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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나를 기다리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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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다리신 예수님 
   
- 김유금 권사 (여, 65세, 영광교회, 관악구 신림동) -


위로의 친구, 편안한 안식처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16세 때 친구 아버지로부터 전도를 받은 후였다. 친구 아버지는 일제 시대에 징용을 당해 전쟁에 참여를 하셨는데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죽음의 사선에서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 소망을 갖게 되셨다고 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장 25~26절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영생의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께 전심을 다해 간절히 기도를 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각고 끝에 살아서 그립던 고국 땅, 고향에 돌아오시게 되었다고 했다.

  그 분은 날마다 전도하시며 하나님을 찬양하셨다. 그리고 토요일 밤이면 동네 아이들과 몇몇 어른들을 모아놓고 찬송을 가르치셨고 주일날 아침에는 아이들을 이십리 가량 떨어져있는 교회로 데리고 가서 예배를 드리게 하셨다. 나도 그 무리들 속에 끼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나는 14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마음에 엄마가 보고 싶어서 참 많이도 울었다. 그러나 슬픈 맘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어서 몹시 외로웠다. 엄마가 없는 슬픔과 가난 속에서 외로운 가슴앓이를 해오던 나에게 예수님은 위로의 친구였고 편안한 안식처였다.
 
예수님을 져버린 삶

  당시에는 결혼을 일찍 하곤 했는데 나도 19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배우자와 결혼을 하였다. 농사에 바쁜 시골 생활에서 나 혼자 교회를 나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시댁과의 불화를 피하기 위해 교회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28세가 되었을 때 중한 병에 걸려 고생을 하였다. 병상에 누워서야 그동안 잊고 살았던 주님을 찾았고 힘들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교회를 나가면서 병이 치유되었다.

  몇 년 후 가족이 모두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나는 딱히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생활이 바빠지면서 또 주님을 잊고 교회를 떠나 살았다. 그렇게 40살이 되던 해에 또다시 병이 들었는데 하혈이 멈추지 않아서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두 번째 의식을 잃었을 때는 모두들 살아날 가망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병문안을 왔던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무서워하며 돌아갔다.

  고비를 넘기고 희미한 의식이 돌아왔을 때 옆 병실에서 기도와 찬송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찬송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나의 영혼을 뒤흔들었고 마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건져준 것 같은 몸의 가벼움을 느꼈다. 그래서 간호해주던 친언니에게 옆방에서 예배드리는 분들을 오시게 해서 나도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너는 다른 거 믿잖아’라고 하며 핀잔을 주었다. 그때 나는 교회를 떠난 것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끌려서 예수님을 아예 배신하고 대순진리회라는 이단 종파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직 예수님 밖에는 이제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하며 저 병실의 사람들을 불러달라고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예수님을 간절히 찾게 된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도 이 세상 자랑과 육신의 정욕에 이끌렸던가?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 늘 함께하시며 그 모든 고통을 덜어 주셨던 주님이셨는데 왜 그렇게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수없이 배신했던가? 이렇게 생사의 경계에 서고 보니 모두가 다 부질없는 허상에 불과 했던 것을 나는 가눌 수조차 없는 병든 몸을 안고 회안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회개하고 또 회개했다.
 
진정한 믿음

  그날 밤 한 꿈을 꾸었다. 내가 어느 곳에 서서 문득 내 몸을 내려다보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송충이 떼가 온 몸에 붙어 있었다. 나는 그 벌레들을 떼어내려 애썼지만 아무 소용없었고 오히려 벌레들의 엄청난 힘에 밀리어 안 가려고 해도 조금씩 앞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흰 옷을 입은 큰 거인이 나타나서 들고 있던 지팡이로 내 몸을 한번 휘저으니까 새까만 송충이 떼가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그 거인이 손에든 지팡이를 내가 서있는 앞쪽을 향하여 가리키자 환하게 빛이 비취면서 고속도로 같은 큰 길이 쫙 펼쳐졌다. 나는 그 것을 보면서 너무 신이 나고 기뻐서 그 큰길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가다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그 분이 따라오고 계셔서 나는 안심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가다보니 잔칫집이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가면서 잠에서 깨어났는데 그제야 꿈인걸 알았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언니도, 간병인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 눈 빛이 뚜렷해지고 맑아졌다며 이제 살아있는 눈빛이라고 했다. 나는 그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뒤로 내 몸에 흐르던 피가 멈추었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건짐을 받았다.

  그동안 일방적인 주님의 사랑만 받았었지 진정한 믿음은 소유하지 못했던 나는 이제 진정으로 달라졌고 속사람이 온전히 변화되었다. 그리고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감사하며 ‘그동안 믿음이 약해서 그 많은 세월을 어리석게 허비하다니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로구나’라고 깨달을수록 더욱 통회하였다.

  그 뒤로 “예수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의 삶은 변화되었다. 나는 ‘육신도 양식을 먹어야 살듯, 영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영의 양식을 공급해 주시옵소서. 다시는 주님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시고 하나님만 의지 할 수 있는 믿음주세요. 예수님의 보혈로 나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옵소서.’라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렸다. 주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언제나 기쁨을 잃지 않게 해주셨고, 언제나 주님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에 힘쓰도록 믿음을 주셨다.

