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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전도간증] 복음의 나팔을 부는 파숫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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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음의 나팔을 부는 파숫군

- 간증 : 이철규전도사 (전주대학교회)  -


말씀 / 겔 33:6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제가 전도폭발을 만난 것은 작년 3월 신학공부 졸업반 때입니다. 작년 1월에 저는 전도에 대한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저는 UBF에서 10년 간 캠퍼스 복음 역사를 섬기는 간사로 일해왔습니다. 저는 성경공부 방법론에 대해 논문을 쓴 적도 있고, 성경공부 교재들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 소그룹 운동, 제자훈련, 세계선교 등 여러 일을 해 왔지만 정작 제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개인 전도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암말기로 뼈만 남아 신음하며 대학병원에 누워 계시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말씀을 준비해서 갔는데 '천부교'라는 이교를 믿고 있는 할머니에게 할 말을 몰라 쩔쩔 매다 패배감만을 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남들은 나를 '예수에 미쳤다'고 하고, '가족도 친구도 학문도 버리고 성경만 아는 자'라고 하는데 이런 자가 죽어가는 할머니에게 복음도 전해주지 못하다니 자괴감이 밀려 왔습니다.

바로 다음 주에 제가 부산에 수련회 차 다녀 오는 차에서 할머니가 나를 간절히 찾고 있으며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란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쁜 사역 때문에 가지 못하고 며칠 뒤에 가보니 병실에 할머니가 안 계셨습니다. 집에 오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저는 천금만금 되는 발걸음으로 영안실에 가서 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남들은 제가 할머니와의 이별이 슬퍼서 우는 줄 알았고 '효자 손자 났다'고 했지요. 그러나 저는 할머니가 생애 최후의 순간이 한 걸음씩 다가올 때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두려움에 몸서치다가 마침내 지옥불에 떨어진 것이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복음의 메시지와 기도를 애타게 바라다가 끝내 복음을 듣지 못하고 간 할머니를 생각할 때 목자의 타이틀을 가진 제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럽고 비참해서 울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제 서재로 돌아와 밤을 지새우며 통곡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한 영혼의 목자로서 영혼의 파숫군으로서 복음의 나팔을 불지 못한 제게 하나님은 할머니의 피값을 준엄하게 물어오셨고, 죄책감 앞에 제 가슴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새벽녘에 이르러 저는 하나님 앞에 한 가지 결단을 하였습니다. 제 평생 동안에 무슨 바쁜 일이 있어도 한 영혼에 복음을 전하는 일만은 뒤로 미루지 않겠다는 각오였습니다. 내가 만사를 제치고라도 죄악에 잠들어 있는 영혼을 향해 복음의 나팔을 부는 파숫군의 사명을 감당하리라!

이렇게 목말라 있던 때에 신학교 손석태 원장님의 추천으로 전폭을 만나게 되었고, 첫 시간 케네디 목사님의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행동을 바꾸라" 는 강력한 도전에 뭉클함을 맛보았고, 신학교에서 전폭 강의를 하셨던 양완식 목사님이 전주에까지 내려와서 제게 '한 영혼의 전도'를 본 보이신 것을 통해 이것이 전도자의 삶임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제가 확연히 전도에 눈을 뜬 것은 작년 여름 할렐루야 교회에서 있었던 123회 임상훈련이었습니다. 이창호 목사님의 "전도인으로 무장되고 전도자의 환상을 보라" 는 말씀이 마음의 돌비에 지금까지 콱 새겨져 있습니다. 그 한 주간 저는 제 생애에 있을 수 없는 사랑과 섬김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 목회자의 성숙한 신앙 인격과 준비된 지성과 경건한 리더십이 얼마나 한 교회를 통하여 지역 사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세계에 큰 일을 할 수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저는 한 주간 확실히 무장되었고, 확실히 환상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1세기 사도행전의 역사가 이곳 전도현장에서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1세기의 성령님이 21세기의 성령님이시고, 1세기에 바울 한 사람을 부르시고 무장시키셔서 환상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이, 40년 전 미국에서 J. Kennedy 목사님 한 사람을 부르셔서 오늘날 전도폭발을 이루셨듯이, 오늘 한국에서 또 하나의 바울을 찾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같은 연회 때에 모든 이들 앞에서 저의 환상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전북대와 전주 땅에 전폭을 심고 대학교회를 전폭임상기지교회로 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개혁신학연구원에 전폭을 심어 전국의 목회자들로 하여금 방방곡곡과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꿈을 실현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1년이 지난 지금, 결과를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착실하게 성취해가고 계신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전북대 사역은 지난 가을 1기, 올 봄 2기 훈련을 하고, 곧 수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짧은 경험을 통해서 중요한 몇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로, 전폭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장에서 바로 오늘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바쁜 일은 없습니다. 저는 형편상 신학 공부 마지막 학기로서 학업과 졸업 논문에 쫒겼고, 이미 개신원에서 훈련자로 섬기고 있었고, UBF 스탶(간사)로서의 사명도 버거웠습니다. 더구나 혼자서 강의나 기타 필요한 준비를 해서 섬기려니 엄두가 잘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바쁜 것은 남들이 다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든 시작을 미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럴듯한 핑계를 댈 때마다 주님께서 "오늘 밤..." 이라는 진단질문으로 제게 찾아와 영혼에 대한 목자의 심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교회의 성숙한 선배 대원들의 계속적인 기도지원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일을 져지르고 보자'며 준비가 부족한 가운데 도전했습니다.

