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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십일조 생활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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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생활의 축복
   
- 한 점분 집사(여, 48세, 부평동부교회, 경기도 인천시 계양구) -


교회와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영적인 방황을 하던 시절

  충청도 예산에서 나는 불신자(不信者) 가정의 5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저한 무신론자이셨는데 교회 다니는 것만 반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자체를 아예 인정치 않으셨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몰래 교회를 다니며 믿음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회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믿음을 가진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믿음이 연약하였다. 조그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시험이 들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끊임없이 의심하였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잘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 조정을 당하게 되자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더 심각해져서 결국은 믿음이 좋으시던 시어머님도 "교회에 나가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면서 점쟁이를 찾아 다니셨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대전으로 분가(分家)를 하게 되면서 조금씩 독립적인 신앙인이 되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남편은 직장 없이 쉬고 있으니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셋방살이를 하면서 집에 한번 들어가려고 해도 주인 눈치를 봐야했고, 교회 한번 가려고 해도 문을 열어주어야 하니 교대로 교회를 가야만 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새벽기도만큼은 빠지지 않고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에 있는 회사에 남편이 취직이 되어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되었다.

십일조 생활을 했더니 단칸방에서 32평 아파트로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부평동부교회에 등록을 하였고, 믿음도 없고, 물질적으로도 어려웠지만 "십일조를 드려야 축복을 받는다."라는 어느 집사님의 말에 순종하여 그 달부터 십일조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십일조를 드리면서 말라기 3장 10절의 말씀과 같이 놀랍게도 집안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단칸방 월세 방에서 14평 아파트를 주시고, 14평 아파트에서 20평 아파트를 주시고, 20평 아파트에서 32평 아파트를 주셨다. 물질의 축복과 함께 가정이 안정이 되면서 믿음도 자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씩 아프던 무릎이 부어오르고 쑤셔서 병원을 갔더니 "류머티즘( rheumatism) 관절염으로 완치(完治)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병세가 심해져 혼자서는 마음 데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좌절감에 빠져있는 나에게 파출부로 오시는 집사님이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니까 한번 참석 해 보라."고 얘기 해 주었다.
  집사님에 권유로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강사 목사님이 "아픈 부위를 잡고 기도하라."고 해서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다리에 불덩이 같이 화끈화끈 거렸다.
  그래서 말씀을 드렸더니 강사목사님이 "하나님이 다 치료 하셨으니까 한번 걸어 보라."고 하였다.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다리에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일주일 기간동안 하나님의 치료는 계속되었다. 먹던 약도 끊었고, 또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가서 무릎에서 고름을 빼내던 일도 중단하고 기도하였다.
  일주일만에 다리를 보니 고름이 바싹 말라 있었고, 부어 있던 다리가 완전히 치료가 된 것이다. 할렐루야!
  병고침을 받은 것은 감사했지만 어느 날 또다시 IMF와 함께 남편이 실직을 하게 되었다. 몇 년을 쉬고 있으니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빠가 직장을 나갈 때까지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교회의 구역장, 지역장 직분을 반납하고, 99년 2월 친정 올케와 함께 봉천동에다 분식가게를 시작했다.
  그 당시 살고 있었던 효성동에서 봉천동까지 1시간 이상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항상 집에 도착하면 밤12시가 되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12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새벽기도도 빠지게 되었다.
  기도 생활도 거의 하지 못하고 주일예배도 아침 일찍 1부 예배만 드리고 바삐 분식점에 가서 장사를 하였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자 남편에게 "딴 남자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게되었다. 남편에게 의처증이 생긴 것이다. 결국에는 2000년 5월에 분식점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새벽기도를 다시 드리고, 쉬었던 구역장, 지역장 봉사를 다시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차츰 남편의 의처증이 없어졌다. 일을 그만두고 나니 영적으로 회복하고, 열심을 다하여 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신유의 동산, 은혜에 동산에서 자궁염증을 고침 받고

  몸에 이상이 있어 2000년 11월 병원에 갔더니 "자궁에 염증과 물 혹이 두개가 생겼는데 아직은 수술할 단계가 아니니 치료를 받으라."고 해서 강남금식기도원에 올라오기 전 토요일까지 치료를 받았다.
  남편도 3년 전에 강남금식기도원에 와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교회 집사님을 통해서 "그곳에 가면 말씀에 능력이 있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좋다."고 소개를 하였다.

  2000년 12월11일 강남금식기도원에 오르게 되었다. 내가 기도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 예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강사목사님이 "아픈 사람은 아픈 부위에 손을 대라."고 해서 배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데 그 순간에 배를 칼로 가르는 것 같은 통증이 연속적으로 3번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화장실에 갔더니 엄지손가락 만한 핏덩이가 쑥 빠졌다. 그 후 심했던 냉, 대하도 함께 없어지고 염증과 물 혹이 깨끗이 치료되었다. 할렐루야!

  마지막으로 나의 병을 고쳐 주시고, 가난할 때 부요케 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정리·김사라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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