보를 보냈다.

새로운 삶의 시작

  그러던 어느 날 부부싸움을 하다 아내를 칼로 찌르고 말았다. 내 손에 잡은 칼이 아내의 살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다시 한 번 새 삶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칼에 찔린 아내의 상처가 아문 후 1984년, 우리 부부는 서울로 상경하여 길음동에 거처를 정했다. 당장 살길이 막막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한미은행에 취업이 되었고, 평화교회도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닌 것은 한 권사님께서 주일이 되면 아침 일찍 집으로 찾아 오셔서 나를 강제로 교회로 데리고 가셨기에 억지로 끌려가 앉아 있다 오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술 마시고 방탕한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서서히 진행되어 오던 알코올중독 증상이 심해져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온 몸이 경련을 일으킬 지경이 되었다. 나는 자포자기 상태에 놓여 장장 45일을 술만 마시다가 급기야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게 하고, 술과 달콤한 유혹에 못 이기게 하고, 방탕한 삶, 죄악 된 삶으로 빠져들게 하고, 종국에는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 마귀에게 끌려 다니다가 결국엔 건강도, 직장도, 인생의 많은 나날도 모두 잃었다.
  의사는 간수치가 800이 넘었고 계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하고 있던 친구가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한번 해보라고 하여 의술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했다. 그렇지만 역시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내가 이렇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고 있을 때 평화교회의 권사님 다섯 분이 날마다 나를 위해 찾아오셨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친자식한테보다 더한 사랑으로 기도를 해 주셨다. 야고보서 5장 15절의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처럼, 권사님들의 굳센 믿음과 사랑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일주일 만에 간수치가 뚝 떨어졌다.
  퇴원을 하고 나서도 중독 증상으로 인해 또 술을 입에 댈까봐 목사님과 권사님들이 수시로 예배를 드려주셨다. 나는 그때 그분들의 사랑에 감사했고 그로 인해 교회를 다닌 지 15년 만에 기도원에서 작정기도를 드리며 회개하였다. 그 후 내 죄를 용서하시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체험하게 되자, 내 속사람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방탕하며 밖으로만 떠돌던 내가 가정으로 돌아왔다.
  공자, 맹자의 이야기 같은 좋은 명언을 들으며 변해 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으나 방탕의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나니 내 안과 밖이 변화됐다. 그때부터 수입이 생기면 십일조와 감사생활을 철저히 했고,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3장에서 약속하신 말씀처럼 건강과 더불어 물질을 축복하여 주셨다. 무엇을 하든지 기도로 시작하니 믿음도 성장시켜 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고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철저히 섬길 때 나에게도 기쁨이 되고, 하나님도 역시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심을 내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기도로 해결하기

  그렇게 매일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뜻하지 않던 고향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놀고 있는 땅이 있으니 내려와서 사는 것이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당시 나는 기도 제목이 있을 때면 수시로 기도원에 올랐었기 때문에 그때도 기도원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했다. 주문진에서 떠날 때는 건달의 부끄러운 모습이었지만, 15년 만에 예수 믿고 변화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친구에게 빌린 황무지 땅을 개간하여 1000만 원으로 컨테이너 집을 짓고 ‘평화가든’이라는 상호를 걸고 막국수 집을 열었다. 평화교회 이 목사님과 교회 식구들이 개업예배를 드려주셨다.

  식당을 개업하고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땀을 흘리며 뛰어 다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저 깡패가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예수를 믿는다고? 저래봐야 얼마나 갈까?” 하고 비웃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엎드려 기도했고, 나의 수입이 복음선교사업을 위해 쓰여지기를 바라며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많은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셨고, 나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용식이 두고 보니 정말 사람 변했네?”, “저 용식이 보니 하나님이 진짜 계시구먼.” 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장사가 잘되는 것을 시기한 친구는 자신이 빌려준 땅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황무지를 개간하면 5년의 사용 권한이 있어서 친구는 땅을 돌려 받을 수 없었다. 그러자 친구는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겼다. 고생하며 황무지를 일구고 이만큼 자리를 잡았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새 땅주인은 너무 비싼 임대료를 요구했다. 장사는 여전히 잘되었지만 비싼 임대료를 내려면 그동안 자원해오던 지역의 노인들을 모셔서 무료 급식을 하는 일이나, 또 다른 여러 선교사업 후원에 지장이 생기게 될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2개월 작정 새벽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작정기도 2개월도 다 채우기 전에 평택에 살고 있는 우리 가게 앞 딸기밭 주인한테서 연락이 왔다. 급전이 필요하니 300평 되는 자신의 땅을 사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조건과 기회가 좋았지만 땅값 일억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나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찾아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너무나 변한 형님의 모습은 옛날의 형님이 아니다. 그토록 믿음을 가지고 살아 보려고 노력하니 돈을 마련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또다시 길을 열어 주셨다. 큰 장애와 어려움은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나를 피눈물 나게 하며 땅을 팔아 넘겼던 친구는 다른 곳에 투자를 했다가 돈만 날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새로 산 땅의 용도와 사업변경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원에 올라왔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응답해 주시므로 한없이 기쁘다. 나는 이 세상 사는 날 동안 교만하여지지 않고 순종하도록 힘쓰며, 나 같은 죄인을 변화시키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증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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