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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나와 같은 이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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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혜 성도 (여, 20세, 우리교회, 송파구 가락동)

체험신앙을 강조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나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울산에서 자랐고, 나의 부모님은 체험적인 신앙을 강조하시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이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내게 교회는 늘 집처럼 편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곳이었고, 나는 나름대로 열심을 가지고 모범적인 교회생활을 하였다.

  중학생이 되어 생각이 많아지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버지가 지니신 신앙의 완고함이 나를 억누르는 것 같이 느껴지게 되자 점점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해 신앙적으로도 빗나가게 되었다. 집처럼 편히 드나들던 교회에는 주일날 딱 한 번, 학생예배만 드리러 가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사이는 나날이 나빠졌고, 심지어는 3개월이 지나도록 대화를 안 한 적도 있다. 내 나름대로는 아버지와 잘 지내보려고 많이 노력도 해보았으나,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각자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다 보니 오히려 관계만 더 악화되었다. 그렇게 불화가 계속 반복되다가 고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가출을 하면 그런 생활이 끝이 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가출을 결심했고, 멀리 서울로 도망을 가면 부모님이 나를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하여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서울 모처에 있는 쉼터의 위치를 알아낸 후 무작정 그곳을 찾아갔다.
  막상 집을 나와서는 하루하루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지만,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 마음먹고 한 달 동안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가 하루는 울산에 있는 한 친구가 생각나서 연락을 했는데, 그 친구는 우리 부모님께서 크게 걱정하시며 나를 찾기 위해 고생하신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집으로는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친구를 통해 내 연락처를 알게 된 부모님은 즉시 나를 찾아 오셨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는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골은 더욱 깊어져 갔다.

조금씩 변화되던 나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 고3 겨울이 되었을 때, 예술대 지원생인 나는 실기준비를 위해 서울에 살고 계신 이모님 댁에 머물게 되었다. 믿음이 좋으시고 항상 너그럽고 긍정적이신 이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나의 성격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모님의 모습이 나에게는 신앙의 본보기가 되었다.

  나는 이모님을 따라 처음으로 새벽예배도 나가게 되었고, 기도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시는 이모님의 모습에 은혜를 받은 나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생각이 점차 누그러져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 해 비록 실기시험에는 떨어졌지만 마음은 편하였고,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내 안에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내려간 후에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져 새벽기도도 함께 나가게 되었고, 아버지는 딸과 함께 새벽기도를 다니신다고 기뻐하셨다. 그동안 쌓였던 모든 감정들은 한 순간에 다 잊혀지고 치유되었다.
  그러나 나의 성품과 아버지의 고집이 변화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싸워 사이가 벌어졌고, 또다시 깊은 갈등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병 고침과 회복의 금식기도

  그렇게 재수하며 공부하다가 대학 입시기간이 되어 실기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 이모님 댁으로 다시 올라갔는데, 이모님이 강남금식기도원에 가신다고 하기에 나도 따라갔다. 이모님이 금식을 하신다고 하셔서 나도 난생 처음으로 3일 금식을 하였다.
  금식을 하는 동안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성경에 기록된 병고침의 역사가 사실이며, 그 능력이 내게도 나타날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7년 전 월경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며칠씩 생리통으로 죽을 것 같은 고생을 해왔다. 수업 중에 수없이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많았고, 심한 통증으로 행동반경에 제약을 받을 정도로 그 증상이 심하였다. 나에게 생리통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기도원에 가던 첫날도 월경 중이어서 쓰러질 정도의 고통이 있었지만 은혜로 그 고비를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파서 쩔쩔매고 있었다.
  그런데 금식 첫날 저녁 예배시간 중에 목사님께서 여러 가지 증상의 병이 나았다고 선포하셨는데, 그 마지막에 ‘어떤 자매가 자궁의 병으로 통증이 심한데 그 질병이 나았다!’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나는 그 자매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통증이 없어졌고, 바로 치료를 받았다. 할렐루야!

  나는 그저 신앙의 모범이 되는 이모님이 좋았기 때문에 기도원을 따라갔고, 금식도 그저 따라서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빠에 대한 반감만을 가지고 아빠가 날 이해하게 해달라고 부르짖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구하지 않았던, 아니 구했다 하더라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구했던 것을 주셨다.

  하나님은 나를 만나주셔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셨고, 그로 인해 고집스러울 정도로 체험신앙을 강조하셨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만드신 것이다. 또한 아버지를 사랑하도록 내 마음을 바꾸어 주셨다.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고민이 많을 때면 늘 나의 생각과 고민을 글로 표현하며 스스로를 달래었었는데, 그 모든 일은 내가 글쓰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법이었다는 것을 기도 중에 깨닫게 하셨다.

  좋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작은 나를 돌아보시고, 부끄럽게 생각되어 사람들에게 말하지도 못했던 생리통을 고쳐주심이 너무도 감사하고 신기하여, 나와 같이 병원에서도 치료받지 못하고 남들에게 말하기도 꺼려지는 병 아닌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나의 간증을 통하여 희망을 주기 원한다. 나를 고쳐주신 하나님께서 그들도 고쳐주실 것을 믿는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영광의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 출처 : 강남금식기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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