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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게 주신 사명 감당하려면 영어는 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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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신 사명 감당하려면 영어는 필수였다

-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내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사역하는 일이 영어 때문에 막힘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 앞에 성실하게 준비한 자세가 아니라고 믿는다. 이런 지울 수 없는 부담감이 오늘날까지 나를 영어와 질긴 인연을 맺게 하였다. 그러고 보면 이것이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부르심이라고 본다.

나와 영어와의 인연은 중학교 때부터이다. 아버지께서 가끔 외국 손님들을 집에 데려오실 때면 꼭 나를 불러서 그들에게 인사시키신다. 나는 외국 손님들 앞에서 홍당무가 된 얼굴로 몇 마디 외어둔 문장을 떠듬떠듬 말하곤 했지만, 이 분들은 나의 그런 모습이 여간 귀여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베리 굿(very good), 베리 굿!” 마음씨 후한 미국 아저씨들은 나의 서툰 영어에도 불구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아무튼 나는 영어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도 없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영어나 수학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영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발음을 훈련시킬 때면 언제나 내가 어떻게 발음하는지 내 입술 모양을 지켜보시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많이 있는데, 왜 선생님은 내 입술만 보면서 영어 발음을 시키실까?’ 왠지 선생님이 나만 편애하는 것 같은 인식을 다른 아이들이 갖게 될까 거북한 마음이었다. 어쨌든 그때 그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영어 발음이 이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몹시도 방황하며 정신 못 차리던 때였다. 학교 공부는 완전히 담을 쌓고 오직 노는 일에만 정신을 쏟던 시절이었다. 모든 공부의 기초가 허물어져 가고 있었지만, 유독 영어만큼은 흥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학교 공부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팝송(pop song) 가사를 외우느라고 말이다.

신학대학에 와서도 몇몇 급우들과 함께 영어공부 모임을 만들어서 학교 수업하기 전에 일찍 모여 공부하곤 했다. 그 때는 영어 원서 몇 줄 읽으려면 사전을 더 많이 찾아야 했던 때였다. ‘나도 언제쯤이면 사전 안보고 영어 원서를 줄줄 읽어내려 갈 수 있을까?’ 나는 소망을 가지고 나름대로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다. 기분 좋았던 것은, 나는 늘 영어 원서를 들고 다니는 취미가 있었는데, 이 취미 때문에 학교 동료들은 내 영어실력이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원서를 끼고 있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그들의 눈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헤헤. 나도 별 볼일 없는 실력이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다.’ 그런데 그 때는 몰랐었는데, 사실은 영어에 대한 친숙감을 갖는 것이 영어 실력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늘 영어책을 끼고 다녔기에 영어에 대한 친숙감이 있었다. 신학 4년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모든 수험생들의 두려움은 영어 시험이었다. 지금도 영어 시험은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당시에는 영어 시험이 거의 모든 필기시험의 당락을 결정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이유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무슨 문제가 나와도 답장을 메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나는 한편으로는 시골에서 목회를 하면서 또 시간을 쪼개어 학장님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신학 전공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을 이삼년간 했던 일이 내겐 또 하나의 영어 학습의 큰 자산이 되었다. 더군다나 어느 잡지사에서 영문 수필들의 번역을 정기적으로 내게 부탁하였는데, 이것을 번역하여 보내면 이백 자 원고지 한 장 당 천 원씩을 번역료로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당시 가난했던 전도사 시절의 나에게 큰 재정적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어 실력 향상에도 큰 발돋움이 되었다. 
그 후 교수가 되고 나서 캐나다에 교환교수 자격으로 가서 한동안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영어 쓰기나 읽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데, 도대체 듣기와 말하기가 안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듣기는 나의 두려움이었다. 캐나다에서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영어를 못하는지를 철저하게 깨달았다.

캐나다에서 돌아올 때 나는 굳은 다짐을 하였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꼭 영어를 정복하고 말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속 영어에 대한 소원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의 그런 다짐도 얼마 후면 풀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곳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도 아니고, 학교에서도 비록 수많은 시간을 영어공부에 비중을 두긴 하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죽은 영어 아닌가? 그런데 내가 결심 하나만 가지고 이것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 노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 영어와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즉, 주님께서 세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기에, 나는 이 명령에 대한 복종을 위해서 영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서 영어는 부수물이 아니고 선택사항도 아니다. 필수인 것이다.

나는 나의 모든 환경을 영어식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간단한 회화는 식구들과 영어로 하고, 틈날 때마다 영어 성구 암송과 영어성경 읽기를 한다. 집에서 런닝 머신(running machine)으로 운동을 할 때는 TV의 영어 프로그램을 본다. 그 당시 우리 집은 TV를 베란다에 내다놓았었다. 지금은 아예 TV가 없지만. 그래서 TV 보고 싶으면 운동을 하든지, 또 운동을 하려면 TV 영어 프로그램을 보든지 말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나 자신의 영어에 대한 know-how인데 공개하겠다. 나는 개인기도 할 때 영어로 기도하기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렐루야, 아멘을 빼놓고는 잘 안되었지만 점차 영어로 기도하는 표현이 늘어나게 된다. 나중에는 영어기도가 우리 말 기도보다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설교를 들을 때는 한국말로도 은혜를 받고 또 이것을 마음 속에서 영어로 동시통역을 해서 또 한 차례 은혜를 받는다. 이것도 처음에는 잘 안 된다. 그래도 자꾸 하다 보면 점차 우리말 문장 형식을 영어식으로 바꿀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적절한 영어 문장을 찾아 한국말을 영어로 통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통역에 있어서 문장 전체를 붙잡아야지 너무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다 보면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니 주의하기 바란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내게 질문할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영어를 잘 하십니까?” 원어민들이나 영어권에서 자란 2세들이 나의 영어를 듣는다면 당연히 딱딱하고 유치한 수준일 것이다. 그건 당연하다. 내가 미국인도 아니고 또 영어권에서 자라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래도 나에겐 한 가지 자부심이 있다. 내 전공에 관한 강의, 설교, 신앙상담, 기도, 논문발표, 부흥집회 인도 등에 있어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이 이젠 거의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내가 다른 전공의 영어에 신경 쓸 일 없다. 미국인들끼리 조크(joke)를 사용하며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괜히 주눅들 이유도 없다. 나는 복음 들고 세계의 땅 끝을 향하기 위해 영어 훈련을 한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스스로 ‘이 정도면 불편함은 없다’는 수준까지는 도달한 것이다.

앞으로도 영어와 관계된 나의 소망 중의 하나는 영어권의 한국인 1.5세와 2세들에게 부흥회나 세미나를 통해 부흥의 불씨를 전달하는 일이다. 나는 한 해 동안 미국과 캐나다와 영국 그리고 호주 등을 돌아보면서 그들이 드리는 EM(English Ministry) 예배 가운데 영적인 자유와 능력이 같은 교회에서 드리는 한국어예배에 비해 매우 약한 것을 보았다. 많은 한인교회들이 갖고 있는 고민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하면 부모들이 갖고 있는 한국적 영성의 긍정적인 면들을 그들의 영어권 다음 세대들에게 누리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다음 세대들은 부모들 예배와 영어권 예배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어떻게 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각지대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들이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고 또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영어예배를 드리는 모든 한인교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담당해야 할 일인 것이다. 내가 비록 영어에 능한 자는 아니지만,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달려가서 그들에게 친숙한 영어로 그들을 깨우는 일을 하고 싶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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