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간증 새사람이 되기까지

첨부 1


- 간증 : 임금란 집사 (여, 경기도 남양주시)

내게 복음을 남기고 떠난 남편

  나는 스물한 살에 강원도 원주에서 중매 결혼을 하였는데, 당시 남편은 나와 9살 나이차가 나는 총각집사로 신학 공부를 마친 사람이었다. 한 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결혼을 한 후에 남편을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있었는데, 집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받는 것을 보고 나 또한 방언을 받고 싶어졌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는데, 갑자기 지나온 세월 동안 지은 죄들이 마치 필름 돌아가듯 모두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을 치면서 하나하나 통회자복하며 회개를 하였더니 갑자기 유창한 방언이 터졌고, 동시에 더러운 것을 태우는 것 같은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나는 임신 초기부터 치질에 걸려 항상 피를 흘리며 똑바로 앉지 못해 몹시 괴로워했었는데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내 고질병인 치질을 성령의 불로 고쳐 주셨고, 그 후로는 재발하지 않았다.
  부흥회가 끝나자 이미 결혼 전에 두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린 남편이 다시 개척교회를 세우자고 하였다. 나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반대하며 교회를 세우려면 이혼하고 혼자 세우라고 하였다. 내가 어찌나 강경했었는지 남편은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였다.
  당시 남편은 군복무를 할 때부터 계속 앓아 오던 지병이 있었는데, 나는 어찌나 철이 없었던지 남편이 어디가 아픈지도 몰랐었다.

  그러던 중 첫 아이를 출산하였는데, 아기는 며칠동안 계속해서 울기만 하였고, 병원에 가 보아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아기는 며칠 만에 생명을 잃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부터 해오던 장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되지 않았었는데, 아기까지 영문을 모르게 죽고 나니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어 몸서리가 쳐지며 잠까지 못 이루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교회를 세운다는 것을 막무가내로 뜯어 말리고 강퍅하게 했기 때문에 장자를 데려간 것인가?’ 하는 생각에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하고 남편에게 교회를 세우라고 했다.

  남편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지 않아도 친구하고 교회 터를 보고 왔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곧바로 경기도 장안리라는 마을로 이사를 하였고 둘째 아들도 낳았다. 남편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매일 눈물로 기도하였고, 1년 만에 교회 부지를 얻어 교회와 사택을 짓고, 헌당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중학생 5명만 같이 예배를 드렸지만, 점점 그 학생들의 부모들까지 전도되었고 나중에는 그 마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는 동안 남편의 병은 점점 깊어지게 되어 우리는 목회를 내려놓고 원주로 이사를 하였는데, 3개월 후 남편은 먼저 천국으로 갔다.

힘겨운 삶 속에 만난 새로운 동반자

  나는 어린 아들을 시어머니께 맡겨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오산으로 옮겨 식당을 경영하였다. 그러나 과로한 탓에 쓰러져 성 바오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어 한참 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청량리로 나와서 카페를 개업하였다. 그렇게 혼자 힘들게 살다보니 남편이 먼저 천국으로 간 것은 배신이라는 생각까지 들어 반항심에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삶에 지쳐 견디기 어려울 때면 강남금식기도원에 올라가 며칠씩 지내면서 슬픔을 쏟아내고 다시 돌아가서 받은 은혜로 겨우 버티며 살았다. 그러는 동안 몸은 더 아프기만 했고, 어렵게 모아둔 물질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비록 교회에 다니지 않고 세상방법대로 살고 있었지만 늘 마음속으로는 하나님께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 기대며 같이 살 사람 아무나 주세요.’ 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기도 때문인지 나는 6살 연하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미혼이었고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직업군인 출신이었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군복무 중에 저지른 실수로 인해 다시는 비행기를 못 타게 되어 불명예제대를 하고 방황을 하던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계속 하혈을 하며 몸이 아픈 상태라 가게를 운영하기 벅찬 상태였다. 그 사람은 그런 나를 딱하게 여기며 조건 없이 자기의 돈을 모두 주었다. 나는 어린 아들에게도 잘 대해주며 나를 생명같이 아껴주는 그 사람이 너무나 고맙고 좋았고, 그렇게 1년을 지내다가 우리는 결혼을 하였다.

주벽이 심한 남편

  그러나 ‘아무나 보내주세요’라고 했던 대로 그 사람은 주벽이 심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천사같이 좋기만 하던 그가 술만 마시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 가정생활이 어렵게 되니, ‘술 귀신’이 이 사람을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도로만 해결될 문제라는 생각에 작정하고 가정예배를 드리며, 찬송가 393장 ‘악한 마귀 제 아무리 강할지라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 믿기만 하면 위태한 데 빠진 영혼 구원 받아서 천국 백성 될 것임일세’를 6개월 동안 불렀다. 그리고 남편이 술에 절어서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더욱 열심히 기도하였다.

  어느 날 나는 주님의 뚜렷한 음성을 들었는데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다 듣고 계시며 응답해 주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기뻤다. 그 날도 계속하여 혼자 예배를 드리며 찬송가 393장을 부르고 있는데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가 나에게 눈을 흘기면서 급히 방에서 나가 주방을 통해 현관으로 날아갔고, 다음 날 예배를 드릴 때도 머리만 둥둥 떠 있는 또 다른 한 남자가 나에게 눈을 흘기면서 현관으로 나갔다.

  내가 그렇게 기도하며 싸우고 있을 때 남편은 술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그날 나는 남편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다듬지 않은 소나무들을 묶어서 넓게 뗏목처럼 엮은 방주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북히 엎어져서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한참 동안 하늘로 올려지던 그 방주가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떨어졌고, 또 다시 방주가 올라가다가 흔들리니 이번엔 더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떨어졌는데, 방주에 남아있던 나는 너무나 무서워 울면서 회개기도를 하였다. 방주는 흔들리기를 세 번 정도 반복하다가 하늘에서 멈추었는데, 그림에서만 보았던 아기천사들이 나팔을 불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고, 웃음을 머금은 예수님의 얼굴이 크게 다가왔다. 너무나 놀라 잠에서 깬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해졌고,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의 얼굴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아침 일찍 장을 봐서 남편에게 정성껏 상을 차려준 후에 남편을 쉬게 하기 위해 강원도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남편을 구원하신 좋으신 하나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남편은 나를 따라 강남금식기도원에 가게 되었고, 금식기도하는 내게 미안하다며 3일 동안 죽만 먹었다.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남편은 기도를 못하니 자신의 심정을 종이에 적어서 통성기도 시간에 읽었다. 그 때 남편은 아내인 나를 위해 마지막 기도를 하고 죽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이 남편을 만나주시고 안아주셔서 그는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다. 할렐루야!

  그렇게 술 귀신들이 나간 후로 남편은 구원을 받아 술을 끊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종합건설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성실함을 인정받아 회사 내에서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러다 어느 날 잠자던 남편이 뇌출혈로 일어나지 못하는 시련이 찾아와, 다시 정상으로 회복하기까지 남편과 나는 몇 년간을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물질의 공급과 기적을 크게 체험하였다. 이제는 건강을 찾은 남편이 다시 일을 시작하였고, 나와 함께 기도원에 자주 가서 기도한다.
  언제나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은혜로우시고 좋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 출 처 : 강남금식기도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