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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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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서 원 목사(남, 47세, 광장교회,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


1998년 어느날, 서울역에 새벽에 내렸는데...

  내가 처음 교회를 간 것은 군대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투경찰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내무반장인 상병의 구타가 어떻게 심한지 탈영하고 싶을 정도였었다. 그때 한 동료가 “교회에 가면 군목이 소령이기 때문에 매맞지 않는 길이 있을 지 모른다”고 하여 교회를 찾아갔다. 제대 후 경찰공무원이 되어 인천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가까운 사람의 권유로 오랜만에 다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거기서 좋은 믿음의 동반자를 만나서 열심히 예배를 참석하며 신앙의 성숙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일로 가슴에 큰 상처를 입고 10년 가량 후유증을 앓다 기도 중에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신학을 공부하여 3학년까지 다니다 휴학한 상태였다. 1998년, 부산에 볼일이 있어 밤차로 상경하여 새벽 4시 20분쯤에 서울역에 내렸는데 이, 삼백 명의 노숙자들이 바닥에 누워 신문지를 깔거나 덮고 자고 있었다. 무심코 그들이 단체로 여행가는 일행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꼭 같은 새벽시간에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또 사람들이 누워 자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이들이 말로만 듣던 노숙자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나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5시 30분이 되어 청원경찰이 와서 발로 사람들을 깨우자, 그들은 일어나 질서 있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는 대부분 공짜 전철을 타고 인천, 수원, 의정부 등 끝에서 끝까지 왔다갔다하며 잠을 잤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너는 저 사람들을 위해 태어났다”는 마음을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열심히 그들을 도왔는데 그들이 주로 요구하는 것은 돈이었다. 그러면서 계속 용산 등지를 중심으로 전도활동을 하였다. 어느 날 광장의 비둘기들을 보니 힘이 없고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매일 새우깡을 사다 뿌려준 후 전도를 시작하였다. 신기하게도 비둘기들은 내가 가는 날이면 모두 바닥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전도가 너무 힘들어 가기 싫은 날도 비둘기들이 기다리는 것이 생각나서 서두르곤 하였다.

신학교를 마치고 용산 광장 교회를 개척하면서

  동역자가 없다보니 스스로 지치기도 해서 기도 가운데 다시 신학교를 들어가 학업을 마쳤다. 그러나 먹는 것이 부실하고 환경도 열악하다보니 사명으로 시작한 이 일에 점점 감당할 힘을 잃어 어머니가 계신 미국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세미나를 참석하여 기도하고 있는데 마음에 굉장한 뜨거움을 주시면서 회개를 하게 하셨다.
  눈을 뜨고 보니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용산광장교회’라고 하는 글자가 환상처럼 확 스치는데 마음이 너무나 기뻤다. 당시 내가 전도할 때 커피도 끓여주시고, 따뜻한 물도 갖고 와 도와주시던 집사님에게 얘기를 드렸더니 “이름 참 좋네요. 어서 예배를 드리지요.”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에 힘입어 용산역 광장에서 보면대를 강대상 삼아 단둘이 예배를 드렸다.
  예정한 시간인 11시에 시작을 못하고 11시30분에야 단 한사람 놓고 “묵도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눈을 떠보니 먹이를 주던 비둘기들이 마치 예배드리는 것처럼 줄을 맞춰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맘속에 지금은 비둘기들이 앉아 있지만 ‘다음주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보내 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의 확신이 왔다. 정말로 그 다음 주에는 12명, 그 다음 주에는 20명, 그 다음 주에는 30명이 모여들었다. 그때가 98년 12월이었다.
  날씨가 추워지자 그들은 나에게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먹을 수 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공동체 생활할 곳을 찾다 보니 광장 앞 텍사스촌에서 싸게 건물을 얻어 약 30명이 들어왔다. 거기서 우리는 예배도 드리고 밥도 같이 해 먹었다. 계속 전도활동을 하니까 금방 60∼70명이 되었다. 일반교회라면 숫자가 늘어나면 재정도 좋아지지만 무료로 교회를 운영 하니 힘이 들었다.

