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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소망을 이루어 주신 기적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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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이루어 주신 기적의 하나님

- 김현자 목사(여, 43세, 두란노청소년수양관, 강원도 정선군 신월면) -


청소년 수양관에 소망을 두게 하시고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나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서 결혼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라고 하는 주위 사람들의 권면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면 좋겠는데, 기도하시는 권사님의 예언을 통하여 혹은 부흥회에서 느닷없이 지명된다거나 주위사람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결국 우리부부는 언니의 도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신학교에 등록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소원을 갖고 기도하도록 우리부부에게 새로운 비전을 허락하여 주셨다. 신학교 3학년 때, 우리부부는 산기도를 다니며 하나님께서 “정말 귀하게 쓰시려면 일반목회보다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특수목회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당시 우리의 기도제목은 인성교육과 신앙이 일치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청소년이 이 땅에 많이 배출되어 지도록 교육과 훈련을 겸한 “청소년 수양관"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졸업 후 평강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3년을 일하고 연말에 집사로 돌아가 섬기고자 금식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나에게 소망하고 약속한 것 있지 않느냐?"라고 하시며 물으셨다. 기도한지 7년이 지난 후 “그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IMF로 인해 상황이 정말 어려울 때 였다. 부동산 경기가 곤두박질쳐져 있어서 일을 잘못 처리하면 주위에 보증을 서 주었던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지경이었고, 월이자 500만원 정도를 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하여도 이처럼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수양관을 지어라."라고 말씀하시니 무척 당황스러웠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때 우리 집의 실제 재산이라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두렵고 떨림에 울면서 그래도 말씀에 순종할 것을 기도하였다. 그런데 평소에도 가깝게 지내던 김집사님이란 분이 “왜 목회를 시작 안 하느냐?"고 물어왔다. 감히 환경을 보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상태라 자세히 말도 못하고 이러이러한 비전이 있는데 “그냥 기도만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은 얼마 전에 장인에게서 홍천에 상속받은 땅 1,500평이 있지만 별관심 없이 그냥 두고 있었는데 “그 땅을 가져다 쓰라."는 것이었다. 성경말씀과 같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수양관 착공을 진행해 갔는데 생각만큼 일이 쉽게 풀리질 않았다. 강원도 홍천에 수양관 건축을 하려면 주민들의 농가관리위원회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데 그 당시 “아가동산" 사건이 터져 있을 때라 도무지 종교단체를 원치 않았다. 또 어린이집으로 융자를 받으려 해도 동네주민들은 “기도원이 뻔하다."고 하며 반대하였다.
  기도응답 받은 것과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번민과 갈등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4월경에 우연히 어느 장로님을 알게 되었고, “폐교되는 학교를 활용하면 어떻겠냐?"고 권하시는 것이었다.
  관할관청에 신청을 하니 “1년 정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때 수양관 일을 준비하면서 도둑질 빼고는 뭐든지 다해가며 부채와 이자를 청산해가고 있었다. 그러다 그 해 5월쯤 교육청에 전화해 보니 이상하게도 “왜 이제 전화하느냐?"며 반색을 하였고, 수양관 사역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정선에서 3분 거리인 신월 분교를 사역지로 정하여 일을 시작하였는데 그곳이 지금의 ‘두란노 청소년 수양관' 이다. 처음 가보니 운동장에 옥수수가 수북히 자라 있었다. 3년 계약과 1년치 임대료를 내며 필요한 물질들을 얻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 또 한번 체험하였다.

손수 미장과 칠을 하며 기쁨으로 짓던 수양관

  철저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며 각 교회나 기관에서 신축공사로 바꾸는 여러 집기들을 갖고 와 손질하여 수양관의 성물(聖物)로 사용하였다. 우리부부는 손수 미장과 칠을 어깨너머로 배워서 직접 수양관을 꾸몄다.
  특히 침대의 나사를 일일이 조이며 “우리의 믿음도 이렇게 견고케 해달라."고 눈물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러는 동안에 이자며 빚은 극한상황에 처해 사방에서 원성이 터졌다. 그러나 기적의 하나님께서는 그 불경기 중에 묶여있던 부동산이 하나하나 팔리며 일을 해결케 하셨다.
  그 해 97년 11월 26일에 입당예배를 드리며 우리부부는 둘 다 목사안수를 받았다. 다음해 8월부터 자체 프로그램을 갖고 교회의 중고등부와 청년부 가족캠프 등의 위탁교육이 실시되었다. 한편으로는 시설만 빌리는 팀까지 있어서 250명이 들어와 있기도 하였다.
  그런데 농민들이 밤 8시면 잠자리에 드는 반면 우리는 저녁찬양 시간이어서 지역의 심한 반발과 제지를 받았다. 또한 지역이 강원도라 너무 멀어서 겨울에는 학생들을 보내주지를 않았다.
  그래서 홍천의 땅(농가위원회의 승인과 건축)을 염두에 두고 제2성전을 위한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떤 분이 양평 쪽에 땅 4,600평을 기증하시기로 하시면서 “그곳에 3억여 원의 부채가 있으니 그것을 해결하고 땅을 쓰라."는 것이었다.
  그 기증자는 일생 남에게 덕을 끼친 일없이 살아와서 안타까와 하였는데 “팔려고 내 놓았지만 땅이 의미 있게 쓰인다면 기증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일의 해결과 함께 앞으로의 일을 위해 가족이 합심하여 기도하고자 3식구가 강남금식기도원에서 월요일부터 금식에 들어갔다.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기도원에서 지속적으로 말씀 보며 깊은 기도에 들어갈 수 있었고, 찬양으로 은혜를 더 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놀랍게도 기도응답이 되었다. 예비하신 또 다른 손길을 통하여 돈이 마련 된 것이다. 할렐루야! 수억을 십일조 하려는 사람이 적당한 곳을 못 찾고 있던 중에 우리와 뜻을 같이하게 된 것이다. 또다시 하나님께서 친히 기적을 보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이곳에서 청소년들이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비전을 갖고, 생활과 신앙이 일치되는 청소년들이 많이 배출되어 지도록 우리는 늘 기도하며 힘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소망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린다.

〈정리·김경순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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