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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은혜 가운데 임한 축복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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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가운데 임한 축복의 삶
 
- 김영환 집사 (남, 41세, 금란교회,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


94년도에 집사 직분은 받았으나 여전히 엉터리 신앙인으로 살았는데...

  내가 청년이었던 시절, 집안 아저씨가 목사님이셔서 교회를 조금 다녔으나 매일 술을 먹다시피해 교회 출석은 꾸준히 하지 못하고 다니다 말다 하였다. 그 후 결혼해서 86년도에 망우리로 이사 가면서 아내와 함께 지금까지 금란 교회를 다니고 있다. 94년도에 집사 직분은 받았으나 여전히 엉터리 신앙인으로 살았다.
  물론 교회 봉사는 마음에도 없었고 당시 설비업을 하고 있었는데 십일조를 하기는 했지만 온전히 하지는 못했었다. 때로는 성전 공사도 맡아서 했는데 수입이 일정치 않아 힘들어서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일을 하며 술과 담배를 엄청나게 많이 했다.
  교회에서 “속회 예배드리러 가자."고 전화 오면 억지로 대답해 놓고는 사람들 오는 동안 술을 잔뜩 먹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와서 보고 그냥 가거나 계속 가자고 권하면 따라 가서 교인들에게 실수도 많이 했었다.
  그런 가운데 아내가 7개월간이나 예배를 안 드려 신앙이 안정되지 못하고 우울증 증세가 있던 중에 식당을 하던 정 권사님의 속(구역)으로 바뀌면서 우리 부부는 신앙의 전환점을 갖게 되었다. 그 권사님은 “96년도 강남금식기도원에서 21일 금식기도로 모든 병을 고침 받은 후 하나님 일에만 헌신하게 되었다."며 우리를 신앙으로 잘 이끌어 주셨다. 나중에 아내는 집안에 조그만 일이 있어도 함께 찾아가 예배드리자고 할 정도로 권사님을 따르게 되었다.
  권사님은 손수 식당을 경영하셨는데 다른 일을 계획하시고 남에게 인수시키려고 하셨다. 그때 권리금을 주고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있었지만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는 가게를 우리에게 주셨다. 돈이 없어서 “돈 벌어서 조금씩 권리금을 갚겠다."고 했더니 “걱정 말라."고 하시며 권사님은 오히려 기도로 밀어 주셨다.
  작년 11월, 나는 술만 먹고 술꾼들과 어울려 카바레를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아내가 보기 싫어져서 가정이 파괴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술이 잔뜩 취해서 권사님 집에 전화를 해서 “나 이제 재수 없어서 교회 안 다닐 테니까 교회 가자고 하지 말라."고 주정을 하였다. 권사님은 요한복음 14장 27절의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나니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말씀을 가지고 권고하시며 3시간을 상담해 주셨다.
  그러고는 “함께 강남금식기도원에 가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산에 가서 돌아다니다 올 생각으로 “기도원 가겠다."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올라가는 날까지 먹을 것 다 먹고 18일에 올라가서 25일까지 1주일간 금식기도를 하였다. 처음에 금식은 생각도 안 했었다. 매 때마다 시간 맞추어 밥을 먹는 습관이 있어서 식사시간 늦으면 큰일났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배드리면서 하는 금식이라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시간시간 찬양만 하면 눈물이 나고 모든 말씀이 은혜가 되었다. 기도원에서의 시간이 아까워서 새벽부터 철야예배까지 드리며 설교 메모도 하였다. 특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렘 33:3)라는 말씀과 찬송가 338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를 부르며 정말로 많은 회개를 하고 감동을 받았다.
  금식 3일째, 꿈속에서 누군가 옆에서 “빵을 먹으라."고 해서 무심코 먹으려 하는데 옆모습이 예수님 같은 분이 “먹지 말라."고 하셔서 안 먹었다. 잠이 깨고 나니 더욱 힘이 났다.
  그날따라 권사님이 꼭 오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정말 놀랍게도 기도원 버스를 타고 권사님이 오셨다. 바쁜 일이 있어서 못 올 형편이었는데 갑자기 성령님이 마음속에 감동을 주셔서 “그 영혼 금식하다 시험 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음성이 들려 무조건 기도원 버스 타고 올라오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 같아서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금식 기도 1주일을 하고는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도원을 내려와서 부터는 술·담배를 깨끗이 끊게 되었고, 완전히 새사람 되어서 새벽기도도 3개월 동안 열심히 다녔다. 그런 중에 일해 주고 1년 동안 돈을 못 받은 집에서 “양심에 찔린다며 돈을 받아 가라."고 전화가 왔다.

