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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내 평생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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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 최화순 집사 (여, 42세, 벧엘교회,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


언니의 결핵(3기)이 고침을 받고

  인천 청학동, 대대로 유교가 전통인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 청학 감리교회로 주일학교를 다녔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홍도 목사님이 부흥회에 오셨는데, 집회에 참석했던 언니(당시 결핵 3기)가 병고침을 받게됨으로써 우리 가정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철저하게 유교를 따르시던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으실 때도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셨다. 다락방에서 밤1시부터 새벽4시까지 10년 동안 기도하시고, 잠시 눈을 붙이시고 바로 새벽예배를 가실 정도로 하나님을 철저하게 섬기셨다.
  어머니의 정성어린 기도 덕분인지 자녀 3명중에 오빠는 목사, 작은언니는 전도사, 큰언니는 사모가 되었고, 나역시 이제 주의 일을 하게 되는 믿음의 가정이 되었다.
  남편은 교회에서 만났는데, 시어머니는 무당을 따라다니며 장구 쳐주는 일을 하실 정도로 미신을 믿으셨다. 편안하게 교회만 다니던 나는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영적으로 계속 눌리기 시작하였다. 결혼 후에 남편은 하는 일마다 잘 안되었고, 수많은 일을 벌려놓으면 내가 그 뒤치다꺼리를 하니 부부 싸움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중2때부터 시골 교회에서 피아노를 가르쳐 주어서 나는 시골 교회 반주를 했었다. 나중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피아노 2대를 놓고 교습소를 차리고 가르쳤다. 2달만에 학생이 20명이 되니까 3달되는 달에 형님이 “집을 잡혀 줄 테니 큰 건물을 얻으라.”고 하셔서 기도도 해 보지 않고 무리하게 38평되는 상가를 얻게 되었다. 오후에만 학생들이 오기 때문에 오전에는 선교원을 운영하고, 오후에는 피아노 교습소를 하며 부지런히 빚을 갚아 나갔다.
  그러나 건물 얻은 데 빚져 놓은 것은 눈덩이 같이 불어나고, 나중에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었다. 남편이 운전해주고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과하고 역부족(力不足)이었다. 빚 때문에 못 먹고, 못 입고 오직 빚 갚는 일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빚 갚는 일에만 정신을 쏟고 모든 신경이 거기에 매달리고, 시달려야만 했다. 뒤돌아보면 그렇게 힘든 삶이었지만 정말 필요할 때 하나님이 그 곤경에서 건져 주셨는데, 그때는 ‘빨리 빚이나 갚아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빚 때문에 삼각산 능력봉에서 울면서 기도하고

  당시는 목사님과 빚 때문에 삼각산 능력봉에 앉아 기도하며 울고 또 울면서 내려오곤 했다. 빚이 계속해서 늘어나 낮에는 아이들을 7시까지 가르치고, 저녁8시 이후부터 새벽4시까지 포장마차를 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장사하는 것도 불법이라 경찰서를 드나들고 사람들이 포장마차를 부수고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무릎을 끓어야지.”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돈 또, 돈 그저 돈밖에 몰랐다.
  하루는 목사님이 일본에 다녀오셔서 “고생 하지말고 일본에 가서 직장생활을 하면 한 달에 200만원씩 보낼 수 있고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라고 하셨다.
  일본에 가기로 결심을 하고 힘겨운 인생 이제 일본 가면 “다시는 오지 않으리.”하고 작정하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나 드리고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산리 금식기도원을 찾게 되었다. 대성통곡(大聲痛哭)하며 10일을 엉엉 울면서 기도하였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회개를 시키기 시작하셨다.
  남편에게 상처 준 일들이 필름같이 마음에 스쳐 지나갔다. “네가 잘못한 것이니 네가 감당하라. 남편의 상처를 감싸주어라.”라는 음성을 듣고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이 불쌍해 보였다. 잠시 기도한다는 것이 21일 동안 금식기도하고 기도원을 내려왔다.

세상줄을 놓고 하나님만 의지할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

  금식을 하고 집에 내려와 보니 놀랍게도 살아 나갈 거처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내가 회개했으니 남편도 나에게 잘해 줄줄 알았는데 오히려 남편은 나에게 온갖 핍박을 다 하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네가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고 인내하기 시작했다. 인내를 하면서 인격이 다듬어져갔고, 참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나의 잘못된 점들이 꺾여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천안에서 ‘펜사콜라 찬양집회’가 있어 28일 금식을 했는데, 남편과 나와의 싸움은 영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세상 줄을 놓고 하나님만 의지할 때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는 것과 남편(양순남 집사)의 비전을 알게 하셨다.
  많은 목사님으로부터 설교는 수없이 들었어도 깨닫지 못하였는데 기도로써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남편은 9가지는 다 못해도 하나님께 대한 열정은 대단하기 때문에 그 한 가지를 보고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나머지는 열심히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8일 금식을 끝내고 오니 어느 기도원에서 연락을 받게 되었다. 남편은 찬양으로, 나는 반주자로 청빙을 받게 되었다. 옛날에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빚을 갚으려고 밤낮으로 뛰어다녀도 빚 갚는 일은 둘째치고 오히려 빚을 더지는 일만 생겼는데, 세상 줄을 끊어버리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 드리니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가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남편의 찬양사역을 위해 일천번제 기도를 드리며

  남편을 위해 일천번제를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12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영성이 쌓여지게 되었다. 기도 후에 남편은 3집까지 음반을 내게 되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 감사 드렸다.
  그래서 30일 감사금식기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강남금식기도원에 12월4일에 들어오게 되었다. 21일쯤 되니까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다.
  워낙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만 보면 뜨거운 마음이 들어서 선교회를 조직했다. 선교회 사역과 함께 지금 우리의 비전은 찬양기도원을 세우는 것이다.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주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 기도를 이루기 위해서 2달 전에 스바냐 선교회를 조직해서 활동 중에 있다. 더욱이 남편이 벌침을 배웠기 때문에 환자를 치료 중에 있다. 우리 부부는 기도원에서 오로지 찬양과 선교회와 기도원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 드린다.

〈정리·이한기 전도사>

* 본 글은 "강남금식기도원"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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