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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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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김명남 집사 (여, 52세, 청동교회, 부산시)



“교회에 가지 말라.”고 목에 칼을 대며 위협하던 남편

  처음으로 내가 강남금식기도원에 오른 것은 2000년 11월 19일이었다. 어릴 때 교회를 다녔으나 말씀이 뿌리를 박지 못했고, 결혼할 무렵에는 아예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시어머님이 무당의 딸이어서 집안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시집을 가서 핍박을 받다가 교회를 한동안 나가지 못하였다. 결혼을 할 무렵 “나는 교회를 꼭 다녀야 하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순순히 “그렇게 하라.”고 하였으나 결혼을 하고 나니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심지어는 “교회에 가지 말라.”고 목에 칼을 대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첫아이를 가졌을 때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하였다. 유난히 딸만 많았던 시집에서 남편은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하여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아들을 주세요. 만약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 쓰임 받게 할게요.”라고 서원 기도를 하고 첫아들을 낳고 까맣게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이유도 없이 아이 눈에서 피가 나는 것이었다. 남편이 그 당시 군에 가 있어서 나는 잠시 친정에 머물고 있었었다. 당시 믿음 좋던 둘째 언니가 목사님 집에서 세를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올랐다.
  왠지 그 목사님께만 가면 아이가 낫을 것 같아 차를 세 번 갈아타고 병원이 아닌 언니가 있는 상도동으로 달려갔다. 100일 기도 중이셨던 목사님 댁에 가서 안수를 받으니까 아이의 눈에서 피가 금방 멈추어서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구나.”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남편이 이후에 제대를 하였으나 가난해서 언니가 세 들어 살고 있던 방을 주고 언니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자연적으로 목사님 댁에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남편은 돈이 없어서 그 집에 살고 있었지만 교회 다니는 것을 아주 싫어하였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 살았는데, 남편이 지방으로 일을 간 사이에 믿음이 없는 시누이들이 짐과 아이 둘을 다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도 따라갔다. 이사 간 곳의 열악한 방 한 칸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당시 믿음이 굳세지 못해서 기도하지도 못하고 “시어머니 돌아가시면 예수를 믿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시간이 흘러 큰아이가 16세 때까지가 되어 버렸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본드에 손을 대기 시작한 아들

  아들아이는 5∼6세 때까지 굉장히 총명했는데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부터 머리도 둔해지고 공부도 못하더니 중3말기 때부터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속을 썩이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본드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용산 선린중학교에 다니던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의 행동이 이상하니 부모님께서 관심 있게 지켜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아들아이가 그렇게 큰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다.
  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했더니 “상일동에 있는 ○○고등학교 밖에 갈 수 없는 성적입니다.”라고 해서 “그곳이라도 보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남편은 5시에 일어나 아이를 상일동에 있는 고등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 데려다 준 아이는 점심때가 되면 학교가 아닌 동네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목욕탕에 내가 자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믿음 좋은 집사님이 “당신에게 내가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고 하며 자꾸 전도를 하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집사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집사님, 저도 예수를 믿고 싶어요. 그런데 가족의 일 때문에 지금 당장 예수를 믿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랬더니 집사님은 “지금부터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하십시오.”라고 하면서 목욕탕에서 집사님의 말을 따라 했는데 그날 밤에 예수님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 주시었다.
  그 후 밤 2시쯤 눈이 깨어 아이에 방에 들어갔더니 아이가 이불 속에 급하게 무언가를 감추는 것이었다. 본드 흡입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한 본드 중독으로 아이는 피부색까지 변하였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했더니 “이 아이는 1년 동안 독방에서 지내도 고치기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절망적인 면담 결과를 알려왔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에게서 우리는 어떤 희망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10일 금식기도로 위장병과 자궁 혹도 나아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남편에게 “이럴 수가 없다. 아이를 데리고 둘째 언니에게 가야겠다.”고 하였다. 무조건 아이를 데리고 둘째 언니에게 달려갔다. 언니네 집에 가서 새벽기도를 나갔는데 하루는 목사님이 “이 중에서 성도 한 분에게 금식령이 내렸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금식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나는 나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었다.

  4월 5일 아침이 되어서 주일학교 교사였던 언니가 김밥을 싸달라고 해서 같이 김밥을 싸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입덧을 하는 것같이 음식 냄새를 맡자 헛구역질이 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언니는 “내가 아니라 너다.”라고 하여서 온전히 3일 동안 금식을 하였다. 금식이후 금요일 12시쯤 되었는데 예전부터 있었던 두드러기가 목사님의 안수를 받고는 없어졌다.
  또 몇 일 뒤에는 아들아이가 화장실에서 뛰어 나오며 본드 봉지를 땅에 집어 던지고는 헛구역질을 하였다. “너 왜 그러니?”하고 물으니 “엄마, 나 다시는 이거 안 할께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 본드는 다시는 손을 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철이 들고 학교를 졸업해 직장에 잘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직장에 가라.”고 해도 대답도 안하고 성격이 매우 난폭해지며 폭언을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노름을 하여 5000만 원을 날린 것이었다. 아침마다 깨워서 직장에 보내려고 하니 머리맡에 있던 화분을 벽을 향해 던졌는데 화분 조각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렀다. 문제가 이쯤 심각해지자 나는 기도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기도원에 가서 10일 금식을 하였는데 힘이 들지 않았다. 금식 6일 정도 되었을 때 언니가 와서 “아픈 곳이 있으면 회개를 하라.”고 하였다. 95년도에 자궁에 3개의 혹이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금식기도 이후 어느 날인가는 새벽기도를 다녀왔는데 아래쪽에서 무언가 확 터져 나오더니 이불도 젖고 옷도 젖었다. 직장에 가서도 계속해서 조금씩 냄새나는 무언가가 흘러 나왔는데 그제야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니 자궁에 있었던 3개의 혹이 없어진 것이었다. 10일 금식하면서 위장병과 자궁의 혹도 나았다. 작년부터 강남금식기도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6번째 이곳에 와서 위로와 용기를 받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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