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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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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이들을 위하여
   
                                  - 김세교 목사님(남, 49세,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마신 술

  어머니께서는 권사님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셨지만 나는 가끔씩 마지못해 출석만 하는 정도였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히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술을 도피처로 삼아 그런 나를 잊어보려고 하였다.

  서서히 내 몸은 알코올로 인해 망가져가고 있었지만 그것을 느끼지도 못했고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술을 마시지 않으면 괴롭고 답답함이 느껴지면서 알코올 중독증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환청도 들리고 환시도 생겼다. 그런 지경이 된 나 자신이 몹시 싫고 괴로워 그런 현실을 잊어버리려고 더욱 자주 술을 마셨다.

  그 후 나는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며칠씩 식사는 하지 않고 술만 마셔대는 내가 걱정이 되어 가족들이 입원을 시킨 것이다. 대개 알코올 중독자들은 스스로 고쳐보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치료가 힘들지만 나는 계속 술을 마시면서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가족들이 병원에 입원하자고 할 때 저항하지 않고 쉽게 응했다.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2~3일이 가장 힘든 고비였다. 그때부터 금단 현상이 나타나면서 몸이 아프고 고통스러워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도 벽에서 먹물 같은 것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것 같고, 나무뿌리 같은 것이 내 몸을 칭칭 감아 나를 죽이려는 것 같은 헛것이 보이고 간신히 잠을 자더라도 가위에 눌리곤 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또 술을 마시게 되었고, 그러면 고통을 주던 현상은 사라졌지만 치료해보겠다는 의지는 물거품이 되고 그런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미워져 또다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술마귀의 유혹에 붙잡힌 날들
 
  그 당시 직장이 여의도에서 압구정동으로 옮기면서 우리 집도 이사를 했고 아내는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하루는 새로 등록한 교회의 목사님께서 심방을 오셔서 이집의 문제는 뭐냐고 물으셨고 아내는 다 좋은데 남편이 술을 과하게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강원도에서 개척을 하셨을 때 알코올중독자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때 3일을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셨다고 하셨다. 일단은 남편이 교회에 다니면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실 거라고 하셨다며 아내는 나에게 권면을 하였고 나도 정말 안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아내를 따라나섰다.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께서 배에다 손을 얹고 기도를 하시는데 뚫어지는 것 같이 너무나 큰 아픔을 느꼈다. 안수기도를 받고 나오면서 아내에게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아프냐고 물었더니 그냥 가만히 손만 얹으셨다고 했다. 그렇게 열 번의 안수를 받았을 때 목사님께서 이제는 다 나았으니 배고프지 않게 음식 섭취를 잘하라고 하셨다. 그 후 술 없이는 단 하루도 지낼 수 없었던 내가 3개월이 지나도록 술을 끊고 살고 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 있는 처가에 일이 생겨서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한 아내에게 쉴 시간도 줄 겸 한달 예정으로 미국을 다녀오게 했다. 아내가 미국에 들어간 지 한달이 거의 되어갈 무렵 회사에서 거래처를 접대할 일이 생겼다. 굳이 내가 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기회에 시험 한번 해볼까?’ 하는 유혹이 들어 자진해서 술 접대를 맡았고 조심스럽게 몇 잔을 마셨다.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약간의 술기운 탓에 기분이 참묘했고 ‘집에 들어가도 아무도 없는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 발길은 술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또 술마귀에 붙잡히고 만 것이다. 그 후 5일 동안 아내가 한국에 올 때 까지 술만 마시느라 공항에 마중도 못 나갔다.
 
신학을 공부하라는 뜻밖의 음성

  다시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다음 날 나는 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님과 아내와 두 딸과 함께 강남금식기도원으로 향했다. 그 전에도 한번 간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다. 하루의 예배를 마치고 밤 시간에 가족들 몰래 아랫동네로 내려가서 소주를 한 병 사서 단숨에 들이 키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내 자신이 그토록 비참할 수가 없었다. 그때 아내가 나를 찾기 위해 내려왔고 나는 시침을 떼고 담배나 한 대 피우러 내려왔다고 둘러댔다.

