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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믿고 구한 것은 모두 응답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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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구한 것은 모두 응답하시는 하나님..
     
- 정정애 집사 (48세, 여, 반석교회, 경기도 안양시) -


믿음이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하시고

  나의 부모님은 한 달에 몇 번씩 절에 가셔서 불경을 외우시면서 정성을 다해 절을 하시고 집안에 대소사(大小事)의 문제가 생기면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와 무당을 데려다가 많은 돈을 주면서 굿도 하고 고사도 지내셨다.
  전형적인 불교 가정에서 자라난 나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한 친구를 만났는데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그 친구는 나에게 끊임없이 전도를 해 왔다.
  그때마다 "우리 집은 절에 다니기 때문에 교회는 갈 수 없다."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친구는 내 손을 꼭 붙잡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짜증을 내면서 "나는 안되니까 다른 친구들이나 열심히 전도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때부터 친구는 나를 위하여 금식기도를 하고 적극적으로 교회로 전도하려고 했지만 절에 열심히 다니셨던 부모님들의 심한 반대로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죽어가던 아이가 기도로 살아나게 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결혼을 하여 남부끄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던 중 백일이 지난 큰 딸 아이가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열이 펄펄 나기 시작하더니 의식을 잃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면서 금방 죽을 것만 같았다.

  당시 집에서 병원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시간은 밤 11시 30분 경이어서 나와 남편은 너무 당황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쩔쩔매고 있는데 그때 문득 나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 주던 그 옛날 친구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친구야, 혹시 살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 봐.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어려운 일도 모두 해결하실 수 있단다." 하며 말해 주었던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의식을 잃어버린 아이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온 힘을 다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죽을 것 같은 어린 딸을 살려 주세요. 치료해 주시면 앞으로 열심히 교회에 나갈게요."
  하나님께서는 즉시 그 기도를 들어 주셔서 백지장 같이 의식 없던 아이는 거짓말처럼 잠시 후에는 얼굴에 생기를 되찾으며 새근새근 숨을 고르게 쉬면서 깨어났다. 그 모습을 보던 나와 남편은 어렴풋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으면서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교회를 나가기로 하였다.
  그 다음 날이 마침 주일이었고 가까운 교회에 가서 등록을 하고 새벽 예배부터 열심히 나가게 되었다. 그 후 5년 동안 교회에서는 모범집사 부부가 되었으며 아이들도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영육간에 받은 축복

  교회 심방과 여전도 회장과 주일학교 부장 등 교회의 크고 작은 일에 참석을 하여 봉사를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우리 가정에게 허락하여 주셨다. 교회에 처음 나갈 때에는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 전세로 살았었는데 시내에 새로운 집을 마련해 주셨고 남편에게는 사업장도 주셨으며 얼마 후 나에게는 슈퍼마켓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다.
  그러나 그때부터 남편은 사업이 바쁘고 몸이 피곤하다고 교회를 열심히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새벽 예배를 빠지지 않았고 주일이면 반듯이 가게문을 닫고 주일 예배를 드렸으며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하나님께 드렸다.

  저녁이면 피곤한 몸을 주님께 의지하면서 혼자 골방에 앉아서 작정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아직까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시댁식구들과 친정식구들을 위하여 영혼 구원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작정 기도를 마친 몇 달 후에 놀랍게도 시숙과 시동생의 건강 문제로 염려가 많으시던 시부모님께서 그동안 믿었던 우상을 버리시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훗날 하나님의 방법으로 시댁식구 모두를 구원해 주셨다.

  그러나 친정식구들은 워낙 조상 대대로 우상을 섬겼기에 내가 전도를 하려고 할 때마다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짖어 기도했고 목사님을 모시고 시간이 날 때마다 친정 집에 가서 전도를 하였고 결국 끈질긴 기도와 전도로 부모님을 비롯한 오빠, 언니 등 모두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할렐루야!


남편의 불순종과 죽음

  어느 날 바쁜 일과 속에서도 마음이 갈급하여 기도원에 가게 되었다.
  기도굴에서 기도를 하다가 "너의 남편에게 신학 공부를 하도록 하여 나의 종이 되도록 권하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잘못 들은 줄 알고 나의 귀를 의심하였는데 두 번 똑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기도원에서 내려가서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었더니 남편은 몹시 화를 내면서 "사업도 바쁘고 힘든데 신학공부 하기는 힘드니 믿음 좋은 당신이나 해." 라고 하면서 더욱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결혼 당시 남편은 특히 신장이 나빴었는데 교회를 잘 나가지 않자 신장이 몹시 아프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세브란스 병원에 장기간 동안 입원을 하는 등 어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잘 운영되었던 슈퍼마켓도 정리를 해야 했고 사업도 점점 기울어져 갔으며 장기간의 병원비로 인하여 서서히 물질적인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요동하지 않았다. "주시는 이도 여호와시며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시다" 라는 말씀대로 예배 시간이 되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흔들림이 없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하나님이 당신 애인이야. 남편은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데 교회에 가서 무엇을 하다 이제야 와." 라고 하면서 신경질을 내며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건강은 계속해서 더 악화되었고 본인도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향 어머님이 계시는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나는 고향집에 가기 전에 "우리 같이 금식 기도를 해 봅시다. 하나님이 당신 병을 고쳐 주실 거예요." 라고 말했으나 남편은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절대 기도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여 할 수 없이 긴급 자동차를 대절하여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임종 직전에 남편은 하나님께 철저한 회개 기도를 드리면서 내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렸다. 결국 "그동안 마음 고생, 몸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 이제 나는 천국으로 갈 때가 되었으니 당신은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되도록 해. 정말 미안해." 라는 유언을 하고 나서 평안한 모습으로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주의 종이 되어서

  남편의 죽음 이후에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여 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하였다. 현재 대학원 1학년에 재학중이며 같은 학교에 재학중인 전도사님께서 어렵게 개척하신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마지막 나의 기도 제목은 부족하고 연약한 여종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어 사회에서 버림받고 외롭고 힘든 무의탁 어른들을 모시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 원하며 그 분들을 모실 수 있는 장막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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