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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깨어진 가정을 되찾게 해준 금식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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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가정을 되찾게 해준 금식기도
 
- 강익중 집사 (79세, 남, 동광교회,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 -


젊은 날의 허랑 방탕한 세월들

  내 나이 벌써 79세. 황혼이 저물어 가는 생의 기로에서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조용히 되돌아보니 나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정신없이 그 인생의 길을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벌써 내려야 할 종착역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인생은 마치 나그네와 같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전주에서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순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믿음이 없는 부모님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장성하게 되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재산이 많아 어릴 적부터 물질의 부족함을 몰랐던 나는 결혼 후에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 가정이 안정을 찾았을 무렵, 노름에 손을 대게 되었고 외도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작은 집 여자와 서울로 와서 딴 살림을 차려 8년 동안 살았다.

  조강지처와 자식을 내팽개쳐 두고 객지에 나와서 이런저런 사업을 시도해 보았으나 되는 일이 전혀 없었고 결국 유산으로 받은 그 많던 부동산도 하나하나 팔아서 노름빚으로 날려 버렸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생의 허탈감에 빠져 좌절하고 있을 때 형수님이 찾아오셔서 ‘삼촌, 이제는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해서 제발 가정으로 돌아가세요’하고 간곡하게 설득하셔서 결국 8년 만에 작은 집 여자에게 위자료를 주고 정리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내가 집을 나가고부터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불철주야 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한없이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었지만 지난날들의 잘못을 뉘우치며 그 동안 잘못한 것이 미안해서 타이어 주문 공장을 열심히 경영하며 충실하게 생활하였다.


  동생의 죽음의 충격으로 인하여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동생이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다가 염산가스가 새어 나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질식사를 당하고 말았다. 동생은 연구소에 많은 돈을 투자했고 ‘사회와 공업을 위하여 인생을 바치겠다’고 하며 열심히 연구하였는데 그 착한 동생이 갑자기 죽고 나니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근본적인 삶에 대한 의문으로 인하여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급기야는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집에 누워서 여러 날 고심하다가 결국은 ‘칠성암’이라는 절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명망(名望) 있는 스님을 만나 인과응보의 법도를 듣게 되었는데 전생의 업보가 전부 이생에서 받는다며 ‘누구든지 심은 데로 거둔다’는 말씀을 듣고 ‘세상에서 가장 바른길은 스님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3년 동안 절에서 죽은 동생과 인생의 무상함에 대하여 공부를 하며 스님이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역시 내가 찾고자 했던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 없었고 스님들의 불경건한 생활을 보고 회의를 느끼며 절에서 나오게 되었다.


죄는 또 다시 죄를 낳고

  절에서 돌아온 나는 집에 돌아와서는 아예 방에다 불당을 차려 놓고 매일 조석으로 정성을 다해 염불을 외웠다. 그러나 가정에 돌아와서 다시 재기한 사업도 실패를 하게 되고, 결혼하여 자녀를 둘씩이나 둔 아들도 집을 나가 오랫동안 아예 소식이 없었다. 며느리는 날마다 우리 집에 와서 몇 날 며칠을 울고 있었다.

  울며 괴로워하는 며느리를 보다못한 아내가 40일 작정 금식 기도를 드리던 중에 37일만에 아들이 남원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어 황급히 달려가 보니 아들은 작은 살림을 차리고 웬 여자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저지른 죄를 아들이 똑같이 짖고 있는 것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고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아들에게 호통을 치고 타일러서 간신히 집으로 돌아오게 했지만 아들은 작은 여자와 헤어지지 못하고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살았고, 결국에는 “아내와 헤어지겠다” 하며 떼를 썼고 “어쩔 수 없으니 아이들을 아버지가 맡아 주세요”하고 말했다. 나는 너무도 화가 나서 “네 자식이니 네 마음대로 하라”며 호통을 쳐서 보냈는데 하루는 딸아이가 찾아와서 “아버지 가정을 파괴하는 모든 나쁜 일들은 귀신의 역사니까 기도원에 가서 금식 기도를 시키세요”라고 귀뜸을 해주었다. 이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아들을 불러서 기도원에 함께 갈 것을 권면 했다.

  이 같은 이유로 금식기도원에 가서 처음으로 아들과 나는 21일 금식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기도원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나는 예배 시간마다 은혜를 받았고 죄를 회개하며 자녀들을 구원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리고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 살아 계신 표적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더니 금식 14일째가 되자 아들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자신의 삶을 회개하며 예배시간에 은혜를 받았다. 아들과 나는 21일 금식을 무사히 마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돌아왔고 아들은 그 후 작은 여자와 합의하여 헤어지게 되었고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할렐루야!


살아온 날들을 회개하며 천국을 바라보니

  어느 날인가는 기도하다가 꿈에서 환상을 보게 되었다. 예수님이 공중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더니 내 우편에 서 계셨고 빛이 환하게 비추는데 한쪽을 삼분의 일이 어두움에 있었다. “예수님은 길이요, 생명이요, 빛이라고 했는데 왜 한쪽이 어둡습니까?” 했더니 “그 어두움은 너의 것이다. 3주씩 2번을 금식하라” 하셨다.

  꿈에 주신 말씀을 따라 42일을 금식하던 중 천국을 보여 주셨는데 천국 문 앞에는 천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천사를 따라 들어가 보니 오만 가지 색상의 아름다운 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었고, 나무에는 가지마다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으며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또 어느 곳에 가보니 아내가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고 나에게는 왕들이 입는 곤룡포를 입혀 주고 머리에는 왕관을 씌워 주었다. 나는 그곳이 너무 좋았지만 ‘천성에서 낙을 누리지 않고 세상에 나가서 죽어 가는 영혼을 이곳으로 인도해야 한다며 세상으로 내려가겠다’고 말을 했다.
  꿈에서 깨어 보니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욱 확실해졌고 전도에 불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지금처럼 강남금식기도원을 자주 와서 금식 기도를 하게 되었다. 올 때마다 자녀들과 손자들 또 아는 사람들을 기도원에 데리고 와서 나의 지난날들을 간증하며 하나님의 또한 역사하심을 이 시간에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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