먼저 돌아간 직후부터 10명에게 개인전도를 시도했습니다. 의외로 가까운 신자들 중에서 구원의 확신이 없어 괴로워함을 보았고,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분들 중에 진짜 이것도 저것도 잘 못하는 '못해신앙' 이 많음을 알았습니다. 10명 째를 하고 나자 자신감이 생겨서 간사급 4명에게 열흘간 집중훈련을 하며 강의를 해 보았습니다. 이 기간 중에 두 팀에게 2회씩 4회 현장 실습을 하여 모두 결신을 얻었습니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가을 학기에 정식으로 16주 훈련에 돌입하였습니다. 7명(선교사 1명, 대학원생 3명, 학생 2명, 사모 1)이 시작해서 대학원생 1명이 중도 탈락하고, 6명이 마쳤습니다. 여름학기 훈련한 사람들을 훈련자로 세우려고 했는데 교회와 협조가 잘 안되어서 결국 저 혼자서 3팀의 현장 실습 훈련을 시켜야 했습니다. 전체 복음 제시 33회에 22명이 결신을 하였습니다.

1기 수료생 6명 중에 한 분은 현재 에스토니아에 선교사로 가 있고, 1명은 제 아내이며, 나머지 4명 모두 훈련자로 이번 봄학기 2기 훈련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훈련생은 8명을 모집했는데 대학원 연구실과 학과의 부담 때문에 4명이 이탈하고 4명이 끝까지 남았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처럼 모든 일이 다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2기까지 훈련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모자라고 부족한 가운데, 다만 오늘 나의 현장에서 순종하고자 하는 자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바빠서 못한다는 핑계는 사람 앞에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비춰볼 때 바빠서가 아니라 게으름과 불신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1년 동안 이제 갓 대학에 들어온 젊은 대학생 새내기들, 대학원 연구실에서 밤을 새는 대학원생들, 암 말기 환자로 죽음을 앞에 둔 노인, 성공 가도에 오른 전문의나 잘 나가는 박사, 시골 깡촌 교회 건물도 없는 곳에서 농사 짓는 부모님들, 평범한 주부, 고시 준비 중인 사람 등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하나같이 소중한 영혼들이요, 이들의 복음 영접과 변화는 다 극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전폭에 내일이란 없는 것"입니다. 제 안에는 전폭 격언 하나가 생겼는데 "내일 하겠다고 하는 사람 중에 무서운 놈 하나도 없다" "내일 한다는 이들 중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입니다. 내가 비록 못나고 지혜가 부족해도 '오늘 여기에서 내가 시작하겠다'는 즉각적인 순종과 용기를 가진 사람을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것을 배웠습니다.

