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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가족의 모든 병을 치유하여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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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모든 병을 치유하여 주시고
   
- 김은주 사모(여, 41세, 홍천교회, 강원도 홍천군) -


부모님들의 무관심 속에서 형제들은 병들어 가고

  불신자인 부모님들 사이에서 1남 5녀의 차녀로 나는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는데 습관적인 외도로 어머니의 마음에 많은 상처를 주었다. 물론 가정 또한 돌보시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이런 마음의 고통을 가지고 교회에 나가게 되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던 어머니는 가정보다는 교회 봉사에 더 열심을 내시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가정은 돌보시지 않으셨다.
  부모님들의 이러한 무관심 속에서 동생들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막내 동생은 혈액종양으로 인해서 시각장애자가 되었고, 다섯째는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  그러나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크나큰 나의 오산(誤算)이었다. 신혼에 단꿈도 잠시 남편은 나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빠찡꼬에 가서 재산을 다 탕진하고, 직장생활도 하지 않고 도박에 빠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새롭게 출발하려고 남편을 설득해서 한국에 함께 나왔다. 한국에 오면 달라질 줄 알았던 남편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부모님 앞에서까지 나를 때리고 폭력을 휘둘렀다.
  미국에서 내가 남편에게 매를 맞고 산다는 말을 해도 믿지 않으시던 부모님들이 매 맞는 딸의 모습을 보시면서도 이혼은 반대하셨다. 그러나 더 이상은 매를 맞으며 살수 없어서 결혼상담소에 가서 상담을 하고...결국 결혼 1년 만에 지옥 같은 나의 헛된 결혼에 대한 꿈은 그것으로 청산되었다.

이혼 후 다시 찾은 예수님

  가정생활과 결혼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 잠깐 예수를 믿었던 기억을 되찾아 이혼 후 다시 하나님을 찾았다. 기도원을 찾아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너와 나(하나님)의 관계가 잘못 되어 있었다.”라는 깨달음을 통해서 남편을 원망하기보다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지 않았던 나의 잘못을 회개시키셨다. 처음으로 7일 금식을 하면서 성령 체험이라는 것을 하였고, 방언의 은사도 그때 받았다.
  그 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일을 하는 가운데 이제는 가족을 돌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집에 들어가 보니, 집안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특히 동생들은 최악의 상태였다. 동생들은 마음에 가족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꽉 차 있었다.
  동생들의 병세를 보다못한 나는 가게를 하나 얻어 동생을 데리고 나와서 치료하게 되었다.
  그러나 병의 상태는 조금 괜찮아 지다가도 가족들을 만나면 동생의 병은 더 악화되었다. 결국 동생을 정신과 격리 병동에 입원 시켜야만 했다. 자식을 격리 병동에 입원시켜 놓고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의 아버지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또한 한꺼번에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가슴속에 밀려 왔다.

가족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시는 하나님

  막내가 시각장애를 앓고 있어서 어머니는 막내 동생을 갓난아이를 다루듯 하셨다. 이렇게 어머니의 치마폭에 쌓인 막내는 몸만 성장하였고, 정신은 어린아이로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정신박약아’의 상태가 된 것이다.
  보다못한 나는 동생을 교회에 데리고 나가고 싶어했으나 막내 동생을 교회 청년부에 데리고 가는 것을 어머니가 허락지 않았다. 어머니에 마음이 움직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였다. 당뇨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최선을 다해 간호한 결과 감동하셔서 2년 만에 동생을 교회에 데리고 가도록 허락하셨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 동생은 갓난아이처럼 먹고 자는 본능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데리고 나가며 동생에게 교육을 시작했다. 색칠공부 및 퍼즐 맞추기, 수수께끼, 동화책 읽기와 나중에는 성경을 읽게 했다. 그렇게 기도와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가운데 성장하여 사춘기 정도에까지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인 면이 성장했다.
  그 후 성취욕구를 경험 할 수 있도록 학원을 보냄과 동시에 단순노동에 아르바이트도 1시간정도 하게 하고, 시간을 늘려갔다. 나중에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에 보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생은 치료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동생은 중생의 체험과 방언은사도 받고, 성령 충만함을 받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할렐루야!

재혼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들


  너무나 지친 나는 동생들의 병의 완치(完治)를 보고서 ‘이제는 그만 쉬어야겠다’고 마음을 결정하고 동생들과의 9년 간의 병간호의 생활을 정리하였다. 그런데 동생들을 돌보느라고 기진맥진하고 있을 때 입이 돌아가고, 온몸이 아프면서 눈에 질환이 왔다. 병원에서는 “극한 상태에서 자기면역성이 떨어졌을 때 그런 상태가 된다.”고 하였다. 나중에는 눈을 도저히 뜰 수 없는 상태까지 되었다. 눈을 뜨면 눈이 충혈 되고, 염증이 생겨 결국에는 눈의 염증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때 어느 집사님이 “예수전도단이 제주도에 생기는데 거기에 가서 훈련을 받아보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1997년 예수전도단에서 훈련을 받고 간사로 있게 되었다. 1년에 한번씩 간사들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다. 남편은 홍천지역에서 선교 농장인 유기농을 해서 선교사들을 훈련시켜서 미종족 국가로 파송 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금식기도로 안구건조증을 치료받고

  이번에 강남금식기도원을 찾아온 것은 남편을 돕는 사역에 나 자신의 한계를 느껴서이다. 사랑의 은사와 내 사고와 마음을 넓힐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기도 제목과 지금 앓고 있는 안구건조증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이곳에 올라 왔다.
  7일간 금식을 하기로 남편과 작정을 하고, 예배만 끝나면 기도굴로 향하였다. 금식 5일째 기도굴에서 기도하기를 “병의 원인이 나의 죄라면 죄가 생각나게 하셔서 회개하게 하시고, 또 이것이 조상 때부터 내려온 것이라면(외할머니께서 눈 질환으로 장님이 되었다가 돌아가셨다) 그것을 끊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보통 1시간 간격으로 인공 눈물을 넣어야 되는데 그 날 새벽부터 인공 눈물을 눈에 넣지 않게 되었다. 내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정리·김사라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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