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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눈물의 신앙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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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섬기시는 교회와 가정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저는 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선교학전공 송현호 입니다. 이렇게 뵙게됨을 감사합니다.

너무나 힘이 들어 이렇게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 중에는 저보다 훨씬 힘든 분들이 많이 있으 실텐데 죄송스럽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정말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저의형편을 거짓 없이 씁니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저희들이 잘못 되었다면 책망도 해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저는 1984년 3월19일에 울산 어느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잘 받아보지 못하며 자라났습니다. 아버지께서 는 이리저리 술만 드시며 다니셨고, 어머니께서는 온갖 모진 고생을 다 하시면서 당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가족을 위하여 아프셔도 내색 한 번 보이지 않으시고 늘 남의 집에서 일만하시며 사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집을 나가셨고 남은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저는 늘 형편대로 살자고 없어도 있는 것처럼 살자고 다짐과 다짐을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남은 희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좌절만 다가왔습니다. 다행히도 그 와중에 여러 이웃들의 도움으로 집을 잃을 위기는 면했지만, 우리가족을 더 없이 힘들게 했던 것은 빚쟁이들의 돈 갚으라는 고함과 이곳저곳 에서 욕하는 소리에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집을 뛰쳐나가려 했지만 저는 그래도 주어진 생활에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생활을 지낸지 어느덧 몇 년이 흘러서야 아버지께서 돌아오셨고 우리 집은 또다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한 손에 어느 모를 아주머니의 손이 얹혀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어머니께서는 설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시며 짐을 싸 집에서 나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너무 미웠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어머니가 불쌍하고 안타까워 보이던지 제 찢어질 듯 아픈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어머니는 오지 않으셨습니다. 배가 고파서 길거리에서 울기도 하고 서러움에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 눈물로 보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는데 그 모습은 상당히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쉬지도 못하신 채 아버지의 구타에 괴로워 하셔야 했습니다. 얼마나 맞으셨는지 당신의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우리 남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못살게 하더라도 너희들을 나아준 아버지이고 나의 남편"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런 아버지를 정말로 용서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에 부엌에서 칼을 들고 갔지만 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누나와 저는 그날 밤을 온통 눈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하고 외로운 것이 그리고 그런 아픔이 얼마나 고통이 되는지 전 그런 집안의 환경을 견디기 못해 가출을 하였고 제가 누리지 못한 모든 수많은 담배와 술, 여자에 둘러싸여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잠시 뿐이었고, 하루하루를 걱정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건 또 어머니께서 아버지에 의해 또다시 죽어가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의 머리 속에 가득 찼기 때문이었습니다. 잊어버리고 싶고 잊으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제가 겪은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그 고통은 잠시뿐이라고 느끼며 살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나에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지겠지' 하는 자기최면을 하면서도 받은 심적 육적 고통이 너무나도 컸기에 잊을 수 없는 것이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생활에서 살고 싶지 않아 하루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깊은 강을 찾아 갔습니다. 자살을 시도하며 강에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너무나도 힘들어서 지쳐하는 어머니의 모습, 몹시 구타당하시는 움직이지 못하시는 모습, 땀 흘리며 우리를 위해 애쓰시며 참고 계시는 어머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 가 고 계시는데 내가 이렇게 하면 어머니는 얼마나 날 위해 울고 계실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되새기며 마음을 고쳐먹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떨치고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강에서 멀리 떨어져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내게 다가오는 하루하루는 언제까지나 몹시 힘들고 짜증나고 살기가 싫었습니다.