  괴로운 가운데 3일이 흘렀다. 술기운이 다 빠지고 나니 허기를 느껴서 금식하고 있던 식구들에게 식사나 하러가자고 했다.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난간을 꽉 붙잡고 앞서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어머니가 금식으로 기운이 없어서 쓰러지신 것이었다. 다치신 것 같아 병원으로 가자고 했지만 됐다고 하시며 방에 가서 그냥 누울 거라고 하시기에 할 수 없이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리고 누워계시게 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참으로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형제들의 원망과 비방을 어떻게 다 받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예배 통성기도 시간에 “하나님! 어머니를 빨리 회복시켜 주셔서 가뜩이나 비난받고 있는 나를 건져주세요. 또 다른 비난과 원망을 듣는다면 정말 살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어머니를 고쳐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뜻하지 않게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공부를 시작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래서 내가 잘못 들었나보다 생각하고 또 기도를 했는데 역시 같은 말씀이 반복해서 들렸다. 나는 잔꾀가 없어서 약삭빠른 계산은 어수룩한 편이었는데 그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재빠르게 생활의 계산을 따지고 핑계를 대며 기도하기를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공부를 하면 가족들 생계와 학비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자 “후원해줄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안된다고 해봤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것은 다 예비 되어있다.”고만 하셨다. 그러나 나는 성전을 나오면서 곧 잊어버렸다.

  어머니께서 넘어지면서 이마와 팔목을 다치셔서 병원을 가기위해 우리 식구들은 다음날 기도원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회사에 출근했으나 회사에서는 말없이 결근한 나를 불성실하다며 야단을 쳤다. 말없이 결근한 것은 내 잘못이니 앞으로 잘하겠다고 하면 되는 것을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회사를 나와 버렸다. 집으로 오는 길에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정말 그 말씀대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기도원에 가고 싶은 마음뿐

  그날 밤 교회의 집사님들이 나의 실직소식을 듣고 위로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나를 위로한다는 자리에서 돈버는 애기와 재산을 불리는 방법에 대해서만 늘어놓아 나를 곤욕스럽게 했다. 그동안 신실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망감으로 화가 났고 기도원으로 가고 싶은 맘뿐이었다.

  집으로 들어가기도 민망해 어머니께 병문안 차 들려서 “어머니,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신학을 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는데 정말일까요? 직장도 그만 둔 마당에 다시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겠어요.” 하고 말씀드렸다.

  기도원으로 가기로 한 다음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나는 비나 그치면 가라고 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기도원행 버스를 탔는데, 지나간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성경을 꺼내들고 대충 훑어보며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스가랴 3장 7절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는 말씀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은혜의 말씀으로 가슴에 와 닿았고 마음에 힘이 되었다.

신학공부의 확신
 
  기도원에 도착하여 10일 금식기도를 작정하며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금식 7일까지는 고생을 시키다가 나중에 은혜를 주지 않으실까? 그러니 첫날인 오늘은 오랜만에 편하게 잠이나 자야겠다.’고 누웠는데 영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보니 새벽예배 드릴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하루예배를 다 마치고 ‘어제는 한숨도 못자서 피곤하니 오늘은 잠을 좀 자야지’ 하고 자리에 누웠지만 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내 가슴을 팍 치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나 강대상 앞으로 가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의 허랑방탕한 생활을 눈물로 회개하며 찬송가 186장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밤늦도록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나의 몸과 마음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워졌고, 알코올중독증상도 말끔히 치료해주셨다.

  기도를 마치고 12시가 넘은 한 밤중에 밖을 나와서 앞산을 바라보는데 몸과 마음이 담대함을 얻어 산도 들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아올랐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신학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두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지난 밤 담대함은 사라지고 슬며시 의심이 들었다.

