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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나환자의 감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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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예고했던 나환자 촌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환자 중의 최고령자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꽃샘바람이 아주 맵게 옷소매 안을 감돌아 가슴 속 깊이까지 찬물을 끼얹듯하던 날이었지요. 사실 나환자 촌을 방문하기 전 머리는 바람에 엉클어지고 얼굴은 찬 바람에 퍼렇게 얼어 찡그린 표정으로 어떻게 내가, 영혼 육신이 함께 병들어 있을 나환자 할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내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필시 그들의 마음은 고뇌와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내 머리를 압도했었다고 고백해야만 옳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다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나환자 할아버지의 얼굴엔 내가 감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과 행복의 표정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있었으며, 열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두 개의 몽당손을나란히 포개어 머리를 살포시 숙여 방문객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에는, 어느 한 구석 처연한 내색이나 열등감의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에게 웃으며 먼저 "이 선생님, 왜 안색이 나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엉겁결에 "할아버지가 너무 가엾어서 그럽니다." 라고 허덕이듯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가엾어서 안색이 편치 못하시다구요? 그렇다면 대답해 보십시오. 이 선생이 대학교수이며 문학박사가 되어 사회적 지도자로 일하게 된 축복의 삶이 도대체 어찌하여 가능했던 것일까요?"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하고 부끄러워서 무심히 그분의 눈을 마주 대하고 단정히 앉아 있었을 뿐, 유치한 몇 마디 언어로 대답을 시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대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질문에답할 만큼 심오한 지혜와 삶의 철학이 내게는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해야만 정직한 고백이 되겠습니다.

그때 그 나환자 할아버지의 연이어 나온 말씀이 진실로 내 가슴을 예리한 양심의 칼끝으로 찔렀습니다.
"당신이 비록 대학교수이며 문학박사라고 할지라도 당신이야말로 참으로 가엾은 사람이며 또 무식한 사람입니다.
내가 왜 나환자가 되었고 당신이 왜 건강한 대학교수가 되었는지를 당신은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
"반대로 나는 손발이 모두 토막 나간 나환자이지만 당신보다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왜 대학교수가 되었고 내가 왜 나환자가 되었는지를 나는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
"나는 당신에게 내 교수직과 박사학위를 양보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평생 짊어졌어야 할 나병과 수고와 고통을 내가 대신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온 겨레와 온 인류가 우리들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 앞에 항상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염원하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늘 기쁘고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그 나환자 할아버지를 만난 이후 내게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환자 뿐 아니라 결핵 환자, 각종의 암환자‥‥ 뇌성마비, 시각장애인. 그들 삶의 구석구석 현장 속에, 나 자신이 그들로 환치되어 들어가 앉기도 해야 하는 이유를, 그 나환자 할아버지가 분명히 나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 이인복 / 낮은 울타리 2005년 2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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