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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어둠에서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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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서 빛으로
   
- 정경숙 집사(여, 46세, 강남중앙교회, 송파구 잠실7동) -
 

늘어나는 것은 약봉지뿐
 
  불교를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이름이 절에 입적되어 있어 법명을 갖고 있었다. 친정아버지는 집에 세 들이는 사람조차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두말하지 않으시고 집밖으로 쫓아내시고 들이지 않으셨다. 나는 은연중에 자연스럽게 불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그래서 배우자도 당연히 불신자를 선택했다.

  우리 부부는 어둠에 처해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채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은 후만 해도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았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 우리 가정을 구원해 주시려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였고, 어둠에서 빛으로 밝혀지기 시작하는 여명의 출발점이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할 당시 아이가 너무 커서 아주 심한 고생 끝에 겨우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그래선지 나는 출산후유증으로 고생을 해야 했고,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손가락 마디마디는 모두 시리고, 위장과 대장은 항상 아팠고,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껴 겨울 코트를 입고 다녀야 했고, 밤에는 단잠을 못 자고 식은땀에 젖은 옷을 7~8번이나 갈아입어야 할 정도였다.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찾아 다녔어도 고칠 수 없었고 말하자면 죽기 직전까지 간 상태였다. 역사학 교사인 내가 미신인 줄 알면서도 무당을 불러다 굿까지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이 넘도록 앓는 동안 늘어나는 것은 머리맡에 약봉지뿐이었다.
 
마지막 방법 
 
  그 당시에 우리 집 가정부로 일하시던 분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는데, 집안일을 끝마친 밤 시간에는 교회의 철야기도를 다니고 싶다고 물어보기에 허락해 주었었다. 그 분이 우리 집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때 그 분이 읽다가 놓아 둔 신앙간증집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의 내용들이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교회에 나가면 그 책에 쓰여 있던 대로 모든 사람들의 병을 고치신 하나님께서 혹시 내 병도 고쳐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래서 마지막 방법으로 교회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전도해준 사람도 없이 가까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교회를 혼자 나갔다. 불교신자이신 친정의 부모님들께는 교회에 나가면 아픈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나을 수만 있다면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목사님이 안수해주시는 것을 아주 기쁨으로 받았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곧 나을 것 같은 믿음이 들었다. 그리고 성경을 손에 들기만 해도 가슴속에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것이 너무 신기해서 ‘도대체 이 책 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몸의 아픔도 멈추게 하고 내 마음을 잡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경책을 창세기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3개월 만에 완독을 했다.
  그 때를 같이해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다. 첫째 날 부흥회에 갔다 온 후, 이튿날 다시 교회를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기가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가야하는데 아이는 울며 보채고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날만큼은 꼭 교회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단하고 여섯 살짜리 큰애에게 아기를 떠맡겨 놓고 교회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날 통성 기도시간에 성령을 받고 방언도 받았다. 또한 몸도 활동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워낙에 뼈 속에 바람이 들어간 것처럼 상했었지만 몸을 보신하며 잘 관리하면 완전히 회복될 것 같았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하루가 다르게 믿음이 성장하였다. 내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니 남편은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하다고 나를 따라서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믿음이 없어 집에서 내가 기도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신앙의 정체
 
  남편이 해외 지사로 발령을 받아 온 가족이 미국으로 나가 살게 되었다. 미국으로 나갈 때는 그 곳에서 전도를 하리라 마음먹고 성경책 몇 권을 사갔었지만, 막상 그 곳에 간 나는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전도는 하지 않고 주일 성수만 겨우 지켰다.

  그러다 하루는 가족들과 함께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주행하고 있는 차들이 뜸하고 도로가 한산했기에 남편은 140㎞의 속도로 주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급커브 길에서 원심력에 의해 차가 튕겨져 나가면서 큰 나무를 들이받고 한바퀴 돌아 거꾸로 떨어지고 말았다. 차 앞부분에 불이 붙었는데 차가 모두 구겨져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앞에 놓여있던 카메라를 세우는 발을 이용하여 차의 유리창을 깼고, 다행스럽게도 가족모두 불타는 차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족모두 무사했을 뿐더러 어디하나 다친 곳도 없었다. 나는 그 즉시 내 신앙의 나태함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나님이 보호하셨다는 것을 알고 감사했다.
  나는 굉장히 놀랐었지만 들고 나온 카메라로 현장을 찍어 직원들에게 보여주며 간증을 했다. 그러나 나의 신앙전선에 더 이상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우리 가족은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처음엔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했었다. 그러나 곧 교회를 나가기는 했지만, 정착을 못하고 겨우 주일에만 교회를 다니면서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자연히 나의 신앙도 함께 푹 쉬고 있었다.
 
온 가족이 합심하여 기도하였더니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 3학년이던 딸의 성적이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근심하다가 수능시험을 2개월 앞두고부터는 아무래도 강남금식기도원에 꼭 가봐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수시로 기도원으로 가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의 나태했던 신앙을 회개하였다. 그리고 딸이 지망하는 고려대 경영학과에 영어특차로 합격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더불어 영어 특차이기는 해도 수능시험점수도 합격점에 이르도록 마음과 물질의 헌신을 다했고 지금까지 주님이 인도하심 같이 이번에도 주님의 인도하심의 은혜를 받아 꼭 합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내가 기도하는 것조차 싫어하던 남편도 딸의 문제 앞에서는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믿음이 생겨났다. 남편에게 딸을 위해 기도원의 본 교회인 강남교회에서 21일 작정새벽기도를 함께 하자고 했는데도 순순히 들어주고 매일 새벽이면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은 후 출근을 했다. 은행이 주5일근무제로 바뀌면서는 금요일에 퇴근한 후에 내가 먼저 가있는 기도원으로 찾아와 주말을 함께 기도원에서 기도를 하며 보냈다.

  감사한 것은 딸의 변화였다. 수능시험까지 남은 기간동안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했고, 무엇보다 기특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스스로 힘쓰는 모습이었다. 딸도 역시 하나님께 서원하여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였고, 우리 가족은 은혜를 받고 믿음위에 우뚝 서게 되었다.

  드디어 시험 날짜가 돌아왔고 시험을 치룬 결과 딸은 기도한 대로 영어특차와 함께 수능시험점수도 만족하게 얻었다. 비록 부족하지만 가족이 합심하여 회개하며 주님을 의뢰하고 간절히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도에 응답을 해주셨다. 할렐루야!

  다시 딸과 함께 기도원을 찾은 것은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기 위함이고,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간증기사를 보면서 우리도 그들처럼 간증의 주인공이 되게 해주시면 간증을 하기로 하나님께 약속을 했기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아무쪼록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여 새 힘을 얻고 응답받는 체험을 하고 더 큰 믿음 위에 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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