10∼20만 원이었던 십일조가 60만 원까지 늘어 감사

  그 후로 교회에서도 교회학교 소년 15부에서 차량봉사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승용차로 하다 차를 바꿔야겠다는 말에 교사들이 합심으로 기도했더니 승합차로 바꾸게 되었다. 또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소년부 부장선생님과 권사님들과 함께 기도원에 가서 큰 은혜를 받았다.
  사업도 축복하셔서 전에는 둘이 벌어도 10∼20만 원이었던 십일조가 60만 원까지 늘어났다. 이제는 온전한 주일 성수 하고자 주일에는 식당 문도 안 열었다. 그러나 주일에 쉬는데도 오히려 식당이 엄청 바빠졌다.
  전부터 나는 동네에서 통장 일을 보았는데 그 모임이 1달에 1번 있었다. 처음에는 교회 다니면서도 같이 술을 먹었지만 기도원 다녀와서부터 안 먹으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고 놀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안 마시나 보자던 사람들도 지금까지도 술을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이제는 모두 나의 신앙을 인정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 모임에서 놀러 가는데 하필 주일에 가게 되어서 “교회가야 한다."며 빠졌더니 비난을 많이 하였다. 그러나 “통장 사표를 내면 냈지 주일에 소년부 봉사하는 것을 안 할 수는 없다."고 그들을 설득하였다. 옆 가게 미장원 주인도 내가 참아봐야 한두 달이겠지 했는데 나를 보고 은혜 받았다며 다시 교회도 나오고 세례도 받았다. 그렇게 심방을 해도 안 나오다가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자기도 예수 잘 믿어야겠다고 다시 교회에 나왔다는 것이다.

축복의 제단을 쌓아라

  설비 일을 하다보니 가정집에 들어가면 대부분 커피를 주는데 기도하고 먹었더니 집주인 자매가 “교회를 가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 없어서 못 다닌다."고 해서 데려다 교회에 등록을 시켰다. 감사하게도 전도의 열매까지 주신 것이다. 그런 나를 보신 남성구역 인도자 권사님이 “몇 년간 사람 만들어 보려고 그렇게 별 짓 다해도 안 되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느냐?"고 하시며 놀라셨다.
  이제 교회에서 나는 소년부 차량 봉사와 보조 교사 그리고 속회 관리 집사와 남선교회 서기로 봉사하고 있다. 부부관계가 좋아진 것은 물론 전에 술 먹으면 무서워하고 피했던 애들이 지금은 제일 좋아한다.
  또 설비업을 하면서 어려운 노인들 수돗물이 고장나거나 얼어서 안될 때 고쳐주고, 아내는 식당을 통해서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있다.
  참으로 기쁜 일은 기도원 있을 때 성전 건축 헌금을 제법 많이 작정했다는 것이다. 약정한 헌금 마련을 위해서 매일 소주 2병의 술 값 2000원과 담배 2갑 반의 3000원 정도를 계산하여 5000원 정도씩을 모으면 1달이면 15만원, 1년이면 제법 큰돈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하루하루 계산대로 모으다가 빨리 드리고 더 큰 축복 받자는 믿음으로 하루 10만 원도 떼곤 하여 6개월 만에 약정한 성전 건축 예물을 드렸다.
  담배 없으면 못 살 줄 알았던 내게 은혜 없으면 못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린다. 진정한 평안은 세상에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요 14:27)을 만인에게 전하는 삶이 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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