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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더 이상 양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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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양녀가 아니다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양녀(養女)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부모님이 오빠들을 편애하는 것이 이상했었다. 어머니는 오빠들에게 하는 것처럼 나를 자상하게 대하지 않으셨다. 좋은 것은 항상 오빠들이 먼저였다. 그리고 끊임없는 집안 일로 나는 항상 힘들었다.


  데려온 아이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에 의문이 하나 있었다. '혹시 나는 길에서 주워 온 고아가 아닐까?'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 틈을 타서 서랍 속에 있는 호적등본을 훔쳐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큰 바위 덩어리가 마음속으로 굴러 와 짓누르는 것 같았다.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괴로웠고 세상에는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아껴 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누구와도 말하기 싫었고 인생을 자포자기하면서 모든 사람을 미워했다. 나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이 미웠다.

학교에서 나는 항상 말썽만 부렸다. 아이들이 없을 때 나는 친구들 책에 콧물을 발라 놓았다. 점심때는 도시락을 몰래 훔쳐먹었는데 한번도 들키지 않았다. 아이들이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학교를 졸업하자 부모님은 나를 시집 보내려고 하셨지만 나는 밤에 짐을 챙겨 집을 나와 버렸다. 도시에 올라와 공장에 다녔다. 기계가 움직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한가지 작업을 계속 반복하기도 했다. 생활은 힘들었고 아무런 기쁨도 없었다. 항상 차가운 얼굴로 공장 사람들을 대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왕래도 없었다.

사실 나는 마음속으로 모든 사람들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족들에게 편지나 선물을 받으면 그 다음날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고 때로는 그들이 아끼는 옷이 갈기갈기 찢겨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범인 나라는 것이 드러나 공장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죽음 직전의 따뜻한 손길

내가 공장 문을 나설 때 사람들은 나를 비웃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뿌연 하늘이 숨막힐 것 같았다. 내 주위는 온통 저주만이 가득했고, 새들의 노래 소리도 내 귀에는 절망의 외침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저 멀리서 달려오는 두 대의 버스를 보는 순간 만약 앞차와 부딪혀 죽지 않으면 뒤차가 있으니 확실히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도로 한 가운데로 뛰어 들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 "아가씨, 뭐 하는 거예요!" 하며 나를 끌어 당겼다. 뒤를 돌아보니 한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나이도 젊은데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하며 나를 꾸짖었다. 그 아가씨는 교회에서 나와 맞은편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물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영이었고, 소영이의 권유로 나는 그녀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소영이 집은 크고 넓었고, 소영이는 외동딸이었지만 버릇없거나 교만한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소영이 어머니는 나에게 옷을 사주시며 딸처럼 자상하게 보살펴 주셨다. 소영이 아버지도 자기 딸을 대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무슨 부족함이 없는지 항상 살펴 주셨다. 내 마음에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행복이 넘치기 시작했다.

밤에는 소영이와 함께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나는 고향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들려주었고, 소영이는 내 이야기가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들었다.

소영이는 다니고 있던 회사에 나를 소개하여 매점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했고, 회사 사람들은 우리를 친자매라고 생각했다.

나는 소영이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느껴 보지 못한 부모의 사랑과 가족간의 화목을 맛보며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했다.

단 한 가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가정 예배였다. 그 집에서는 항상 가정 예배를 보았고, 나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참석해야 했다. 불편함을 참고 앉아서 끝까지 말씀을 들어야 했다.


  새로운 가족

"너는 하나님이 있다고 믿니?"
하루는 잠들기 전에 소영이가 낮은 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 글쎄."
"믿지 않는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항상 우리를 보살펴 주셔. 심지어 우리 머리카락 하나 빠지는 것까지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그런데 왜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없을까?"
"우리 가족이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거야.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도 너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을 거야."
"너의 가족의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큰 것일 거야."

세월은 참 빠르다. 나는 벌써 아이 엄마가 되었고, 세례를 받았다. 지나간 세월이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른다. 만일 그때 소영이 가족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강퍅하고 증오심에 가득 찼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가 두렵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사42:3).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과 인자하심은 많은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1985년 딸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했다. 소영이 부모님도 "외손녀"의 세례식에 오셨고, 새 생명을 기뻐하셨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 본 간증문은 "참예수교회"에서 발췌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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