  혼자서는 어떤 해결도 나지 않을 것 같아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전도사님을 찾아가 37세의 나이에 생활은 제껴두고 막연하게 공부를 한다는 것도 엄두가 안 나고 그렇다고 새 직장을 구하는 것도 맘이 편치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담을 했다. 전도사님은 그렇게 의심이 생기고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께 확실한 응답을 받을 때까지 부르짖고 더 기도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시 강대상 앞에 엎드려 신학을 꼭 해야 한다면 확신을 갖도록 증거를 달라고 부르짖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에도 무엇인가가 내 가슴을 톡 치는 것 같더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상당한 높이까지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도 안 되고 설명도 할 수 없는 체험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나는 기쁘기가 한량없었고 확신과 은혜 가운데 10일 금식을 마치고 하산했다.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하여

  나는 대학교 때 신학을 공부하던 1년 선배가 나에게 그토록 신학을 하라고 권면했지만 못 들은 체 했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선배가 다니던 총신대 대학원 시험을 준비했다. 매일 새벽예배를 마치면 아이들 때문에 집에서는 공부하기가 어려워 부모님 댁으로 가서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처음에는 성경을 펼치기만 하면 졸음이 쏟아져 상당히 애를 먹었는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나서는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가 있었다.

  시험에 합격을 했고 1학년 겨울방학 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깨끗이 씻김과 거룩함의 옷을 입어 온전히 변화된 능력의 종으로 사용되게 하시며 학비걱정도 없게 해달라는 기도제목으로 40일 금식을 작정했다. 그 후 학비전액을 어느 집사님께서 지원해주셨다.

  대학원 3년의 공부를 마칠 때 즈음 십자가 선교회에서 봉사를 하면서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 기도원으로 가서 두 달간을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동안 지난날의 나와 같이 알코올중독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사역을 시작하면 좋겠다는 감동을 주셨다. 마침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한 사역에 동참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글이 신문에 실린 것을 아내가 보고 알려주기에 나는 그들을 찾아가 함께 생활하며 그들이 감화 받고 변화되도록 열심히 봉사를 하였다.

  그즈음 함께 신학을 공부하던 한 학우 한명이 나를 찾아왔다. 그가 신학교 때에 나에게 책 한권을 주었는데 알코올중독자들을 치료하고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활을 돕는 사역에 관한 책이었다. 그때 받은 한권의 책은 나에게 미국으로 견학하러 가고픈 간절한 바람을 주었다.

  그 친구는 학교 때부터 물질로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야 돕는다며 우간다로 선교사 파송을 가면서 드는 경비를 제하고 남은 50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고 떠났다. 그래서 그 돈으로 미국에 견학을 가기위한 많은 준비를 했으나 비자가 나오지 않아 좌절되고 말았다.

  대신 우간다로 단기선교를 다녀왔고 예전처럼 십자선교회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IMF가 터져서 시의 지원을 받아 노숙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일을 하면서 1년쯤 지났을 때 미국을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을 견학할 수 있었는데 그곳은 알코올중독자보다 마약중독자가 더 많았다.
  여러 가지를 보고 느낀 결과, 어떤 중독자든 복음을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열쇠라는 것이다.
  그 후 불타는 마음만 가지고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개척을 했으나 여러 가지 장애로 1년 만에 중단하고 말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기를

  이번에 기도원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앞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이다. 만약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땅에 병원을 지어 알코올중독과 약물중독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해 사역을 하길 바라시면 건축비의 마련과 환경을 조성해 주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본격적으로 목회의 사역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중이었다.
 
그런데 기도원의 많은 간증지들을 보면서 은혜를 받았고 나와 같은 고통 중에 있는 한 영혼이라도 구원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날 알코올중독자였던 나도 하나님께서 고쳐주셔서 이렇게 주의 일에 쓰임 받고 있음을 간증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주님께서 앞으로의 사역의 길도 인도 하실 것을 믿고 확신하며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
 
- 출처 : 강남금식기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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