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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생명을 살리는 약은 오직 예수 약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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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희 집사 (여, 35세, 영화교회,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


어려서부터 결혼하기까지

  나는 6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갓난 아기였을 때부터 병약하여 많이 아팠던 나 때문에 부모님은 병원을 다니며 나의 치료를 위하는 일이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실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니셨지만, 나는 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당시 목사님이셨던 큰아버지께서 교회 나가서 하나님을 만나면 나을 수 있다고 하셔서 부모님은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큰아버지의 말씀대로 부모님은 40일 작정새벽기도를 하셨는데, 그 기간동안 많은 은혜를 받으시고 불신앙 했던 지난 과거를 회개하였으며, 자녀인 나에 대한 근심도 없어지고 오로지 참 신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두 분 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자녀를 치료해 주신다는 천사의 말을 꿈속에서 들으신 후 내 몸이 건강해졌다고 한다.

  나는 성장해가면서 교회 안에서 학생부 회장과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청년이 되어서도 교사와 성가대 등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봉사활동은 거의 다 해왔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그렇게 지내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끼며, 나름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었다. 그렇지만 나는 믿음과 상관없이 세상적인 가치에 큰 관심과 비중을 두고 있었다. 나중에야 참 주님과 그 분 안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내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일부러 외면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대학 4학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그는 내가 바라고 꿈꾸어 오던 돈 많은 집안의 배경이 좋은 남자였다. 인물이 조금 못해도 돈이 배경이 되니 모든 것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교제를 시작하였지만, 그의 복잡한 여자문제로 인해 결혼날짜를 잡기까지 많이 다투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을 시킬 수 없다는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사랑했고, 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방황하다가도 결혼을 하면 그 가정에 책임을 지고 안주한다는 주위사람의 말에 결혼을 하면 좀 어그러진 것은 다 잘 풀릴 것이라 생각했고 또 내가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결혼하면 남편을 꼭 교회로 인도할 것이니 지켜보라고 하며 끝까지 우기고 결혼을 하였다.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 얻은 병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한 후에는 나마저 교회를 등지게 되었다.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같고 핑크빛 행복만 있을 줄 알았는데, 결혼 첫날부터 남편은 마치 나에게 발목을 잡히고 구속당한 것처럼 못마땅한 얼굴을 하였다. 또한 그리 오랜 시간이 못되어 내가 좋아하던 멋있는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날마다 불만에 찬 모습 뿐 이었다. 나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남편이 밖에서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것으로 인해 싸움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남편은 다른 여자와의 불미스런 일도 만들었다. 남편은 별일 아니라고 우겼지만, 상대 여자 쪽에서는 말이 달랐다. 그런 중에 첫아기가 들어섰다. 나는 생긴 아이를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 몰래 낙태를 할까 생각도 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망설이다가 시댁식구들이 먼저 알게 되었고 남편도 곧 알게 되었다.

  나는 기쁘지 않았지만 남편은 정말로 기뻐하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을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우리 부부사이가 원만치 않으니 이대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으나, 남편은 앞으로 절대 속상하게 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하며 아이를 낳자고 하였다. 그래서 첫 아들 경민이가 태어나고 첫 돌이 될 때까지 정말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나 아이가 첫 돌이 될 무렵부터 남편은 다시 여자들을 사귀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두세 명의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단속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이혼을 하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다. 내 처지가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는 동안 나는 어느 날부터인지 모르게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며 가슴이 답답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세월이 흘러도 그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2월에 갑자기 위에 느껴진 심한 통증으로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다. 크게 걱정은 안했는데, 병원에서는 의심되는 게 있다면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검사결과 위암말기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하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내 나이 겨우 34세인데 위암 말기라니 너무 억울했고, 왜 하필 나여야 하는지 원망스러웠다. 힘들게만 하던 남편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눈물을 흘렸으나, 나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긴 병이라고 원망했다.


회개의 금식기도와 치유, 변화된 남편

  병원에서는 서둘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수술을 하다가 죽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나는 수술을 거부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이 암을 고쳐주셨다는 간증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직 몸에는 크게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 통증이 간혹 있는 정도였기에 난 무조건 기도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과 친정어머니와 함께 작년 3월 초에 강남금식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동안 나는 하나님을 떠나 살았었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면 핑크빛 행복은 당연히 내 것이 되는 줄 알았고, 그 남자는 내가 원하는 대로 교회도 순순히 따라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나의 신앙마저 잃어버리고 내 힘만으로 살아보려고 하다가 병들어 죽을 몸이 되어서야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 지나온 삶의 허무함과 후회로 내 가슴은 터지도록 미어졌고 나는 몸부림치며 회개하기 시작했다. 난 체면도 잊은 채 오로지 회개하며 통곡했다. 그리고 어차피 음식을 먹어도 제대로 소화를 못시키는 상태이니 굶어죽으나 아파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21일 금식에 들어갔다.

  힘들었지만 금식 6일째 되는 날의 고비를 잘 넘기면서부터는 하나님의 은혜가 햇빛처럼 내 마음 속에 비쳐들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견디기 쉬워졌고, 말씀과 찬송과 기도 속에서 생긴 살아계신 하나님의 확신으로 인해 기쁨이 넘치기 시작했다. 하나뿐인 아들을 나를 위해 보내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서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교회에 한번도 안 가본 남편이 서울과 청평을 오가며 힘든 가운데도 내 옆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남편에게도 믿음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은혜 가운데 21일 금식이 모두 끝나고 보호식을 하는 첫 날, 미음을 먹고 난 후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급히 갔더니 검은 핏덩이들이 심하게 쏟아져 나왔다. 순간 몹시 겁이 났지만 곧 안심이 되며 암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번 정도 더 쏟아내고 나니 몸이 날아갈 것 같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할렐루야!

  다음날 집에 돌아와 보호식을 하고 병원에 가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 의사는 암이 사라졌다고 하며 어떤 약을 썼느냐고 신기해했다. 나는 “생명을 살리는 약은 오직 예수 약 밖에 없다!”라고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 뒤 남편에게도 확실한 믿음이 생겨서 여자문제로 힘들게 하는 일도 없어졌고 세상을 좇던 습관들을 모두 버렸다. 오히려 신앙생활 잘하려고 열심을 내는 모습이 정말 멋있게 보인다.
  이 모든 응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

- 출처 : 강남금식기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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