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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어? 간경화가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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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간경화가 어디 갔어?
 
- 전영옥 집사 (58세, 남, 목왕교회, 경기도 양서면 목양리) -



배우고 싶어서 나간 교회

  어릴 때 공부를 하지 못한 배움에 대한 갈급함 때문에, ‘절에 가면 한문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절에 들어가려고 계획하였다. 품삯을 모아서 경비를 준비하는 동안 동네 청년들이 ‘교회를 한번 가보자’고 전도하였다.
  “교회가면 배우는 것이 많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동네 청년들과 수요예배를 나간 것이 믿는 계기가 되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처음 몇 달 동안 제사문제로 갈등을 했는데, 추석 때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결단하고 예수를 믿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함께 교회를 다니던 동네 청년들 중, 세 친구만 남게 되었고, 교회학교 교사를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당시 교회가 멀어서 교회 다니며, 전도하기에 불편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을에 교회를 세워달라’고 뒷산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였다. 그때 기도하는 우리들을 보며 마을 사람들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미친놈들’이라고 웃을 정도였다.

  이렇게 산에서 열심으로 기도하던 우리들은 교회 전도사님과 의논하여 나무를 베어다가 교회를 짓기로 하였다. 구정 연휴 때, 3km 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남의 땅에 교회를 짓기 시작하였다. 목수에게는 삯으로 땔감을 구해 주면서 지었는데, 기둥만 세웠지 바닥은 가마니로 깔았고, 지붕은 루핑(roofing)을 사다가 씌우는 정도였다.
  교회를 짓고 있는데 하루는 산림원이 순찰을 하고 있었다. 소리가 들릴까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산림원이 땅만 보며 지나감으로 무사히 교회를 지을 수 있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하고 찬송을 신나게 부르며 교회를 지어갔다.


나무를 직접 베어다가 지은  ‘목왕교회’

  그런데, 짓고 있는 허름한 교회에서 청년들이 저녁마다 찬송을 가르쳤는데 동네 아이들이 밤마다 모여들었다. 우리들은 깜깜한 곳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성경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런데 주일날, 본 교회로 가려고 하는데, 아이들 40여 명이 옹기종기 허름한 교회에 모여 앉아 있었다.
  아이들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시작된 곳이 ‘목왕교회’였다. 그러나 나는 교회를 다 짓지 못하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 생활이 편한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오히려 어렵다고 하는 공병대에 배치되었다.

  군 생활 동안 이 곳 저 곳 다니면서, 일꾼이 부족한 시골교회에서 주일 학교 교사등 여러 모양으로 봉사를 하면서 계속 믿음이 자랐고, 또 믿음이 좋은 처녀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군에서 제대해 보니 목양 교회는 지붕도 올리고, 전도사님이 시무하고 계셨다. 함께 교회를 지었던 청년들은 모두 떠나고 나만 남게 되었다. 나 역시 생계를 위해 객지로 나가고 싶었지만,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선뜻 고향을 뜰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외지(外地)로 나갔다가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를 지키게 되었고, 노회에 가입하면서 87년에 교회도 반듯하게 세웠다. 교회를 새로 지을 때 내가 소유한 땅에 교회를 지었고, 개울 건너 땅을 대신 받아서 우리 집을 지었다. 그때 친척들은 모두 나를 보고 ‘미친 놈’이라고 했다. “양지 바른 땅과 음지쪽 땅과 바꾸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였지만, 교회도 아름답고 우리 집도 살기에도 편하고 좋았다.


3일 금식기도로 병을 알게 하시고

  3년 전, 신정 연휴에 교회 식구들과 강남금식기도원에 가게 되었다. 앉을 자리, 잘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도로 가득 찬 성전에서 우리 부부도 3일 금식을 하고 내려왔다. 그런데 금식 후에 마음은 기쁘고 감사했는데,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되지를 않았다. 그리고 몸이 붓기 시작했다. ‘금식기도를 했는데 왜 이럴까?’ 하고 있는데 기도원에 같이 갔던 집사님이, “몸에 있던 병이 금식으로 드러난 것이고, 하나님께서 병을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감사하라”고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금식 전에 늘 피곤하고 빈혈이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한달 후에 다시 기도원에 가서 3일 금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계속 몸이 붓고 복수(腹水)가 차기 시작했다. 기도원 목사님과 상담하니 ‘병원에 가서 정확한 병명을 알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기도를 마치고 양수리 병원을 갔는데, 의사는 아내에게 “간경화 말기로 집에 가서 요양이나 잘하라”라고 하였다. “큰 병원에 가도 별 치료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하였다.

  퇴원하여 큰 병원에 갔으나 같은 진단이었다. 병원에서는 “걸어서 나가면 기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3주 입원하면서 복수(腹水)가 빠지기 시작하였고, 병세가 급속히 회복되어 갔다. 예수님을 모르는 의사도 “안수 받았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링겔을 주렁주렁 달고 걸어 다닐 수 있는 환자가 부러울 정도였으니...그때 내게는 기도할 힘도 없었다. 교회 식구들이 많은 기도를 해 주었고, 그분들의 중보 기도의 힘이 컸다.


다시 3일 금식기도로 간경화 고침 받고

  나 역시 내 병을 위한 기도보다는 중보기도를 주로 했다. 기운이 없었기에 평소처럼은 하지 못했으나 성도들과 친지들의 이름이라도 불러가며 기도했고, 마지막으로 ‘못난 사람 죽어도 좋지만 단지 하나님 영광 가리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퇴원할 때 차도는 있었지만 주위 모든 이들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10m도 걷지 못했는데, 이후로 조금씩 회복되어 갔고 황달도 없어졌다. 그래서 기대감으로 “나을 수 있을까요?”하고 의사에게 물었는데, 의사는 아주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간경화가 낫는 것 봤어요?”

  그러나 다음 날 진찰하는 데 의사가 깜짝 놀랬다. “어! 간경화가 어디 갔어?”라고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모두 기적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죽을 목숨을 살리신 것이다. 처음 기도원에 와서 드린 3일 금식기도로 나의 병을 알게 하시고, 또 3일 금식을 받으시고 치료해 주신 것이다. 먼저 기도를 하게 하시고, 때가 되어 응답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아내도 늘 강남금식기도원에 오곤 하였다. 아내는 예전부터 위장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3일 금식을 하는 동안 철야시간에 피를 토하였다. 그 후 위가 깨끗하게 나았는데, 위궤양이 아니라 더 큰 병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이후로 아내는 위장병으로 고생해 본 적이 없다. 교회 지키느라 고향을 떠나지 못한 35년 세월이었다. 예수를 믿게 된 것이 가장 큰 축복인데, 보너스로 새 생명까지 주셨으니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 본 간증문은 강남금식기도원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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