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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국악인 박동진씨 신앙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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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박동진씨 신앙간증

내 나이 여든 넷, 어떻게 보면 살만큼 살았다. 열 다섯에 부모님께 하직하고 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거의 70년을 소리로 세월을 보낸 셈이다. 「춘향가」나 「흥보가」 혹은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된 「적벽가」 한 대목을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만사 고통이 싹 달아나 기분이 좋다. 지금도 후학을 가르치는 일 이외에 하루에 세 시간씩 나만의 소리를 공부하는 것도 그만큼 판소리는 내가 세 끼 밥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는 내 인생의 전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연구소를 정리하고 내 고향 공주 무릉리로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전통적인 토담에 기와를 얹은 반듯한 판소리 전수관도 지었고, 소리를 배우겠다고 찾아드는 문하생들도 꽤 많아 살 맘이 난다. 그러나 내 맘 한 구석을 사시나무 떨 듯 만들며, 항상 옥죄고 있는 것은 쉽게 밝히기가 어렵다. 이곳에 내이름 석자에 판소리 전수관을 설립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도 근본은 하나다. 물론 판소리를 사랑하고 대중화 시키려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따로 있다. 그건 다름아닌 소리를 통해 이 땅에 예수를 전해야겠다는 소박한 나만의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판소리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문하생 입학 조건을 예수를 믿는 자로 한정한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 비롯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예수를 더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한 내 책임같은 것에 대한 일종의 「빚진 자」로써 그 빚을 청산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처방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곳에 오면 누구든지 교회에 나가야 한다. 그건 거역할 수 없는 「계명」이다.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 원래 공주시에서는 이곳에 내 고향에 판소리 전수관이란 이름이걸린 것을 생각하고 절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 내 계획은 멀잖아 이곳에 교회를 짓고 「예술과 예수의 만남」을 시도해 볼 작정이다. 2700여평의 땅을 이미 확보하고, 건물 투시도도 마련해 놓아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나도 어느정도 발도 쭉 뻗고 자고, 하나님 앞에 가서 쭈삣거리며 이런 조그만한 일이라도 했노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중에도 밝히겠지만 1968년 판소리 「흥보가」를 국립국악원 대연주회실서 5시간 완창을 하고, 이어 「춘향가」를 8시간 동안 물만 다섯 모금 마시며 휴식시간 없이 완창을 하고 나자 요즘 말로 나는 하루 아침에 일약 스타가 되어 있었다. AFP, AP 통신과 유엔방송에서 각각 세계토픽란에 소개하고, 국내 일간지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대서특필로 최초의 완창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잘 키워 주었다. 그러던중 당시 초동교회 조향록 목사와 동아방송 극작가인 주태익씨가 예수의 탄생을 판소리로 해보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조 목사의 말로는 이스라엘 고대 역사를 배경으로 쓰여진 성경 이야기를 그 민족과도 흡사하게 자라온 우리 민족의 가슴에 쉽게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판소리가 제 격이라는 것이었다. 주태익 극작가는 그때 이춘풍전을 판소리 가사로 쓰고 김소희 여사가 창으로 불러 청취자들로부터 크게 인기를 얻고 있었다.

난 그때 『어찌 인류의 성인 중의 한 분인 예수님을 창으로 부를 수 있냐』며 극구 반대했다. 그러다가 내 소리를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도 괜찮다싶어 허락을 하고 대본을 받았다. 집에 와서 대본을 읽는데 재미가 쏠쏠했다. 그때까지 나는 예수가 미국사람인줄 알았는데 중동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왜냐면 같은 동양권이라는 사실에 웬지 친근감이 더했다.

그러나 내 호기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자나 석가는 모두 자신을 위한 삶에 초점을 두어 설파를 했는데 예수는 전 세계 백성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이 나를 자극했다. 『아, 이 어른은 정말 훌륭하구나. 높은 보좌를 버리고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왔구나』하는 감탄이 물밀 듯 밀려왔다. 이후 나는 꼴통 예수쟁이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예수를 믿고 「예수전」, 「탕자전」, 「팔려간 요셉」 등을 판소리로 불렀다.



<박동진 명창 약력>

1916 충남 공주군 장기면 무릉리 출생

1933-37 김창진, 정정렬, 유성준, 조학진, 박지홍 선생 판소리 사사.

1962 국립국악원 국악사 취임

1968 판소리 「흥보가」 5시간 완창

1969 판소리 「춘향가」 8시간 완창

1970-72 판소리 「심청가」,「변강쇠 타령」, 「적벽가」,「수궁가」 완창

1972 성서판소리 4시간 창작

1973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 지정

1975 판소리 「팔려간 요셉」 발표

1980 은관문화훈장

1981 미주일주 국악공연

1989 서울시 문화대상

1996 방일영 국악상 수상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적벽가」 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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