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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심연(深淵)에서 건져낸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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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深淵)에서 건져낸 내 아들

- 정순진 권사 (여, 51세, 사랑교회, 독일 오펜박) -


스케이트를 타러 가서 만난 벽안(碧眼)의 남편

  74년도에 24살의 나이로 나는 간호사의 신분으로 미지의 세계 독일로 떠났다. 어느 날 한국에서는 한번도 타 보지 않던 스케이트를 친구와 함께 타러 갔는데 한 독일 남자가 다가와 친절하게 도와주면서 인사를 하였다. 그러다 서로 사랑하게 되어 29세에 결혼해서 1남 1녀를 낳았다. 남편은 독일에서 엔지니어링 일을 하고 있었고 외국인이었지만 매우 자상한 성품이었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친정어머니가 독일에 오셔서 “교회를 다시 나가야 된다”고 걱정하셨다. 한국에 있었을 때 교회를 잘 다녔으면서도 ‘나는 독일에서 잘 살고 있으니 엄마나 예수 믿고 천국 가시라’고 하며 외면하였다.

  독일에 와서 10년이 되던 해, 나는 마음에 심한 공허감과 외로움이 느껴져서 결국은 한인교회를 찾아갔다. 남편은 주일이면 우리를 차에 태우고 가서는 끝날 때까지 교회 밖에서 기다려 주었다. 우리 집이 있는 오펜박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까운 지역인데 내가 출석하고 있는 사랑교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한인교회로 출석교인이 80여명이 된다.
  그 당시 나는 출산 후 우울증이 있었고 또 코에 병이 있어서 약을 넣어야만 숨을 쉴 수 있었는데 부흥회 끝나는 날 집에서 약을 넣지 않아도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남편에게 이 일을 말하자 “며칠 더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그 날이 토요일이었고 다음 화요일에 수술하기로 예약되어 있었다. 그런데 결국 수술하지 않고도 병은 다 나았다. 물론 우울증도 함께 고침 받았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느껴졌다. 바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곧이어 있었던 수련회에서 회개도 많이 하며 성경에 나오는 방언의 은사도 받았다. 나는 하루종일 예수님만 찾았다. 무슨 일이든지 ‘예수님, 어떡하면 좋아요’ 하면 예수님이 대답해 주시곤 하여 너무나 즐거웠다.

아들 ‘꼬니’의 끝없는 방황

  남편은 아이들이 한국과 한국말을 알아야 한다고 1년에 한번씩 한국을 다녀오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한국말을 곧잘 한다. 1년에 5, 6주를 휴가 맡아오면 나는 3, 4주는 기도원에 오가며 살았다. 어느 날 기도하고 있는데 ‘5년 후에 환란이 온다’ 는 말을 3번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깜짝 놀라 나의 환경을 살펴봤지만 도무지 환란이 올 곳이 없었다. 아이들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과 바이올린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부모에게 한번도 ‘아니오’를 답할 줄 모르는 모범생들이었다. 남편도 직장이 좋아서 정년 퇴직할 일도 없었다.

  5년 후에는 남편이 죽으려나...혹시 무슨 병이...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들 꼬니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전통 있는 좋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다른 아이와 싸워서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바꾸라”는 권면이 왔던 것이다. 그때부터 아들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독일어 ‘나인(nein, 아니오)’을 모르던 아이가 ‘아니오’를 말하기 시작하더니 될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특별한 동기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섭리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 일을 통해 낮아지고, 인내를 배우며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학교 간 아이가 한번 나가면 새벽 3, 4시가 되어야 돌아왔다. 우리 부부는 밖에서 바람소리만 나도 아이가 오나 하여 번갈아 일어서서 뛰어 나가곤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가 사 준 좋은 바이올린도 몰래 팔았고, 벽에다 큰 낙서를 해 경찰에서 찾아와 벌금을 물기도 하였다. 이제는 아이가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을 저지를까 가슴이 두근두근 할 지경이었다. 그때도 변함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제일 열심이라고 할 정도였다.

