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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주님을 위해 살수 있는 삶이 내게 주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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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진 집사 (남, 48세, 영생교회, 서울 은평구 불광동)

죽음의 그늘

어릴 적 우리 집안은 4대가 대가족을 이루어 함께 살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비좁은 집에 식구도 많아서 아침마다 벌어지는 화장실 쟁탈전은 전쟁을 방불케 했지만, 풍족치는 못해도 밥 굶지 않고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러나 25년 전 어느 날부터 우리 집안에 서서히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어찌된 일인지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아서 4남 3녀의 자녀 중 3째 아들인 내가 장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큰 형님이 젊은 나이에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돌아가시고 6개월 후,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둘째 형님마저 밤길에 실족하고 다쳐서 앓다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집안은 극심한 비탄에 잠겼고 ‘이러다 자식들을 다 떠나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가족들에게 드리워졌다. 할머니와 어머니께서는 죽음의 사자가 늙은 자신들을 데려가려 하다가 잘못하여 생때 같은 자식들을 데려갔다며 날마다 통곡을 하셨다. 무당을 불러다 액땜 굿을 하고 거의 매일 고사를 지내다시피 하여 집안은 날마다 떵그렁거리는 소리로 가득찼고, 조용한 날이 드물었다.

  그러나 그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넷째 남동생마저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2년 사이에 아들 셋이 죽음의 길로 떠났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안에 저주가 내렸다며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늘 북적거리던 집은 음침함과 두려움으로 가득차 그야말로 폐가가 된 듯했고, 우울함만이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집안 어른들은 하나 남은 아들인 나마저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죽음의 그늘을 벗어남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자 분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자신은 전도사이고 우리 집안의 사정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으며, 그분도 우리와 비슷한 일들을 당했지만 예수를 믿은 후 나쁜 일들이 떠나고 복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죽음의 그늘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처절한 심정이었던 어른들은 조금도 거부하지 않고 바로 다음주일부터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교회에 나갔다.

  교회를 다녀온 그 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무시면서 신기한 꿈을 꾸셨다. 꿈 속에서 보니 집안에 불이 나 가족들이 모두 뛰쳐나왔지만 죽은 아들들만이 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집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모두 활활 타고 있었다. 안타까워서 불 속에 뛰어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불 속에서 갑자기 큰 구렁이 여러 마리가 밖으로 기어 나오려고 꿈틀거리다가 세찬 불길을 뚫지 못해 결국 대들보기둥을 칭칭 감으며 불 속에서 지글지글 타고 있는 것을 보고 꿈에서 깨어났다고 하셨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부모님 두 분이 동시에 똑같은 꿈을 꾸셨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꿈에서 깨어나면서 ‘아! 이제 집안에 우환은 떠났다! 저 구렁이와 함께 다 타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드셨고, 그 후 짓눌리고 두렵고 무겁던 마음에서 벗어났다고 하셨다. 그 뒤로 우리 집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신실한 믿음의 가족이 되어갔다.


아들이 있으리라

  부모님께서 하나 남은 아들이니 대를 이어야 한다고 재촉하셔서 나는 거의 떠밀리다시피 서둘러 결혼을 하게 되었다. 믿음 좋고 알뜰하고 생활력도 강하며, 예쁜 인물과 고운 심성을 가진 아내는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그러나 결혼을 한 지 3년이 되어도 아이가 없어서 아내는 40일을 작정하고 하나님께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는데, 작정기도 37일이 되는 날 “명년 이맘때에 아들이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할렐루야! 아내는 다음해에 하나님의 신이 감동 주신 대로 아들을 낳았고, 그 뒤 연년생으로 딸 둘을 더 낳아서 삼남매를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받았다.
  그리고 결혼 후 처음 목재상으로 시작한 나의 사업이 점점 확장되면서 중소기업이 되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위암이라니!

  그런데 사업이 번창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만나야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거북스러운 술자리에 자주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차츰 신앙을 잃어갔고 급기야는 주일에만 겨우 출석하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형식적인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잘 살아왔던 어느 날부터는 속이 쓰리고 더부룩하고 소화도 잘 안 되었다. 우연히 친구의 병원에 들렀다가 검사를 해봤는데 위암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결과를 받았다. 다행히 초기라고는 하지만, 암은 걸리기만 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 병이기에 마음이 무거웠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곧 죽게되는 암에 걸리다니....... 아이고, 하나님!’이라고 나도 모르게 울부짖었다.

  한 번 더 검사를 해보았는데도 오진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15일 후로 수술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수술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나는 더 두려워졌고, 수술을 하면 다시는 못 깨어 날 것 같은 생각이 점점 깊어갔다.


은혜 속에서 21일 금식을 하며

  그러다가 아내가 가끔씩 기도하러 다니던 강남금식기도원이 생각났다. 그래서 수술날짜 5일을 남겨두고 나는 아내와 함께 무작정 기도원에 가서 21일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병원에서는 계속해서 연락이 왔지만 다시 병원에 가기는 싫었다. 계속해서 예배하며 금식함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은혜를 받으니 이제는 암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제대로 믿어 본 적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나는 눈물로 회개를 하면서 인간인 나의 연약한 실체를 깨달았다. 그리고 인간들을, 아니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거룩하신 예수님을 깨달았고, 그분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삶이 내게 주어진다면 그렇게 살겠노라고 간절히 고백하며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심으로 인해 21일 금식을 꿈같이 가볍게 마치고나자 난생 처음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것은 세상에서 얻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참 평안이었다.
  보호식을 하고 집에 와서도 나의 체질은 계속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했고, 오직 예배를 기뻐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답답하던 속은 어느새 개운해져 있었고 다 나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는 병원에 가는 것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기에 다시 검사를 받아보니 암이 다 사라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할렐루야!

  벌써 3년이 지났지만 위암은 재발할 가능성조차 완전히 없어졌고 오히려 더욱 건강해졌다. 그 뒤로도 나는 강남금식기도원에 자주 가서 기도를 드리며, 은혜를 받고 재충전하여 세상을 이기고 또 하나님과 교회에 더욱 충성하고자 결단한다.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이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 출 처 : 강남금식기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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