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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만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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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만난 하나님
 
- 이샤론 선교사(여, 55세, 삼일교회,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

 
하나님을 떠난 삶의 고통
 
  나의 할아버지는 이북 신의주에서 교회를 세우신 장로님이셨고, 아버지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받는 월급을 집에 가져오지 않고 교회학교 아이들을 위해 돈을 쓰시고 교회에 충성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미워서 한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교회를 짓다가 납치 당하셔서 순교 당하셨고,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이남하셔서 홀로 우리 3 딸을 기르셨다. 그때 나는 서대문 순복음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신앙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게 되고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적당히 즐기며 세상 재미에 빠져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결혼한 지 일주일만에 아름다운 결혼생활의 단꿈이 깨지게 되었다. 남편은 일주일만에 바람을 피웠고, 그때부터 3일이 멀다하고 다투는 가정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혼서류를 작성해서 늘 가지고 다녔지만 딸아이를 낳고 보니 이혼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전자제품 가게를 했었으나 술과 놀음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결국 망하게 되어 문을 닫았다. 계속해서 남편은 매일 술로 살았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폐결핵까지 걸려 보건소에서 주는 약만 먹다보니 위장병까지 생기게 되었다. 결국 남편은 건강이 악화되어만 갔다. 그 와중에 3딸을 낳았는데 한 아이도 건강하지가 않았다. 큰아이는 매일 코피를 흘리는 병이 있었고, 둘째는 장에 염증이 있어 출혈까지 했다. 막내는 백일해를 앓아 기침이 얼마나 심한지 밤에 한숨 잠도 못 자고 내 등에 아예 업혀서 살았다. 나는 한 달에 아이 셋을 데리고 20일 이상 소아과를 출입해야만 했다.
  남편은 다시 APT 짓는 사업을 친구와 동업으로 시작했는데 땅을 판 사람이 계약금 중도금만 받아먹고 외국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그나마 조금 있던 돈마저 몽땅 사기를 당하고 나니 좌절과 낙망 속에서 술 중독으로 남편은 폐인이 되가고 있었다. 손을 대는 것마다 안되었던 우리 가족은 이제 집도 없이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그때 친정동생이 “문간방이라도 와서 잠깐 살라.”고 방을 비워주었고 작은방 두 칸이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비참하였고 절망적이였다. 남편은 결핵으로 인하여 각혈을 했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술중독으로 괴로워했다. 살길이 막막했다. 그때 나의 살길은 한가지 죽는 길 밖에 없었다.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만난 하나님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만난 나는 어느 날 밤 한시에 조용히 일어나 아파트 15층에 올라가 떨어져 죽으려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때, 잠이 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초등학교 다니는 큰 딸아이가 갑자기 눈을 떠서 엄마가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아빠를 깨워서 나를 찾아왔다. 하나님은 죽음의 순간에 딸아이를 통해 나를 살려 주신 것이다.
  나는 다시 죽어야 된다는 생각에 토요일 밤 모든 사람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일어나 작은 골방에 들어가 앉아 생각하니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이 시간에 옛날에 믿던 하나님께 마지막 유언 같은 기도를 하였다. “만약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나의 기도를 들었다는 표시를 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갑자기 온방이 깜깜해지면서 바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지붕이 온데간데없고 밤하늘에 높은 곳에서 환한 불꽃들이 쏟아져 내려와 내 머리에 떨어지면서 내 발끝까지 떨어졌다.
  그리고는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진동이 오는데 주체할 수 없었고, 입에서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정신이 이상해지는 줄 알았다. 방에 뛰어 들어가 두려워 떨며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일어나라.”는 음성을 세 번을 들었고 “일어나 남편을 깨우라.” 나는 간신히 남편을 깨웠고 남편이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니 빛 가운데 내가 있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다시 나에게 “남편의 손을 잡으라.”고 하셨고 손을 잡으니 “너를 축복하노라.”는 음성과 함께 내 몸의 진동은 멈추었다. 그 다음날부터 남편과 나는 교회를 다녔다. 그 후 40일 작정 기도중에 남편에게 기적이 나타났다. 그 날도 밤이 맞도록 방언 기도하는 나의 기도소리를 듣고 깜빡 잠이든 남편은 기이한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꺼져 있던 텔레비전이 환하게 켜지더니 곰같이 생긴 시커멓고 무서운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고 나오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남편은 벌벌 떨고 있었고, 다시 하얀 옷을 입은 분이 하얀 말을 타고 손에 창을 들고 나와서 그 괴물에 심장을 찌르니까 남편에 가슴이 심하게 통증이 오면서 그 괴물은 쓰러져 죽더라는 것이다.
 
남편의 술 중독과 폐결핵에서 고침을 받고
 
  다음날 남편은 술친구가 불러내어 술자리에 같이 앉았고 따라주는 술잔을 바라보는 순간에 술이 소용돌이 치면서 마치 지옥의 소용돌이처럼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은 술 한잔도 입에 대본 적이 없고 술 중독에서 완전히 치유를 받게 된 것이다. 또 건강이 완전하게 회복되었다. 할렐루야! 후에 병원에서 검진 받아 보니 “전에 폐결핵을 앓은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에 20일씩 소아과를 다녀야했던 아이들도 모든 질병에서 깨끗이 고침을 받게 되었고 건강하여 병원에 갈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영혼과 건강의 축복은 받았지만 그러나 가난은 그대로였다. 동생이 넉넉한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을 비워야 될 사정이 생겼다고 방을 비워달라.”고 했다. 있는 돈은 보증금 120만원밖에 없었지만 나는 120만원 중에 20만원을 하나님께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렸다.
  100만원 가지고 방을 얻는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였을 때 하나님의 기적은 다시 나타났다. 시어머니는 보살이셨는데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오갈 데 없게 된 우리가 시어머님 집으로 들어갈까 봐 두려움을 갖게 되게 된것이다. 시어머니는 시누들을 모아놓고 “예수 믿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나는 살길이 없으니 너희들이 나를 살리려면 돈을 내놓아라.” 하셨고 믿지 않는 형제들이 모아온 돈을 보니 31평형 APT로 전세를 얻을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먼저 건강의 복을 주시더니 나중에는 물질의 복을 주시기 시작하셨다. 어느 날 강남에서 사업하는 시누 남편이 우리가 살고 있는 먼 부천까지 와서 스텐레스 공장을 차렸다. 그런데 얼마 안돼서 자신은 도저히 바빠서 그 공장을 경영할 수 없으니 우리에게 맡아서 하라고 했다. 바로 그 공장은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고 할 일없이 놀고있던 남편에게는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온 셈이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250명을 전도하고, 남편은 스텐레스회사 사장이 되는 축복을
 
  바쁜 가운데에서도 나는 열심히 주의 일을 하였다. 열심히 전도해서 구역을 6조로 만들었고, 250명 정도를 전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단합예배는 맡아놓고 우리 집에서 하였고, 주의 종들을 잘 섬겼다.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의 길을 가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나는 신학을 공부하고, 대형 교회 교구 전도사로 7년 간 시무 하다가 하나님의 뜻이있어서 스페인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가난과 질병의 저주아래 있던 우리 가정을 축복으로 바꿔주셨고, 주의 길을 걷게 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린다.
 
〈정리·신향분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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