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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114가 알려준 기도원에서 구원과 치료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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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가 알려준 기도원에서 구원과 치료를 받고...
   
- 최옥선 성도 (44세, 여, 영등포구 신길2동) -


하나님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삶

  유복한 가정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귀염을 독차지하며 살다가 20세에 연애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보다 6살 위였던 남편은 매우 자상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4대 독자였기 때문에 두 딸과 아들을 낳자 시댁에서도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다. 서예 학원, 독서실, 주유소를 경영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고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전화기를 든 채 기절해 버렸고, 일 주일만에 깨어보니 나는 목에 깁스를 한 채 병원 침대에 있었다. 기절하면서 목을 다쳤던 것이다.
  깨어나 남편 소식을 물었더니 그날이 7일 상이 나가는 날이라고 했다. 목에 깁스를 하고 있어서 장례식에도 못가고, 4대 독자 아들을 잃고 쓰러지신 시어머님과 함께 남편이 누워있는 영안실 위층에 입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 달 후에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 7살, 10살, 11살의 아이들을 보니 '이 많은 아이들을 내가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나?'
  그러나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사랑하던 남편을 위해서라도 자녀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한국에서 아빠 없이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장례식을 치르고 두 달 후 12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울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태국 푸케트 섬의 아름다움에 매혹이 되었다. 코코넛과 하늘, 오렌지를 엎어놓은 것 같은 섬의 정경이 나를 푸케트 섬에 머물게 했다. 그래서 세 자녀들도 태국으로 데리고 건너갔다.
  그리고 끈질긴 성격으로 도전해 5개국의 백화점에 고려 인삼을 판매하는 매장을 갖게 되었고, 여행사를 운영하며 아이들 커 가는 재미로 살아왔다. 세 자녀도 모두 양순하게 자라주어서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자녀들이 되었다.
  그리고 막내아들이 군에 입대하기 위해 입국하게 되었다. 아들이 입대한 후, 전국 일주를 하려고 완도까지 갔다가 중지하고 임시 거주하고 있는 춘천 집으로 돌아왔다.


안내전화 114가 가르쳐 준 강남금식기도원

  나는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건강한 편이었지만 방광염으로 늘 고생을 하였다.
  막내아들을 가졌을 때 아기의 위치가 잘 못 들어서 방광을 눌렀기 때문에 열 달을 소변 줄을 끼고 살았었다. 남편이 4대 독자였기 때문에 아들을 낳아야한다는 생각에 생명을 걸었던 것이다.
  그 후유증으로 신장과 방광이 많이 안 좋았다. 피곤하거나 신경을 쓰면 어김없이 소변을 보지 못해 응급실에 가서 기계로 소변을 빼내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은 나의 일생생활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단식을 하면 병을 고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단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완도에서 돌아온 날 멸치, 김 등을 집에 막 내려놓고 자동차로 길을 가고 있는데 공중 전화 박스에 수화기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누가 전화를 걸고 돈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차를 멈추고 수화기를 들었는데 전화를 걸 데도 없었다. 무심코 114를 눌러 단식원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안내원이 세 곳을 가르쳐 주었다. 그 세 곳 중 한곳으로 가려는데 강남금식기도원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교회 같았다. 나는 양가 모두 종교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 제사를 절에 맡기고도 별 신앙 없이 절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해선 전혀 알지도 못했다.
  미심쩍어 하며 등록을 하려 하니 상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상담실을 가게 되었는데 웬 아줌마가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전도사님이라고 하였다.
  '나는 교회도 안 나가는데….' 하면서 머뭇거리니까 '그냥 가시면 안 돼지요. 예수 믿고 가세요.' 하고 나의 어깨를 양팔로 꽉 잡았다. 그 순간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어떤 감동이 나의 가슴속을 뚫고 들어왔다.


27일 금식기도로 목과 방광염을 고침 받고

  그래서 등록을 하고 21일을 금식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첫날은 성전에 구경꾼처럼 앉아 있다가 성전 앞쪽으로 가라는 말에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성전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차 안에서 그냥 음악을 듣다가 예배가 끝나면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새벽 예배를 시작하기에 자동차로 갔는데 추워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전에 한번 가보자 하여 올라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선교단과 함께 박수를 치며 찬양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었다. 나는 찬송을 몰라 부르지는 못했지만 박수를 열심히 쳤다. 말씀 시간에는 꼭 나를 놓고 말씀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금식 5일째가 되던 날 온몸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목뒤로부터 어깨, 등이 아파지기 시작하더니 8일째 날에는 머리를 들어줘야 일어날 수가 있었다.
  금식하면 아픈 곳이 나타난다고 하더니 그제야 내가 목이 좌우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사고소식을 듣고 기절해서 다쳤던 목에 후유증이 있었던 것이다.
  3일간은 많이 아팠지만 9일째 되던 날은 통증이 사라졌는데 신기하게도 목이 앞뒤, 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거품 소변이 나오기 시작했다가, 9일째 되던 날은 뜬물 같은 것이 나오더니, 3일 후에는 꼭 개구리 알같이 생긴 것이 나오다가 사라지고 소변이 깨끗해졌다. 산모용 기저귀를 차고 예배를 드렸었는데 깨끗이 나은 것이다.

  당시는 정말 나았을까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보호식을 하면서 회사 일로 돌아다니고 철야와 새벽기도를 드려 피곤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예전에는 조금만 피곤하고 신경을 쓰면 피소변이 나왔는데 말이다.
  21일 금식을 마치고 자녀들을 위해 3일을 연장해서 기도했고, 또 고난주간 3일을 더하여 총 27일을 금식하게 되었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전도사님은 처음에 믿음도 없고 기도할 줄도 모르니까 10일만 하라고 하셨는데 나 역시도 신기하였다.

  금식하는 가운데 꿈속에서 아주 마르고 키가 크고 머리가 긴 할아버지 같은 분이 나에게 질이 좋은 각설탕 같은 것을 5번을 주셨고, 또 한번은 나무주걱으로 부드러운 음식을 주셨다. 그런데 꿈에 그 각설탕 같은 것을 먹을 때마다 힘이 샘솟는 듯하였다.
  나중에 전도사님께 이야기하니 예수님이 만나를 주신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감사했다.

  아직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른다. 단지 기도원에 오게 된 것에 감사하고 이 기도원을 가르쳐준 안내전화 114에 감사한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천국찬송가 147장 "술 마시고 장구 치고 죄만 짓다가 ∼" 라는 가사는 나의 가슴을 망치로 때리는 것 같았다. 장구 치고 술을 마신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나만을 위해 살았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여행을 좋아해서 외국의 오지 마을까지 다녔고, 내 나름대로는 운동, 낚시 등등 정말 신나게 살았는데 앞으로는 뭔가 삶의 방향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 본 간증문은 강남금식기도원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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