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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고난가운데 만난 예수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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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그리고 발병

그러던 중에 군에서 영장이 나왔습니다. 나라의 부름이니 어길 수도 없고 순응하는 마음으로 입대하였습니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최전방으로 간다더니 저야말로 최전방 철책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좋은 것은 의식주가 해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군 생활은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군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웅변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하면서 군 생활을 3박4일 수학여행 온 기분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술과 담배의 양도 늘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대에서 술, 담배, 노동 이것이 교차되는 가운데 몸이 안 좋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때는 심한 통증과 고열을 견디며 밤에 보초서야 할 때도 있었고 어느 때는 너무 힘들어 의무대에 입원한 적도 있었습니다. 소변을 볼 때면 피로 소변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의가사 제대하면 사회에 나가서 아무 데도 취직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3년 복무를 마쳐야만 했습니다.


제대 후 다시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돈을 벌자 돈을…" 그래서 어느 회사에 취직하였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야간 잔업까지 "돈! 돈!" 하며. 이를 악물며 일을 했습니다. 아침은 빵으로 점심은 회사에서 주는 밥, 저녁은 야참으로 떼우며 5개월 정도 버텼는데,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군에 있었을 때 그 통증들이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한번 눈을 붙이면 뗄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던 중 발이 아파 타박상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만성신부전증의 합병증으로 인한 통증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죽는게 낫지


큰 병원에 입원하여 종합검진 결과는 만성신부전증. 일주일에 혈액투석은 2번 이상해야만 하는 그런 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괴롭고 슬펐습니다. 나면서부터 고생고생 끝에 결국 나의 끝은 이것이란 말인가? 신이 있다면 정말로 너무나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이럴 바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야 했단 말인가? 하나님이여 너무나 야속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그 당시 한 번 투석하는데 11만원이 들어가는데 차라리 날 더러 죽으라는 게 낫지. 어떻게 투석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쓰고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투석을 안 하면 2개월도 넘기기가 힘들다는 전문의의 말이 나의 뇌리를 자꾸 스치면서 부천 땅 한 칸 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누워 있었습니다.


그 당시 체중은 45-46㎏을 유지하였습니다. 밤에는 시커먼 검은 그림자가 문 앞에서 서성댔습니다. 졸려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잠든 사이에 저를 꼭 데리고 갈 것 같아서 억지로 눈을 뜨고 있다가 아침결에 되면 저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지 2개월이 다 되어갈 때 나의 몸은 더욱 더 말랐고 '곧 죽는다'는 의사의 말이 자꾸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때 이제 가는구나. 나의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구나.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밤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밤마다 찾아오는 검은 저승사자. 하루하루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기도원으로 끌려가다.

그러던 중 어느 아줌마가 찬송을 들으면 괜찮을 거라는 말에 찬송 테이프를 얻어 틀어놓으니 그 뒤로 밤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하루하루를 기적같이 넘기고 있을 때 어머니가 어디서 소식을 듣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저의 어머니는 오랜 고통과 방황과 괴로운 나날을 홀로 생활하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찾아오셔서 세상사람은 못 고쳐도 하나님을 우리 아들 고친다며 저보고 기도원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것이 저의 생활과 체질과 맞지 않았고 그런 분이 있다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며, 불공평의 신을 저주하던 때였는데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으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그런 것 안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울면서 애원하였습니다. 기도원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 때문에 죽기 전에 효도나 하자는 심정으로 순종키로 하였습니다. 저는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갔습니다.


1월 1일 신년 예배라 참으로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습니다. 어머니의 극성에 대성전 맨 앞자리에 뉘여졌습니다. 예배시간에 몇 천명이 울고불고 소리치고 참으로 그들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병 고쳐 달라는 사람, 아들 얻게 해달라는 여자, 사업이 쫄딱 망했으니 하나님이 알아서 해달라는 중년남자, 세상에 별의별 고통의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는 그들의 모습은 미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곳에 더 있다가는 며칠 살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집에서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는 것이 좋을 성싶었습니다. "엄마, 나 여기 도저히 못 있겠으니 집에 내려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아들 없는 세상 살아서 무엇하냐" 하면서 "나는 여기서 기도하다가 굶어 죽을 테니까. 너나 내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알았다."고 화를 내고 누워있을 때 옆에 있는 60이 넘어 보이는 중년신사를 보았습니다.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돈도 있어 보이고 명예도 건강도 지식도 뭐든지 나보다 나아보이는 사람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아버지 아버지하며 땅을 치며 우는 것이었습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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