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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주님과 함께 하는 성령과 능력 충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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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 하는 성령과 능력 충만한 삶
   
- 권택현 목사 (남, 57세, 갈릴리교회, 경기도 부천시 중동) -



한때는 불교학생 회장으로 초청되어 다니기도 하였는데

  학교 다닐 때 나는 늘 착실한 편이었고 공부도 재미있게 하여 포항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1등을 하는 모범학생이었다. 주변에서 똑똑하다는 칭찬 속에서 나 자신을 믿으며 내 생각으로 열심히 살았다. 한 때는 불교 학생회장으로 초청되어 다니기도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우상숭배에 앞장 선 큰 죄인이었던 것이다.
  약 30년 전 인도네시아에 경리부장으로 1년 반 정도 파견 근무로 나가 있을 때 그곳 생활이 너무 덥고 외로우니까 아내가 현지인 교회를 나갔다. 우리는 한국에 돌아와서 집 근처의 교회를 다니다 “개척교회를 도우라”는 하나님 뜻을 깨닫고 십일조 내는 성도가 우리 부부뿐인 재정이 어려운 교회를 5, 6년 다녔다.

  그러다 여의도로 이사하여 성도가 2만 명이 넘는 K교회를 다니며 거기서 안수집사의 직분을 받았다. 아내는 하나님께 일평생 바치겠다고 경제학 박사과정도 포기하고 주의 일에만 헌신하였다. 그 당시 K교회에서 우리는 유명한 부부교사였다. 학년초 3명을 맡으면 학년말에는 30명을 올려 보낼 정도로 열심이었는데 평일에도 애들을 우리가 사는 시범아파트로 전도해 와서 성경 찬송 부르며 놀아 주곤 하여 우리 집을 ‘시범교회’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직장에서 이사로 한참 일하던 50세에 ‘오직 성경, 오직 예수’를 외치며 순종하다보니 하나님께서 ‘신학 하라’는 감동을 주셔서 순종하여 야간으로 신학공부를 하였다. 그러면서 신학교 교수님이 시무 하시는 교회에서 전도사와 강도사 과정을 보내고 99년 9월 개척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갈릴리교회’를 세워 우리 부부는 첫 예배를 드렸다. 그때 영국계열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여의도에서 20년 정도 살다가 본사인 부천으로 이사를 가게된 때였다. 부천은 아무 연고도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가 둘 다 공해에 약해 이사 갈 이유가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다.

어린이 사역에 비전을 주시어 노방전도를 하며

  처음에는 우리 집 아래층에 교회를 꾸몄는데 지금은 집 전체가 교회가 되었다. 나는 지난 3월까지 직장을 계속 나가고 있어서 사모가 수시로 전도를 나갔는데 6개월 만에 어린이 성도 한 명이 생겨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뒤 어린이들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거짓말처럼 모였다. 모두 부모가 예수를 모르는 불신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사모는 사시사철 놀이터로, 학교와 학원주변으로 어린이가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예수 믿으라고 노방전도를 했다.

  처음 한 번만 예배를 드리다가 어린이들이 몰리니까 10시와 1시 반으로 정해 1, 2층을 분리하여 한 팀은 내가 맡고 한 팀은 사모가 맡아 따로 따로 예배드리고 있다. 현재 개척 1년 반만에 사모하고 연락해서 심방까지 이루어지는 아이들이 200여 명이 된다. 따로 반사도 없이 예배 끝나면 둘이 성경을 가르치는데 간식을 넉넉히 준다. 이곳은 형편이 어려운 동네라 아이들의 유동성이 심하다.

  특별히 이곳 아이들은 갈 데도 없고 부모님은 일하느라 놀아 줄 시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부부가 나이가 많으니까 우리를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이도 있다. 우리를 가정집에서 교회를 열도록 시키신 이유 중의 하나가 불신자들이 쉽게 접근하라고 하는 크신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무런 외부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방법에만 의지하여 운영한다. 집세는 따로 안 나가니까 교회활동비만 지출되는데 지역의 어려운 사람에게 일부러 일을 시켜 오고 있다. 사모는 수시로 전도를 나가야 했는데 항상 아이들이 오니까 찬송 불러 주고 성경 읽어 주고 집을 지키게 하였다.

  어린이 헌금은 10원짜리 동전을 합하여 1500원 정도 나오는데 그것도 아이들과 상의하여 북한 어린이 돕기 국제기아대책에 보내고 있다. 다른 교회 다니는 아이가 올 경우 똑같이 사랑해 주기는 하지만 등록은 안 받는다. 앞주머니에서 옆주머니로 옮겨지는 수평적 이동은 올바른 전도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의 ‘예’ 자도 모르는 아이들을 제일 반기고 있다. 장년은 금년부터 전도가 되고 있는데 우리 가족 빼고 5명이 전도되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의 축복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고

  세상적 지위도 다 가져 보아서 부러울 것이 없고 이제 하나님께만 헌신할 생각이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의 축복이 무엇인지 충분히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영혼구원의 열정 주심은 물론이고 국민은행을 거쳐 여러 외국회사를 인정받으며 다니게 하셨는데 무엇보다 IMF 중에도 실직되지 않았었다.

  노조 회의 중에도 구역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하나님 은혜로 무사했다. 또 회사의 사장이 영국사람임에도 우상 숭배하는 측근들이 부추겨 고사를 지냈다. 그래서 깨져 있던 신우회가 하나님 뜻 가운데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직접 예배를 인도하였는데 갈릴리교회를 개척 중이어서 월 1회는 우리교회에 와서 예배드렸다.
  자녀들에게 내리신 축복 또한 큰 간증이다. 큰딸은 10의 3조를 드리도록 기도했는데 싱가폴 국립방송국에 취직이 되어 소원을 이루며 살고 있다. 작은딸도 전폭적인 헌신자로의 사명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봉사로 혹은 파트로 사역하다 이제 내려가면 풀타임 사역자로의 전환점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옛사람을 철저히 부셔 버리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참된 목자가 되려는 몸부림으로 강남금식기도원에 올라갔다. 3월에 직장 그만두고 하나님께 40일을 기도하도록 감동 받고는 주말에는 내려가서 예배인도하며 작정기도를 잘 마쳤다. 장로교적 철저한 말씀 위에 있던 나는 성령의 역사를 몹시 갈구했는데 강남금식기도원에서 성령 충만을 받았다.

  목사라는 신분을 떠나 집회시간마다 안수를 받았다. 주일학교 아이들 이름을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한 아이의 할아버지가 신장염으로 입원하였으니 기도해 달라”고 사모한테 급히 연락이 왔다. 나는 환자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손을 얹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2, 3달 걸린다는 환자가 3일 만에 퇴원하였다는 것이다. 또 작정하며 기도하는 동안 딸의 장학금이 학교와 다른 교회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동안 어린이가 400명 넘게 부흥되었다. 또한 옆에서 울부짖는 성도를 보며 양들의 아픔을 이해해야 할 것을 실감하였다. 목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체험하게 하신 것이다.

  강남금식기도원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땅임을 몇 차례나 느꼈다. 원장 목사님의 십일조 강조가 매우 인상적이었고, 자기 양도 아닌데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설교자들을 보며 나도 목회지에서 담대히 말씀을 전파할 것을 결단하게 되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라는 말씀과 찬송가 210장의 ‘내 죄 사함 받고서’ 등의 찬양을 바탕으로 성산에서 기도한 모든 일들이 나의 목양지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남은 일생 오직 목양 일념으로 살아 갈 것을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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