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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고통 가운데 연단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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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욱 집사 (여, 48세, 연예인교회,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7살 때, 부활절 날 교회에 가면 맛있는 것을 준다는 옆집 친구의 말에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것은 나를 초대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나의 첫 응답이었다. 그렇게 교회와 맺은 인연은 장성하여 나의 자녀가 군에 입대하기까지 계속 이어졌지만,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을 바랬기에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세상에 질병과 고통을 왜 그대로 두시는 걸까?' 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존을 항상 의심했다. 그러기에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하면서 우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지나쳐 보여 고상하지 못하게 여겼고, 교회를 떠났다 돌아왔다를 반복하며 메마르게 살아왔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듣거나 글을 읽을 때면, 나는 그들을 사기꾼이라며 코웃음을 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전에 내가 비웃던 그 일, 즉 나의 하나님을 경험한 간증을 하게 된 것이다.

고통 중에 만난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만난 때는 2001년 여름이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하였는데 적응을 못하고 탈영을 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자주 편지를 써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아들이 전화를 해서 “엄마, 이번 훈련엔 인민군 철책까지 이동해요. 저는 기관총사수인데, 말하자면 총알받이예요."라고 하였다. 순간 아들이 북한 인민군 앞에 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들아! 전쟁 같은 것은 절대 안 일어난다. 전쟁이 난다면 엄마가 너 대신 총알받이가 되 줄 거야. 넌 아무 걱정말고 명령에 복종하고 충성하려무나."라는 말 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절박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불렀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 때에 온전히 믿지 못하였기에 의지 할 수 없었던 대상, 하나님이라는 분이 내가 의지할 대상이며 실존하시는 하나님으로 내 영혼과 가슴에 관통하고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나는 고통 중에 다가오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맞이했다. 내 영혼이 드디어 찬양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고통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이 계시면 왜 이런 고통들이 있게 하냐'고 했던 불평과 의문은 모두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지켜주셨기에 그동안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이며, 그런 아픔들은 지금처럼 아들의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큰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시는 연단이었구나!' 하고 깨달아졌다.
  그날 밤, 늘 하던대로 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격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그러므로 너는 교회에 나가거라. 이순신 장군이 있었는지 만나 보지 않았지만 배움으로 믿고 역사에 남겨진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워서 있었다는 것을 믿듯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살아계시다고 다른 사람들이 체험하고 말하는데 왜 믿지 못하고 부정하는가?'라고 편지를 썼지만, 사실 그것은 나의 지난날에 대한 회개의 신앙고백이도 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눈물이 쏟아지고, 모든 것을 의지 할 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존에 대해 이렇게 확실한 믿음이 생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나님을 만난 뒤로 음반을 내고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하는 등 축복이 쏟아졌다. 나는 ‘내가 변화되어 하나님을 인정하니 이런 축복을 주시는 구나! 뒤늦게 인생 최고의 꽃이 피는구나!'라고 행복에 겨워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많은 찬사 속에서 내 자신도 모르게 교만이 싹텄다. ‘그래. 나는 정말 잘났나봐.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니!'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는 남편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삶에 개입하셨다. 2002년 10월에 그토록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발작을 하며 쓰러졌다. 검사결과 악성 뇌종양이라는 판정이 나왔고, 담당의사는 앞으로 약 1∼2년 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남편이 불쌍하기 이전에 너무도 화가났다. 남편이 산다고 해도 완전히 나을 가능성은 희박한데 언제까지 투병생활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고 인생의 절정기에 이런 일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아 너무 속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날 내 속에 앙금처럼 쌓여있던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불신이 다시 한번 솟구쳐 올라 많이 힘들었다.

  1992년에 남편이 하던 사업에 필요한 긴급 자금으로 2억 원에 달하는 큰돈을 나를 통해 끌어썼는데, 남편은 어렵다는 이유로 그 돈을 고스란히 나에게 떠맡겼다. 그리고 내가 늦은 밤에 영어강사를 하며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빚을 다 갚기까지도 남편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번 하지 않고 모른척했다. 그런 남편이 너무도 야속하여 용서할 수 없었고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기에 빚 청산을 다 한 후에 이혼을 요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었다.

  나는 그때 이혼을 하지 않는 대신 남편에게 “당신, 앞으로 병들지마! 병들면 난 당신을 버리고 갈거야. 절대 병들지 마!"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 남편은 나의 말에 증명이라도 하라는 듯이 병이 들어버렸다. ‘내가 정말 불행할 때 하나님을 만난 후 이제는 내 인생에 절정을 맞았다고 행복해했는데, 하나님은 짧은 행복에 긴 고통을 주시는 분이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꿈과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며 기도하는 중에 잠시 내 꿈을 접고 우선 남편을 살리고 나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내 꿈을 다시 펼쳐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방배동 집을 정리하여 공기 좋고 물 맑은 경기도 퇴촌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막상 이사를 하여 첫 짐을 풀고 남편의 밥을 짓는데 내 인생 절정기에 모든 꿈을 접었다는 억울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회개와 하나님의 응답

  눈물 반, 잡곡 반으로 밥을 지어 환자를 돌본지 2주간이 지나고,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는 도중에 마음에 강한 감동이 왔다. “이것이 마지막 테스트다. 나중에 네가 내 앞에 왔을 때 구원 받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열매를 맺었느냐를 보는 것이다. 내가 너를 테스트하느라 네 남편의 병든 모습으로 왔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들려오는 음성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남편에 대한 분노 때문에 무공해 나물 등 항암에 좋은 음식을 못해주고 대충 만들어 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의 마음과 태도를 회개하고 난 후에는 잡곡밥 하는 것이 좋아졌고, 또 내 앞길 막는 사람으로만 생각되던 남편이 혼자서 대·소변을 보러 다니며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저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데 하루만에 평안이 찾아왔고 남편이 제발 살아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내 꿈에 대한 미련은 깨끗이 사라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살리고 말리라는 각오가 생겼다.

  혹시라도 내가 하나님께 예쁜 짓을 하면 남편을 살려 주시려나 해서 올 3월에 ‘천상의 메아리'라는 2집 음반을 냈다. 그 후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남편의 종양은 실제로 그 성장이 멈추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반 이상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나 완치까지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의 발돋음

  환자를 보고 있자니 언제 나을지, 또 낫는다 해도 재발 가능성이 있기에 근심만 자꾸 쌓여갔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가 많고 다양한데 환자만 보고 있자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기도하기 위해 강남금식기도원에 가게 되었다.

  3일 금식기도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려고 훈련시키심을 깨달았다. 그리고 용서하지 못했던 남편을 용서하였다. 평소에 내 음반에 수록된 여덟 번째 곡을 부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었다. 제일 가까운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그 노래를 부르는 스스로가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남편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고, 용서가 없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내 영혼으로 깨닫게 하셨다. 내가 이제까지‘하나님의 도움으로 고쳐야지'라고 하며 노력했던 것들은 그저 인간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에 불과했다. 아직까지도 나는 하나님의 분량에 못 미쳤고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 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과 용서를 베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주신 모든 달란트를 살려서 온전히 쓰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온전한 금식기도를 통하여 비로소 도덕과 윤리, 규범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깨닫게 되었다. 몇 년 전에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나서 없었던 눈물이 생겼지만 항상 건조한 성향이었던 내가 지금은 가슴에 넘쳐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내 자신이 봐도 주책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남편의 뇌종양이 반으로 줄어든 기적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깨끗이 없어지게 해주실 것을 믿으며 후에 다시 한번 못 다한 간증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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