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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야훼께 부르짖으오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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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께 부르짖으오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 이묘자 집사 (여, 58세, ○○○ 교회, 경기도 화성시) -



39세라는 늦은 나이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4월초 시골에서 살았던 나는 ‘기도원'이란 곳은 잘 알지도 못했는데, 동생이 “공기가 좋고 운동 삼아 기도도 하라"면서 기도원에 데려다 주었다. 동생은 믿음이 좋아 교회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였다.
  그때는 세상에서 돈만 벌면 된다는 욕망과 10년째 남편이 없어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나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돈이 5년 정도는 잘 벌리다가 이상하게 무엇을 하든지 간에 사업이 망하고 계속 유지되지 않았다.

  39세이라는 늦은 나이에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전에는 부안이라는 곳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곳에서 간척을 하려 했는데 그 동네는 희한하게 99%가 예수를 믿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나도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믿어서 함께 예수를 믿게 되었다.

  부안 간척지에 논을 트렉터, 포크레인으로 진흙을 삽질하려면 너무나 힘이 들었다. 어느 날은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니까 허벅지에 멍이 들어서 ‘다친 데도 없는데 왜 멍이 들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힘이 부쳐 허벅지에다 삽을 놓고 진흙을 푸니 허벅지에 멍이 든 것이었다. 그만큼 당시에는 열심히 일을 했었다.

  장사를 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 시동생이 배를 타서 배에다 부식을 실어주면 한 배에 15만 원을 받게 되었다. 당시 그 돈은 매우 큰돈이었고, 배 10척만 일을 하면 한 달에 몇 백만 원의 돈이 들어왔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다시피 했는데 남편이 화투와 술을 좋아해 집에 있는 돈을 모두 들고 나가, 나는 돈을 숨기기도 하고 내놓지 않아 몽둥이로 맞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너무 힘이 들어 돈을 모두 주고 “이거 가지고 가서 다 잃어버려라."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80년도에 년간 소득 몇 천만 원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으나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 가서는 슈퍼를 운영하게 되었다. 집 근처에는 교회가 없어 15리나 떨어져 있는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교회를 나가게 되니 남편의 핍박이 심하였다.
  슈퍼마켓을 독점하고 농사도 2만5천 평을 짓게 되어 80년도에 벌어들인 돈이 년간 소득, 몇 천만 원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교회에서 ‘십일조 150만 원만 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는데 그때는 돈이 들어오는 액수를 정확히 몰라서 온전한 십일조도 하지 못했었다.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에 교회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 주었다. 성가대 가운, 앰프 시설 등을 기증하였다. 교회에서 유치원을 운영해서 3년 동안을 봉사했으며 차량봉사도 5년 동안 하였다.

  그런데 3년 전에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데 한 장로님이 “영생 훈련이란 것을 들어 보셨습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곳에 함께 가보자"고 하여 따라간 곳이 서울에 있는 ○○○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3일 동안 성전에서 잠을 자며 훈련을 받게 되었다. 훈련 후에 전도사님이 전화를 해서 “오늘부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해서 한 달 동안 일해서 교회에 다 헌금을 하고 남은 돈 19,000원으로 생활을 하였다.
  교회에 가서 방언도 받고 성령을 받았다. 큰아이는 결혼을 하고, 작은아이는 28세여서 나 혼자서 교회에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 교회는 교인들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초대교회처럼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갑자기 머리에 뇌경색 증상이 있었다.
  체한 줄만 알고 있다가 일을 나갔는데 속이 매슥거리고 어지러웠다. 그래서 말도 잘 못하고 있었는데 개인 병원에 갔더니 “MRI를 찍어 보라."고 하였다.
  몸이 아파 교회에 하루 종일 혼자 누워 있었고, 나중에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병원에서 20일 이상을 엄지손가락도 굽힐 수가 없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대소변을 3일 동안 받아 내게 되었다. 몸에 마비는 왔지만 “아,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이게 하나님의 채찍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기도할 줄도 몰랐었다. 그전에는 고통스러울 때 교회에서 철야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곳은 정통 교회가 아니고 이단 교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다가 다리를 움직이려면 쇳덩어리처럼 들리지 않아서 신음하였는데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시겠지."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후에 아팠던 곳도 팔이 팔꿈치까지 들려서 너무나 감사해 울음밖에 나지 않았다.

영혼을 치유하시고 육신도 건강하게 해 주신 하나님

  그 당시 나의 믿음은 기도할 줄도 모르고 시간 때우기 말씀을 보는 정도였다. 5∼6시간 말씀을 보아도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6개월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동생이 소개해 주어서 강남금식기도원에 오게 되었다.

  그 주간이 고난 주간이었는데 약도 한 달 치 분량을 가지고 와서는 3일 동안 먹었는데 기도원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꽂히는 것을 느꼈다. 교회에서 수백 번 들어도 깨우칠 수 없었던 말씀(로고스)이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말씀(레마)이 되었다.

  특별히 고난 주간에 심령의 변화가 있었다. 말씀 받는 것마다 나의 것이 되었다. 5번의 기도원 예배는 환자가 드리기에 힘이 드는 것이었는데 감사하게도 4번을 참석하게 되었다.

  어느 날 원장님께서 “중풍병, 질병은 낫는다"고 하셨다. 그때까지는 감히 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 이 병을 치료해 주셔서 하나님 원하시는 곳에 쓰시라'고 기도하였다.
  그날도 성전에서 새벽 예배 끝나고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최자실 목사님이 안수를 해 주시는 것이었다. 꿈속에서도 화들짝 놀랐다. 그 이후로는 몸이 계속 좋아졌다.
  기도굴에서 찬양을 하면 기도가 끊어지질 않았다. 벽을 치면 벽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영혼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영혼이 먼저 치료되고 육신도 건강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동생이 안 데리러 오는 것이 서운했지만, 이제는 동생이 그렇게 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이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면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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