그런 하루를 계속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너 교회 한번 와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귀찮기도 하고 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은 것이라는 걸 알고 친구를 따라 가 보았습니다. 교회를 처음 들어가니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앉아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데.. 저는 아무 것도 몰랐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서성거리다가 그냥 아무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이 행복이고 그리고 사랑이구나. 또 하나 느낀 것은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구나! 저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행복이란 것을 그 곳 교회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야 외롭고도 슬펐던 마음은 사라지고 행복만이 저에게 다가오는 것을 그리고 교회가 이런 곳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후 매일같이 교회를 갈 만큼 저의 모습은 변화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저의 마음은 더욱더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생애 처음 가보는 수련회. 그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의 행복은 점점 날로 많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불행은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싸움은 또다시 시작되었고 어머니는 또 몹시 맞으셔야만 했습니다. 저는 참다 참다 보지 못해 방에서 뛰쳐나와 옥상으로 올라가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불쌍한 우리 어머니 좀 도와주세요. 우리 아버지의 마음을 붙잡아 주세요"라고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얼마쯤 시간이지나 눈물을 흘리면서 집에 들어왔는데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마음에 어머니를 찾으러 한참을 돌아다녀 봤지만 절대로 어머니는 제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찾다 지쳐서 집으로 들어왔는데 어디선가 조용히 우는소리가 들리는 거였습니다. 더 놀란 것은 어머니가 다락에서 손발이 묶인 채로 다락 한 구석에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슬프던지, 얼마나 화가 나던지.. 정말로 우리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새벽이 다되어서야 나의 방으로 어머니를 앉혀드렸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에 응답 하셨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라고 그리고 저는 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전 너무나 힘들고 외롭고 슬픈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불평과 원망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네가 힘이 들고 너무 힘들어 네가 쓰러질 때 나는 너와 언제나 함께 한다" 고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너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의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겨 너를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제게 어찌나 큰 힘이 되는지.. 지금은 하나님을 통하여 다시 우리의 가정은 변화가 되었고, 어머니께서는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옛날보다는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 후로 집을 나가버렸던 누나는 가정을 가지고 이루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저를 다시 연단 시키셨습니다. 작년 제가 고3졸업을 앞두던 무렵 중에 가난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께서 는 가출을 하셔야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도 집을 나가셨습니다. 혼자가 된 난 친구의 도움으로 친구의 집에 살게 되었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갈 수 없고 포기해야 만 하는 대학을 저는 열심히 일(토목공사) 을 하여 등록금을 마련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원하는 천안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은 저를 연단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처음으로 집 나가셨던 아버지께서 연락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좋은 소식이 아니라 나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사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엄청 많이 다치셨어요. 얼마나 울었는지..단지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이렇게 나쁜 소식을 가져다주었기에 너무나도 속상해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소식을 또한 들렸습니다.

예전에 집을 나갔던 누나가 자식을 잃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은 가운데 젊은 나이에 엄청 힘들게 출산했는데~~시간이 지나 딸이 몸이 좋지 않아 병으로 죽었습니다. 얼마나 그 어린영혼이 불쌍하고 가엾던지.. 그냥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락이 되고 있지 않는 어머니..지금 살아계시는지 돌아가셨는지 행사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너무나도 불쌍한 우리 어머니.ㅠ.ㅠ.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이 필요합니다. 저희가정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어속히 회복 될 수 있도록...너무 힘이 듭니다.

정말 힘들어서 날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은지?
불쌍한 어머니, 아빠, 누나~~  .
그 누구도 저를 도와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턱없이 등록금이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을 구하겠습니다.
제가 물질로 인하여 신학대학교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무사히 신학대학교 졸업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그러면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 분들의 기도와 관심과 협력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또한 살아갈 방조차 없어서 살고 있던 집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힘이 들면 이해는 가지만 하나를 잃고 지금도 마음에는 눈물이....
정말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정말 피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저를 한번 도와주세요. 단돈 만원이라도 도와주십시오.
저에게도 오늘의 이 어려움의 현실을 이기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면서 웃을 때가 있을까요? 그날이 어서 오기를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열심히 해서 복음의 빛 을 꼭 갚겠습니다. 저희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감사 합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모든 분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글을 정말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등록금을 위해서 기도부탁드립니다.
3월마지막 까지 286만원을 채워야 학교를 다닐수 있습니다.
기도해주십시오...학교다닐수있도록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있을수 있도록..
기도가 힘이됩니다. 사랑합니다.


@후원방법: 기도와 물질로써..
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선교학 전공 송현호 016-488-4217
우체국: (311779-02-080611예금주: 송 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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