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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나에게 역사하신 은혜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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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정 전도사 (여, 55세, 호산나기도원, 충남 부여군)

어린시절 불구가 된 나

  나의 친 어머니는 내가 11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고, 그 후 아버지는 반 무당이었던 어머니와 곧 재혼하셨다. 그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새어머니를 따르려고 꽤 애썼던 기억이 난다.

  14세 되던 해에 큰언니는 시집을 갔고, 큰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 해 겨울의 어느 날, 작은 언니와 함께 큰언니네 집에 다니러 갔다가 그 가게에 딸려있는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새벽에 가게에 있던 난로의 불이 주변의 쌓아놓은 물건에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마침 그 시간에 큰언니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새벽기도를 하러 교회로 가시기 위해 그 앞을 지나가시다가, 가게에 불이 난 것을 발견하시고 불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셨지만, 같이 자던 작은 언니는 목숨을 잃었고 나는 심한 화상을 입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입원 해 있던 병원에서는 너무 심한 화상이라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며 주한미군병원을 소개해주셨다. 그곳에서 7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몇 번에 걸친 대 수술을 했지만, 내 얼굴과 몸은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오그라붙은 얼굴과 한쪽 손에 손가락 2개만 가진 장애인이 되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내 모습에 너무나 좌절하여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깨달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그 분의 사랑을 느끼고 나 또한 그분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의 처지를 비관하며 원망하던 삶이 변화되었다.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으며,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또 한 개의 손이 정상으로 남아 있고,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다른 기관이 건강히 남아 있음을 생각하니 감사가 넘쳤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영혼으로 찬양하게 되었다.

남편과 자녀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비록 불구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가정을 주셨다. 충청도 공주의 작은 마을에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착하고 예쁜 자녀 셋을 두게 되어, 크게 넉넉하진 못해도 마음만은 늘 천국을 거니는 것 같은 행복감에 젖어 살았다. 그 와중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로 신학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1992년도에 신학공부를 다 마쳤으나 사역은 하지 않고 지내다가 1995년 8월 25일을 맞게 되었다.
  그 날은 바로 우리가 사는 지역에 장마로 인한 산사태가 나서 나의 남편, 그리고 고교 졸업 후에는 신학을 공부하여 아버지의 사역을 돕겠다던 18세 된 큰아들과 귀여운 막내딸을 천국으로 먼저 보내게 된 날이다. 흙더미가 마을과 우리 집을 덮쳐서 남편과 두 자녀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 마을의 다른 네 가정에서도 피해를 입어 모두 11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

  마침 나는 그 전날 밤에 군산의 큰언니 댁에 맏딸과 함께 방문해 자고 왔었는데, 자면서도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잠에서 깨어나서도 맘이 몹시 아프고 기분도 이상했다. 찜찜한 맘에 집으로 전화를 해봤지만 통화가 안되었다. 그래서 이웃집에 전화를 해보니 그 집 주인이 받고는 놀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비보를 전해 주었다.
  급히 집에 돌아와 넋을 놓고 울다가 멀거니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있는데, ‘엄마 울지마! 울면 혼내줄꺼야!' 하며 사진 속의 막내딸이 평소처럼 나에게 장난스레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큰아들도 ‘엄마, 죄송해요. 울지 마세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사진을 보며 위로를 받았고 아이들의 그 목소리가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을 화장하여 산에 뿌리려고 갔을 때 사진 속의 큰아들이 또 나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저희를 잊으세요.' 나는 아들에게 대답했다. ‘그러마. 엄마가 불구자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잘 해주지 못해서 아쉽고 마음이 아프지만 너희들이 천국에 갔으니 잊으려고 노력하마. 나도 천국에 가서 너희들 만날 때까지, 이 땅에서 너희들 몫까지 일하마!'

사명을 깨닫고 시련을 이겨냄

  나는 그때 너무도 심정이 괴로웠지만, 나를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들 천국 갔어요."라고 말했다. 같이 슬퍼하는 그들을 오히려 위로하는 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시기에 어쩌면 저렇게 담담할 수 있느냐'고 수근거렸다. 그 때에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빨리 쓰시려고 한다는 것을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신학공부를 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어느 전도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내게 감동을 주셨는데, 하나님은 당신을 기도원 원장으로 쓰십니다."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의심에 차서 “내가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 분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셨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믿음이 우러나와 “아멘!" 하고 답했었다. 17년 만에 그 일이 떠오르며 이때라는 확신이 들었다.
  친정이 소유한 9000평의 산지와 땅 중에 상당한 평수가 나의 몫으로 되어 있는데, 기도원 자리가 바로 그 곳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기도원을 건축할 돈은 없었지만, 먼저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서원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마을을 덮쳤던 산사태는 분명 인재이기에 외면하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랴 마는, 무려 3년 동안 법정 투쟁을 하여 정부로부터 적은 액수의 보상을 받았다. 그 동안에도 계속해서 기도원 자리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내려오는 일을 반복했다.
  이래저래 소요되는 경비가 많다보니 임시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의 가락동에서 과일장사를 시작했다.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하루 매상이 100만원 가까이 되었다.
  그러다가 출석하는 교회의 전도사로 임명을 받아 하던 일을 접고 전도사로의 사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7개월 후, 다시 응답을 받고 기도원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목사님께서 붙드셨지만 오직 나의 소원과 목적은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기에 공손히 거절하고 돌아왔다.

  정부로부터 1차 보상받은 돈으로 기도원을 지으려고 하는데 어느 집사님이 찾아와 나를 돕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믿고 일을 맡겼는데 그 사람은 나를 속이고 돈을 빼돌렸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임시거처인 비닐하우스 하나만 지어놓고 도망쳤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렇게 도적질을 하다니......' 나는 그 사람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그 사람을 용서하게 해달라고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 한 후에 미움을 버릴 수 있었다.

모든 것을 회복케 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러던 어느 날 대전의 법원을 방문하고 나오는 길에 근처의 중국집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집에 손님이 없기에 나는 주인에게 명함을 내밀며 “오갈 곳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시면 우리 기도원으로 보내주세요"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다른 손님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갑자기 끼어들면서 ‘그런 곳이 어디 있느냐, 그런 사람들은 얼마를 내면 되느냐'고 물었고 나는 “자기 먹을 것만 있으면 되지만 생활보호 대상자라면 더 좋고, 또 아무것도 없이 빈 몸으로 와도 저랑 같이 먹고살면 되죠"라고 말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 뒤 귀가하려 나와서 횡단보도 앞에 힘없이 쪼그려 앉았는데 ‘남자 혼자 살면 집안 살림이 엉망일텐데..., 그리고 기도원에 사람도 없어서 내가 도와줘도 되니까 주소라도 알아놓을걸...'하는 생각에 뒤돌아보니 그 사람은 멀리 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두자! 남자들은 여자가 아무리 순수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라고 혼잣말을 하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저기요, 아까 그 명함 나에게도 줄 수 있어요?"라고 했다. 돌아보니 그 사람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기도하며 지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와 그 사람을 부부로 맺어주셨다. 심성 곱고 착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었고, 나와 동역자가 되어 함께 기도원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그 사람은 2층 짜리 기도원 건물을 혼자서 몸이 부서지도록 지었다. 모두가 다 놀라워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영광을 돌렸다.
  그동안 기도로 모든 어려움을 잘 견디어왔지만, 계속된 법정투쟁과 기도원 건축으로 인해 힘이 소진되어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서 영·육을 새롭게 회복하여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진다는 강남금식기도원을 찾아갔다. 7일을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였고, 응답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새 힘을 받았다. 나에게 역사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하시기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

- 출처 : 강남금식기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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