  상황이 이러고 보니 “하나님, 어디 계신거냐?”며 울면서 기도하였다. “아이에게는 너랑 나랑 같이 죽자”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신경을 너무 쓴 남편은 심장마비가 두 번이나 와서 응급실에 실려갔다. 아들에게 말하니 ‘그래요? 그럼 어떡하지’ 하면서 다른 대답을 못했는데 그것이 마약에 취해서 그랬던 것이었던 것을 몰랐다. 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 마약에까지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도 엉망이 되었다.

  독일의 학제는 11학년에서 13학년 사이에 두 번 낙제하면 더 이상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면 직업학교를 가야만 했다. 직업 학교는 국가에서 학비가 다 나오기 때문에 본인이 열심히만 하면 부모는 거의 부담이 없는 대신 입학과 졸업이 엄격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이가 ‘나 프랑크푸르트에 있으면 고치지 못하니까 나 좀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줘요’라고 말하였다. 정말 아이랑 시내에 함께 나가보니 거리에 나와서 노는 애들은 모두가 꼬니의 친구였다. 아들의 원대로 나는 휴가를 내고 우리는 한국으로 왔다. 아들은 잘 생기고 재주가 있어서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잘 지내고 있다.

  계속해서 고민만 하고 있던 나는 여러 사람이 권하는 강남금식기도원으로 올라갔다. 10일 금식을 작정하고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아파 보이는 어떤 분이 웃으면서 다니기에 “무슨 좋은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병원에서 위암선고를 받았는데 21일 금식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낫게 하신다는 확신이 왔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용기가 생겨서 연장하여 21일을 금식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가를 집중적으로 기도하였다.

21일 금식기도를 마치자 변화된 ‘꼬니’의 삶

  그러나 한편으로 기도를 하면서도 ‘아이가 학교를 가야하는데 왜 길을 열어 주시지 않나’ 하면서 낙심하기도 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으로 나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다. ‘하나님, 죄송해요.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믿습니다.’라고 하며 21일을 잘 마친 후 담대한 믿음을 갖고 독일로 돌아갔다.

  놀랍게도 마음에 편안함이 생겼다. 아들이 눈에 안 보여도 불안하지 않고 어디든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믿음이 왔다. 그때부터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전에 우리 집은 꼬니 찾는 전화로 하루종일 전화에 불이 났는데 독일에 돌아 가보니 전화가 뚝 끊어졌다. 아이도 세상 것 다 끊고 두문불출(杜門不出) 하였다. 운동을 좋아하여 가만히 못 있는 아이였기에 더욱 신기하였다.

  어느 날 교회에서 변호사 집사님이 꼬니의 안부를 물었다. 집에서 인터넷 하면서 게임만 한다고 하였더니 꼬니를 만나자는 것이었다. 집사님을 만나고 나서 아들은 그 사무실에서 컴퓨터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집사님이 주선하여 컴퓨터 전문학교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일은 학교가 9월에 입학을 하는데도 11월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많은 학생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두 번 낙제하여 대학도 갈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기도만 하던 중에 하나님은 새로운 길로 아들을 인도해 주셨다.

  우리가 사는 오펜박은 한국인 학교와 상가, 식품점, 교회가 있는 곳이며 독일사회는 혼혈이라는 갈등이나 인종차별의 벽도 별로 없는 편이다. 성실하고 실력만 있으면 어디서나 인정받고 일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도 자기들은 영어까지 세나라 말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아들 때문에 어려웠던 일을 금식기도로 풀어주신 이후 우리 가족은 다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가운데 살고 있다. 게다가 주님의 축복으로 의대에 들어간 딸이 합격 후 ‘주님이 인도해 주셨다’는 고백을 드릴 때는 정말 대견하였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제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속히 이 일을 이루시리라는 기대 가운데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승리의 삶을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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