  80평 건물에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120만 원을 내야하는 벅찬 가운데 내 맘속에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리라’는 믿음밖에 없었다. 월세를 못 내니 보증금도 다 제하여진 시점에서 건물주인이 ‘집세날인 모래까지 나가지 않으면 강제 집행한다’는 최후통지를 보내왔다. 그래도 우리는 그 날도 전도를 나갔는데 또 20여명이 따라왔다.

  교회공동체로 들어와서 오늘이 마지막 설교라는 생각에 방에서 울며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날 새로 따라온 형제가 흰 봉투를 내미는 것이었다. 기대도 안하고 펴보니 거금의 수표였다. 그는 방 얻을 돈이라면 나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신의 소망인데 어떻게 이것을 받겠느냐?”고 거절하다 결국 받아서 건물주인에게 봉투째로 넘겨주었다. 보증금과 월세까지 선납으로 지불한 셈이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서 건물주인 할머니에게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그 수표가 도난 당한 것이니 어서 경찰서에 갈 준비나 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그 형제는 떠난 뒤였다. 알고 보니 ○○ 맥주회사 이사가 수금해온 돈을 도난 당했는데 현금은 다 쓰고 수표만 갖고 있다 내놓은 것이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하여 강남금식기도원으로 달려갔다. 금식하며 이 일을 풀어 주실 것을 간구 했다. 뜻밖에도 그때 은행과 돈 주인은 광장교회가 뭐하는 곳인가를 알아내다가 오히려 감동을 받아 돈 주인이 지불 허락을 하게 되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강권하사 “나도 좋은 일 한번 하겠다”며 승낙했다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그동안 광장교회라는 한 공간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예배도 드리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예배에 대한 거룩함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생활관과 성전을 따로 구분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그러나 경비는 한푼도 없어 손도 못 댈 형편이었다. 그 기도제목을 갖고 교회식구 중 제직 15명이 다 기도원으로 올라갔다. 우리공동체에 고정적으로 거주하는 사람들은 40∼50명이 되는데 노숙자 중 신앙을 받아들여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15명쯤 되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때 같이 갔던 최 집사님이란 분이 용돈이 궁하여 동생 집에 전화를 하니 동생이 “빨리 연금공단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분은 전에 일하다 사고로 다쳐서 일시불로 다 보상받았는데 뜻밖의 일이 밝혀져 월 270만 원씩의 보상이 추가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분이 너무 감사하여 “성전 꾸미는 일을 전부 맡아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교회 식구들은 대부분 건설기술자들이라 칠하는 것 고치는 것에 손을 모아 교회, 생활관, 주방, 식당 등을 구분하여 정리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라는 말씀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또 강남금식기도원에서 체험하였다. 그 일을 마치고 나는 목사안수를 받았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니까 그때부터 주변의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일반 성도도 40명이 되었다.
  매월 첫주에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어느 날 강사 목사님께서 비전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의 비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3일 금식을 하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나의 비전에 대해 적어보았다.
 
첫째는 노숙자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회를 광장에 세우자는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나 노숙자들이 볼 때 “우리도 하나님 믿고 능력 받아 한번 일어나 보자” 하는 도전을 주는 교회가 꼭 필요하다는 큰 소망이 일어났던 것이다. 둘째는 목회도 중요하지만 선교 또한 필수적인 일이므로 미혼모타운, 장애자타운, 노숙자타운, 노인복지타운 등의 각 분야별로 운영되는 광장타운을 만들어보자는 꿈이 일어났다. 셋째는 선교센터를 짓고 전도훈련을 해서 복음의 사명을 심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기도해 놓고 내려갔는데 뜻밖에도 건물 주인 할머니를 통해 이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분은 우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점차로 변화되는 노숙자들을 보고 이제 우리 교회식구가 되었던 것이다.
 
원래는 위락시설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믿음 있는 딸들의 권유와 하나님의 역사 하심으로 지금 그분의 양평의 땅과 미국의 땅이 이제 하나님을 위한 터전으로 준비되고 있는 중이다. 나의 비전은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고 있다. 성전건축, 광장타운, 선교센터 이 3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4000명 정도가 우리 공동체를 스쳐갔는데 현재 광장교회의 식구들 40여 명은 거의 다 자립에 와 있다. 모두 열심히 일을 하여 통장을 갖고 있고 곧 가정도 이루게 될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모든 것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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