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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소망을 이루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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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이루시는 주님
   
- 박진숙 성도 (여, 66세, 필라델피아 블루벨장로교회, 미국 펜실바니아주) -
 
  딸의 조기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들어간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 곳은 한국에서처럼 전도하고 주님께만 충성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여러 가지 환경여건상 쉽지 않다. 직업이 없으면 하루를 사는 것도 힘이 들고, 교회도 멀리 있어 신앙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힘겨운 투쟁이다.

  나 또한 직장 생활을 하며 딸을 공부시키느라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피곤하다는 이유로 처음 미국으로 갈 때에 계획했던 것들을 다 지키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가슴이 답답해졌고, 그것이 오래도록 쌓여 골다공증, 허리디스크, 류머티즘, 관절염 등 많은 질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에 있던 작은아들마저 귀신이 들어가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다.
 
속아서 한 결혼
 
  나는 한국에 있을 때 결혼 전부터 이대입구에서 양장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기술이 있었기에 미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직장을 가질 수 있었다.

  중매로 만난 남편과 1962년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 후 중매를 선 사람과 남편이 대학을 나왔다고 했던 말도 거짓이었으며, 그 외에 남편에 대한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직장도 다니지 않고 무위도식하였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내가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동안 남편은 여자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기에 바빴다. 심지어는 양장점 직원이나 손님들을 유혹하여 유부남들에게 소개시켜주고 용돈을 받아쓰는 등 사람으로서는 못할 짓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다. 거기다 자주 관상을 보러 다니더니 아예 사기꾼 무당이 되어버렸다.

  나는 남편에게 제발 무당노릇 하지 말고 바르게 살아보자고 애원했지만 남편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구타뿐이었다. 한번은 시누이의 시댁 조카딸, 미혼이던 사돈 여자를 유혹하여 여관 등을 돌며 함께 찍은 사진들이 주머니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 일로 남편과 다투었고, 난 몹시 구타를 당해야 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나를 속여서 결혼한 것도 모자라 가정을 등한히 한 체, 나를 학대하고 무당 짓하며 음란한 행동을 일삼았다. 나는 그런 남편이 짐승같이 느껴져 더 이상 참고 함께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혼하기로 결심을 했고, 남편에게 잡히면 칼로 위협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에 친구 집에 7일간을 숨어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나를 붙잡으면 죽이겠다며 칼을 들고 찾아다녔다.

  난 그때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었지만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남편이 무당 짓을 하고 여자들을 유혹하여 가져다주는 돈은 만지기도 싫어 받아쓰지 않았다.
 
성경책과의 우연한 만남
 
  우여곡절 끝에 9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아이들 셋은 내가 맡기로 하고 우리는 이혼을 했다. 남편은 나와 이혼하고 나서는 아예 점집을 차려놓고 더 악한 무당이 되었다.

  이혼을 하고 6년 뒤쯤 생활이 힘들고 맘이 괴로워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때 문득 아빠의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들에게 교회를 다니라고 사주었던 성경책이 생각이 났다. 난 그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단지 마음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밤새워 읽어나가던 성경 속에서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 성경 속의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분인데 완악한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나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자기를 못 박아 죽이는 사람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셨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는 사악한 마음의 사람들까지 용서하셨는데, 나는 남편이 몹시도 원망스럽고 미워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기를 바랐던 것과, 미워하고 분노했던 것을 회개하며 나의 불행이 모두 내 탓이고, 내 죄라고 밤새 몸부림치며 통곡하였다.
  그렇게 통곡하는 나의 어깨를 주님은 가만히 만지셨다. 그때부터 나는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심을 확신하고 믿게 되었다. 할렐루야! 
 
변해가는 하루하루
 
  그 당시 내 친구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한번도 나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하지 않았었다. 그 친구가 나를 전도했더라면 좀더 일찍 주님을 만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절실함 때문인지 전도하지 않는 것이 게으른 죄악이라는 것과 전도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예수님을 만난 1978년 첫 주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며 기도에 불을 붙였다. 내가 주님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세 아이들과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수많은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전 남편의 영혼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까워 오열하며 기도해야 했다.

  그는 이혼 후부터 지금까지 무당 짓을 하며 수많은 여자들을 유혹하여 간통하고, 결국에 가서는 가정에 파탄을 맞게 하며 쌓아둔 재산이 100억 가까이 된다고 한다. 나는 저주받은 것 같은 그 영혼의 구원을 놓고 기도했으며, 또 자녀들의 구원과 물질의 복을 소원하며 기도했다.
  하나님은 “네 자녀들은 구원할 것이다. 물질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해라. 남편은 만나서 전도해라.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하며 전도에만 열심을 내라.”고 응답하셨고, 나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루 종일 기뻐 춤을 추었다.

  그 후부터는 전도만이 하나님께 가장 크게 영광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열심히 전도하였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혼한 남편에게도 전도하였고, 하나님은 그 일로 그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셨다. 그렇게 열심을 품게 하신 주님은 그 동안 내가 받았던 모든 고통을 위로해 주시고 씻어주셨다.
  그리고 교회에서 받을 수 있는 교육은 모두  받았다. 구역장, 조장을 하면서 1983년 수도 성경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그래도 핏줄이라 끌리는지, 아니면 집어주는 용돈을 타서 쓰는 재미 때문인지 나 모르게 가끔씩 무당 아버지에게 드나들었다.

  전 남편은 돈을 뭉치로 집어주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잡으려고 했다. 결국 큰아들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당 아버지의 도움으로 프랑스 유학을 갔는데, 1992년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병명도 없이 갑자기 죽음을 맞았다.
  그 뒤로 나는 한국에 남겠다는 작은아들을 뒤로 한 채 딸만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우리의 목표는 나는 신학을 더 공부하고 딸은 유아교육학을 공부하여 모녀가 함께 주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딸만 유아교육학을 공부하였고, 1년 후에는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나올 예정이다.
 
다시 만난 주님
 
  이번에 한국에 혼자만 나오게 된 것은 강남금식기도원에서 오로지 기도만하여 하나님을 만날 목적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주님을 다시 만나서 영성을 회복해야, 아버지의 군대 돈 귀신이 들어갔다고 고함치며 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귀신을 작은 아들에게서 쫓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여러 질병도 고침 받고, 또 처음 예수님을 믿으면서 언젠가는 꼭 교회를 지으리라는 꿈을 품고 사놓은 땅과 집이 있는 곳을 돌아보고 머지않아 오랜 꿈을 이루게 될 교회와 선교원을 지을 계획을 구상하며 기도로 더 많은 준비를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기도와 전도에만 열심을 내라고 하시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사는 것이 힘들고 바빠서였다고 게으른 핑계를 대던 것을 통회자복 하고 앞으로 남은 삶은 오직 기도하고 전도하며 주의 일에만 충성을 다하겠다고 간절히 금식하며 구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 나를 만나주셨다. 그리고 그 증표로 나의 몸의 여러 질병을 모두 고쳐주셨다. 할렐루야!!!

  이제 인내하고 믿음으로 더 기도하다보면 아들에게 들어간 귀신도 일곱 길로 곧 쫓겨나갈 것을 믿는다. 그리고 교회와 선교원도 세워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을 기대한다.
 
* 출 처 : 강남기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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