둘째로, 전폭은 단순히 전도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켜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로 만드는 훈련이었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고 한 영혼을 건져내기 위해서는 전도의 테크닉 이전에 깨끗한 그릇,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새벽기도와 매일의 QT를 위해 더욱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훈련생들이 점점 개인 경건생활에서 누리는 영생의 기쁨이 커져갔습니다. 기도가 살아나고 말씀의 힘을 얻자 전도도 탄력이 붙었습니다. 이를 통해 전도가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 이상으로 먼저 전도자 자신을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며, 훈련생과 훈련자 모두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경건의 모양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가진 그리스도인, 성령의 능력을 덧입은 전도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생겨났고, 성화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를 맺는 삶이 크리스챤의 기본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한 나절을 드리며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섬기면서도, 더 많이 회개하고 더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이 훈련을 통해서 기도의 사람이 되었고, 어떤 이는 눈물을 가진 목자가 되었고, 어떤 이는 연약한 건강이 강해졌고, 어떤 이는 오랫 동안 가지고 있던 상처의 내적 치유를 받았습니다.

셋째로, 일본인 Dr 마쯔다 기꾸 한 사람을 동역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려운 시작기에 모두에게 은혜를 끼친 사람이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홋카이도 수의과 대학 석사 출신인데 한국에 대한 빚진 자의 심정으로 북경대나 미국의 장학생의 길을 양보하고 한국의 전북대에 왔습니다. 이곳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전북대 연구실에 근무중입니다. 그녀는 과로와 영양 부족으로 두 차례나 아이 출산에서 실패한 깊은 슬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의 권유로 남편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암기가 태산과 같은 걸림돌이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잘 이해하여 소화하기도 어렵거니와, 한국 사람도 암기하기 힘든 전문을 그 딱딱하고 건조한 문법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려 하니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 주 훈련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눈물을 쏟으며 돌아갔습니다. 집에서도 수없이 쓰고 외우며 남편과 함께 교대로 연습하고, 수첩에다 깨알같은 글씨를 기록하여 외웠습니다. 8주가 지날 때까지 포기와 눈물 사이를 오가며 버텼습니다. 그런데 8주가 지나자 드디어 전문이 암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외우자 암기를 핑계 대던 사람들의 불평이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연구실과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4번 째 복음제시에 도전하여 첫 결신을 얻어냈습니다. 그녀는 첫 결신을 이룬 후 쿵쾅거리는 흥분과 감격을 억제하지 못한 나머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면서 "아! 사고가 날 것만 같애"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악셀레이터를 더 세게 당겼다고 울면서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기도의 삶, 말씀을 사랑하는 삶, 전도하는 삶을 통해서 두 아이를 잃고 평생 지울 수 없이 멍들었던 가슴의 상처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부부가 아주 화목한 가운데 둘 다 전도에 앞장서서 전도팀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1기 16주 동안에 마쯔다 기꾸는 전체 중에서 가장 많은 9명을 전도하였습니다. 전도훈련 후에도 그의 생활속의 전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구실이나 주변에서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또한 Dr 마쯔다 기꾸는 전도 훈련 직후 '한국어 능력시험'을 치렀는데 한국 생활 4년 만에 가장 높은 단계인 6급 시험에 기적적으로 패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가 수없이 흘린 눈물 속에 감당한 전도훈련을 기뻐하시고, 이제는 한국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전도를 하며, 카운슬링까지 할 수 있는 베테랑이 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역사하셔서 그 한 사람의 변화를 통해 전도팀을 살렸습니다.

넷째로, 관계 전도가 전도의 가장 큰 비밀임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복음 제시를 할까가 관건이었는데 조금 경험해보니 복음 제시는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더 어려운 것은 관계 전도였고, 관계전도보다 더 어려운 것은 양육이었습니다. 일단 관계망을 최대한 확충해 놓기만 하면 전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임현중 형제는 작년에 복음을 영접한 행정학과생입니다. 그는 합격 후에 입학식도 치르기 전에 간 선배들과의 MT 때 산에서 버스가 굴러서 친구가 죽고 자신도 병원에 입원했던 형제입니다. 몇 년 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대학에 와서 사고를 만나 친구가 차에 깔려 신음하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자신도 부상 당한 채 지켜 보았고, 그 죽음의 아수라장에서 구조되기까지 몇 시간을 고통했던 터라 심리 치료를 받고 있던 중에 저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의 형편을 알고 기도하면서 그의 영적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6개월 동안 저의 사랑은 느끼면서도 복음은 거부하다가 마침내 어느 날 제시된 복음을 영접하였습니다. 그가 복음을 영접하는 날 그는 버림 받은 생애를 사는 자신과 함께 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1시간 이상을 하염 없이 눈물을 쏟으며 화장지 한 통을 다 버려야 했습니다.

