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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일으키시는 하나님 - 한국 최초 맹인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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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일으키시는 하나님


한국 최초의 맹인 박사, 백악관 종교 및 사회봉사 자문위원
장애인 재활 통한 국제 교류 및 우호 증진 도구 되고파

-강영우 박사 (미국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학 특수교육국장 및 교수) -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좋은 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이미 열린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만일 두 개의 문이 다 열리면 어떤 문으로 들어갈까 망설이다 길을 잘못 드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신체적인 장애를 갖게 된 것도이미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문이 닫힌 바로 그 때가 하나님께서 더 크고 좋은 문을 여시는 때임을 내 인생을 통해 깨달았다.

내가 시각장애인이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축구시합을 하다가 공이 눈에 맞은 후 부터다. 시각장애인이 되기 2년 전인 열 세살 때에는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고, 맹인이 된지 1년 만에 아들이 영구히 시력을 잃게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어머니가 뇌일혈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목사가 되겠다던 내가 안마사나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신세가 될 것을 생각한 나머지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나셨던 것이다.

난 고아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년 4개월만에 가장이었던 누나 마저 세상을 떠났다. 학업을 중단하고 네 식구의 생계를 위해서 돈벌이에 나서야만 했던 누나는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삶의 의지를 잃고, 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한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의지할 곳 없던 나는 아홉 살 된 여동생과 열 세살 된 남동생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불과 4년이란 짧은 세월동안 양친과 누나와 시력을 모두 잃고 어린 두 동생을 껴안고 절망에 몸부림을 치며 울어야 했다. 주위에서는 우리 집안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재앙이 닥쳤다고 말했다.

남동생은 철물점에서 먹고 자며 심부름을 해주었고, 저녁에는 야간학교에 다녔다.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난 맹인 재활원에 입소해서 타자와 점자를 익혀 서울맹학교에 입학했다. 낮에는 맹학교에서 안마술과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 웅덩이에 빠져 다치기도 하고 맹인이라 재수 없다고 버스 차장이 밀쳐버려 도저히 학원을 계속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으로 눈물겹게 대입준비를 할 수 있었다. 맹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받았던 수많은 오해와 편견, 수모를 극복하고 연세대학교 교육과에 입학을 했고, 4년 후에는 2등으로 졸업했다.

지난 1972년에는 ‘장애인은 유학할 수 없다’는 법적 불평등 조항과 국가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여권과 비자를 받아내 피츠버그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 한국최초의 맹인박사가 되었다.

현재는 미국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하나님을 증거하고있고, 특별히 지난 2월에는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종교 및 사회봉사 부문 자문위원에 발탁되었다. 자문위원은 종교 및 비영리단체의 사업지원 신청 가운데 결정하기 애매한 사항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데 이곳에서 내려진 결정은 곧 대통령의 제안이자 정부안이 된다.

현재는 미국 교육부 차관보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어 낮은 자를 들어쓰시는 하나님을 절실히 경험하고 있다. 더욱이 두 아들은 각각 안과 전공의와 법학 박사 학위 취득 후 변호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 하나님의 배려하심과 인도하심에 너무나 감사드리고 있다.

맹인인 내가 이렇게 절망과 좌절의 늪 속에서 승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역경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더 좋은 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 ‘실명을 도구로 쓰시는 하나님’이 바로 내가 만난 하나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달았다.

내가 시각장애인이 된 것은 이미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보았고, 절망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나의 실명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교량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또한 장애인 재활을 통한 국제 이해와 우호 증진에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의 도구로 인해서 나의 실명에 감사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다가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 기쁘게 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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