평안하던 중에

  그런데 언제나 살갑게 대해주던 남편이 나를 은근히 미워하며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했지만 주님의 사랑과 기쁨을 빼앗지는 못했다. 나는 남편과 자녀의 영혼구원을 놓고 기도를 시작하였고 1년 만에 응답되었다. 남편은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마지못해 주님을 영접하였다.

  그러나 주안에서 형제에게 물질의 도움을 입고 사업을 다시 일으키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바르게 믿게 되었다. 그 뒤로는 주일도 범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해나갔다. 사업도 잘되고 집안이 믿음으로 화합되어 평안했다. 큰 아들도 신학 공부를 모두 마치고 목사님이 되어 사명을 감당키 위해 한 섬으로 떠났고 딸은 사모가 되어 목사님을 보필하며 교회를 잘 섬기고 있었다. 이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맡겨주신 사역들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며 평안할 때였다.
 
   
간암이라는 검사결과

  그때가 1993년도 봄이었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되어서 가슴이 늘 답답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가서 3일을 금식기도하고 왔지만 낫지 않았다. 남편은 계속 아프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정확한 병명을 안 후에 기도를 하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성모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무언가 의심이 된다고 해서 1주일동안 입원하여 특수 조직 검사를 받았고 간암 2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내가 술을 마시는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간암이라는 것인지 믿을 수가 없었고 원자력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 봤으나 역시 같은 결과가 나왔다. 남편은 처음에는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관심도 없는 것 같아 내심 섭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맘은 고요하고 평안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자 맘에 기쁨과 평강이 넘쳤고, 각색 병을 고치신 예수님께서 나의 병도 고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때 며느리가 전화를 해서 “어머님, 제가 기도하는 중에 어떤 손이 어머님의 가슴에서 핏덩어리를 꺼내는 환상을 보았어요.”라고 하며 분명히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실 것이라고 했다.

  다시 한번 CT촬영을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 아무이상 없이 나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드디어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기계가 닿는 순간 어찌나 뜨거운지 펄쩍 뛸 정도였다. 난 원래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령의 치료가 일어났던 것이다. 검사결과 병원 측에서는 촬영한 사진에 암 부위가 하얗게 나와야 하는데 분간 할 수 없이 뿌옇게 나왔다며 의아해 했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암이 분명한데 그냥 놔두면 위험하다며 수술을 해서 육안으로 확인한 다음에 약물치료를 하든지 해보자고 했다. 결국 병원 측의 강경한 설득에 떠밀려 수술 날짜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하셨으니 치료됐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 보다 내가 이렇게 평안한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하며 퇴원수속을 밟아 달라고 했다. 아들딸은 확신이 있으면 그렇게 하시라고 했지만 병원관계자들과 입원환자들은 나를 비웃었다.
 
치료의 하나님
 
  퇴원한 후 아들이 목사님으로 사역하는 섬으로 내려가 몇 달을 기도와 묵상을 하며 보내고 있었는데 남편에게서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아보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아프진 않았지만 확실히 해두기 위해 검진을 받았는데 담당의사가 간을 절단하는 수술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없다고 했더니 사진을 보여주며 간이 잘려있다고 했다. 그러자 며느리는 “어머니 맞지요? 손이 핏덩어리를 끄집어냈는데 이 사진이 바로 그 증거네요.”라며 기뻐하였다. 병원에서 왜 검사를 받았냐고 물었고 얼마 전 간암 2기 진단을 받은 적이 있어서라고 했더니 이제는 다 나았으니 무엇이든 잘 드시라고 했다. 할렐루야!

  올 1월에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아무런 후유증 없이 건강하다.
  나는 내가 먼저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내 삶을 통해 경험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차례 보너스로 받은 삶이니 나의 건강과 물질은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쓰여 지기를 간절히 바랐던 기도의 제목을 이루어 주셨고 은혜를 나누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됨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의 뜻

  이번에 기도원을 찾은 것은 우리 교회에 귀신이 들린 한 자매 때문이다. 그 자매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서 그 속에 있던 여러 귀신들을 쫓아내주었는데 그 뒤로 오히려 내가 눌리는 것 같아 집중적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쩡했던 자매가 귀신에 들린 것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 그 자매의 귀신방언을 듣게 된 후였다. 나는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되어 기도를 시켜보았는데 “나는 무슨 귀신이다. 내가 대장이다.”라고 마구 소리치고 지껄이며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발작을 시작했다. 그래서 목사님과 여러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교회의 한 장로님이 소천하셨다는 연락이 와 목사님과 전도사님은 물론이고 장로님들까지도 3일 동안 교회를 비우고 장지에 가셔야만 했다. 장지가 너무 멀어서 밤에 출발하시며 목사님은 나에게 “어려운 때에 부득이하게 교회를 비워야 하지만 권사님이 계셔서 조금이나마 마음 편하게 갑니다.”라고 하시며 떠나셨다.

  결국 나는 홀로 그 자매를 붙들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니 나중에는 시커먼 피를 토하며 뒹굴었다. 밤새 씨름을 하고 동이 틀 무렵엔 “이제 하나 밖에 안 남았지만 못나간다. 도저히 못 나간다.”고 괴성을 지르며 마지막 발악을 시작했다. 그러나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자 얼굴과 팔, 발 등 온 사지가 뒤틀리고 소리치면서 그 자매의 몸에서 모두 떠나갔다.

  마지막 귀신이 떠나기 전에 그 자매가 하품을 했는데 나도 따라서 하품이 나왔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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