그가 변화되자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사회대생으로서 늘 공대에서 수업 받으며 아웃사이더로 놀던 그가 저의 기도지원을 받으며 학과의 학회장이 되었습니다. 마침 행정학과 선배이던 저는 그에게 적절한 정보를 얻어서 학과의 각종 중요한 모임을 뒤에서 지원하였습니다. 연합 MT에 딸기 10박스를 들고 따라 갔습니다. 스승의 날 사은회에는 화분 하나를 보냈습니다. 학과 MT에 시장에서 고기 20근을 불고기로 만들어 보내기도 했습니다.시험 기간에는 빵을 사들고 도서관에 찾아 갔습니다. 고시반에 찾아가 격려하고, 과 안에 축구 동아리 대회 때에는 음료수를 들고 가서 지원했습니다. 교회 축구팀과 행정학과 축구 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관계성이 많아지자 임현중 형제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전도팀에 연결되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오고, 1학년 형제 자매 후배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예배에 나옵니다. 대학원 생도 와서 복음을 영접하고 예배에 나옵니다. 그의 고교 친구들도 와서 복음을 듣고, 어머니도 교회에 나갑니다.

관계 전도의 위력을 저는 삶의 현장 곳곳에서 느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전혀 기독교 뿌리가 없던 집안에서 신앙을 지키느라 관계성이 많이 어그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가운데 저를 목자로 권위를 세워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작년 한 해 '관계 회복의 해'로 잡고 노력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믿음생활하면서 끊겼던 친구들과의 관계도 회복하며 가능한 모든 관계망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아내의 조부에게 복음을 들려준 것이 계기가 되어서 마지막에 믿고 돌아가신 그 분의 추도식에 50여명 친척들이 모였는데 극적인 예배를 인도하며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조카들이 먼저 믿게 되었고, 그리고 소문난 핍박자로 제가 다니던 교회의 기물을 부수던 누나가 조카의 질병을 통해서 자신이 의자를 뒤엎어 버리던 저희 교회에 나가 새벽에 두손들고 기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친가와 외가와 처가에 삼족 가운데 복음의 뿌리를 뿌리고 계십니다. 올 해 안에 불경소리 나고 부적이 가득한 우리 집에 찬양 소리 울리며 명절마다 제가 설교하고, 형수가 대표기도하고, 조카가 반주하며 아이들이 특송하며 예배 드리는 가정 복음화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 아파트에 지난 가을 이사를 했는데 아파트 복음화를 위해서 만나는 이들마다 먼저 인사를 하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저의 세 아이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어린이 전도왕'의 꿈을 갖고 먼저 '인사부터 잘하는 전도 친화적인 아이들'이 되도록 가르쳤습니다. 인사의 효과는 3개월만에 나타나 이제는 '사방에서 달려와 인사하는 전천후 인사꾼'들로 소문이 났습니다. 저희 집에 아이들 보고 싶다며 아줌마들이 와서 사랑방처럼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아내와 연결되어 교회 예배에 오기도 했습니다. 전도인은 삶이 그리스도처럼 되어 전도친화적으로 살며, 삶의 모든 현장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저는 지금도 미숙합니다. 아직 전폭 1단계 밖에 배우지 못한 초년생이고, 2기 훈련을 하지만 모든 것이 어설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보다 전도폭발을 통해서 제게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이며, 경건의 능력이 무엇인지, 영혼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저와 훈련생들이 변화되는 것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제 가정이 천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약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저의 환상은 이제 출발했습니다. 전북대 각 단대와 모든 학과의 마른 뼈들이 복음을 듣고 일어나 지극히 큰 주님의 군대가 되는 꿈을 꿉니다. 이들이 전주와 한국과 북한과 세계에 나가 자기가 처한 모든 분야에서 영생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주역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주의 임상훈련기지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피묻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복음을 주시고 주님 오실 날까지 생명을 구원하는 영광스러운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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