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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섯 도시를 살린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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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도시를 살린 바울    
 
- 조병호 목사 (성경통독원 대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로마 제국의 핵심 인프라인 도로의 우수성을 일컫는다. 로마는 넓은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정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것은 파발의 속도를 높이는 것과 직결된다. 따라서 도로를 닦고 보수하는 일에 어느 제국보다 열심이었다. AD 1세기 최고의 지성인 바울은 복음을 위해 뛰어난 전략들을 세웠다. 특히 복음의 유럽 경로에서 로마의 다섯 도시 활용은 탁월하다.

유럽 전도의 첫 관문은 ‘빌립보’였다. 이곳은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와 깊은 연관이 있는 도시이다. 그는 크레니데스라고 불렸던 마케도니아의 한 도시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필리포스라 명명했다. 그곳이 바로 빌립보이다. 

필리포스 2세는 어린 시절 그리스의 테베라는 도시 국가에 볼모로 잡혀갔었다. 그가 마케도니아로 돌아와 테베에서 배운 전쟁 기술과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그리스를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중, 크레니데스에서 금광을 발견하고는 그 도시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금광의 도시 빌립보는 알렉산더의 ‘헬라 제국의 시작’을 가능케 한 도시였다. 바울은 유럽 선교의 시작을 바로 헬라 제국의 거점 도시로 정한 것이었다. 

바울의 다음 도시는 ‘데살로니가(테살로니카)’이다. 이곳은 대평원이 있는 곳으로 고대의 장수들이 양편으로 진을 치고 큰 전투를 많이 치룬 곳으로 유명하다. 바울은 이곳에서 유대인들의 방해와 위협 때문에 3주간밖에 머물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은 ‘베뢰아’로 옮겨간다. 바울은 신사적인 도시라고 평한 베뢰아는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을 떠나기 위해 4만 명의 군사들을 모아 출정식을 치른 곳이다. 

바울이 다음 도착한 곳은 ‘아덴(아테네)’이다. 아덴은 기원전 6세기에 철학과 과학을 시작한 문명의 도시이다. 또한 ‘연대기’보다 상위 개념인 ‘역사’를 시작한 곳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아덴을 중심으로 철학을 발전시켜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은 이후 기독교에도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은 초기 그리스도교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교회에 영향을 끼쳤다. 바울은 복음을 철학의 한 내용으로 이해하려는 아덴 사람들을 만난 후, 지식의 논쟁이 아닌 십자가의 도(道)만을 전하기로 결심한다.

바울의 다음 도시는 ‘고린도(코린트)’라는 그리스의 항구 도시이다. 그리스는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트, 테베가 패권을 다투는 나라였다. 그러나 고린도가 아테네나 스파르타에 비해 명성이 적은 것은 천재들의 출현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곳에 고린도 교회를 세웠다. 이후 다시 방문하여 약 석 달을 머물며 로마서를 집필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스페인으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롬 15:23). 바울의 이 말은 소아시아와 동유럽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다 전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시의 땅 끝이라고 여겼던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그의 꿈의 열정을 강조한 것이다. 

바울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복음의 큰 파장을 기대한 중요한 도시의 선택은 그 지방 전체를 포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2010년 새해 벽두,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을 생각해본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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